기억들이 엮여 만들어 낸 타피스리(tapisserie)
최근, 2020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전시 < PUNCH DRUNK LOVE >를 기획했다.
미국의 게리 코마린 (Gary Komarin)과 한국의 강준영 (Kang Jun Young) 작가의 공통적인 조형언어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나는 주로 연구를 베이스로 작업을 읽어내고, 동시대를 읽어내려 노력한다. 이때 연구물은 전시로서 혹은 글(논문, 기사 등)로서 세상에 태어난다. 시대에 맞게 때론 시대에 질문을 제기하며 작품을 선별하고, 그들을 배열해 내러티브를 만드는 이 전시라는 과정은 머릿속의 사유들을 꺼내 시각화하는 노동이다. 혹시 영화 해리포터를 본 적이 있다면,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관자놀이에 대고 기억을 끄집어내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관자놀이에서 나온 실처럼 가느다란 기억을 펜시브에 넣으면 머릿속 기억(사유)을 다시 보며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는 가느라단 실들이 엮여 만들어내는 미장센이 된다.
감사하게도 이번 전시에 대한 전시 소개 글을 한 메거진에 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정리한 글을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한다.
아줄레주 갤러리 2020년 하반기 기획전
< PUNCH DRUNK LOVE
: Gary Komarin & Kang Jun Young>
2020.11.26-2021.01.31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아줄레주 갤러리는 검은 대문과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주택의 구조로 다른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서 느껴볼 수 없는 따스함을 가지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하나의 문을 너머, 갤러리의 작품으로 향하는 시퀀스(sequence)의 전환은 낯선 공간으로 여행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도심 한복판의 유토피아 같은 전시공간에서 미국의 게리 코마린과 한국의 강준영의 조형언어를 주목하는 전시 < Punch Drunk Love >가 열렸다.
< PUNCH DRUNK LOVE >전은 2002년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동명의 영화와 기획의 과정이 닮아있다. ‘Punch-drunk’는 의학용어로써 장기적으로 머리에 강한 자극을 반복적으로 받아 뇌 기능이 저하된 복서들이 겪는 정신 불안 등의 질환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등의 의미로 통용된다. 영화에서 편집증 환자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배리의 내면에서 겪는 강박과 갈등은 거친 이상의 소음들로 표현되지만, 우연히 만난 여자 주인공 레나와 함께 있는 순간엔 그 모든 소음이 ‘음악’으로 치환된다. 주인공의 심경을 끄집어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으로 역전시키는 음악과 미장센이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Punch-drunk Love’는 괴팍한 상황에서 우연히 첫눈에 반한 두 남녀가 양극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 한 지점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을 뜻한다.
아줄레주 갤러리에서 기획한 2인전 < PUNCH DRUNK LOVE >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게리 코마린(Gary Komarin)은 미국 후기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서 특유의 대담한 터치와 색감으로 전 세계 큐레이터와 컬렉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적 아티스트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미술의 순수한 가치를 전달하는 그의 페인팅은 지난 2019년 아줄레주 갤러리에서 기획한 게리 코마린 한국 최초 개인전[1]을 통해 소개된 적 있다.
본 전시에서 게리 코마린과 함께 소개되는 강준영은 그간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과 이야기 등을 도자기나 캔버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담아냈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강준영은 집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개념이 파편화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집이라는 보편적 공간과 그 이면의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두 예술가의 만남은 언뜻 보기에는 교차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듯한 두 예술가가 한 지점에 달려오는 과정은 전시에 명료하게 드러난다. 1951년 미국에서 태어난 게리 코마린과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준영 사이에는 약 30년, 즉 한 세대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거리에 비례하는 문화와 인종, 역사의 차이점 또한 가지고 있다. 본 전시 이전엔 서로 접촉할 수 있는 지점이 없던 작가들이지만 둘 사이에는 펀치 드렁크와(punch-drunk) 같은 강력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본 전시는 두 작가 사이의 시간적 격차와 미국과 한국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여 존재하는 심리적·문화적 거리를 넘어선 두 작가의 공통된 조형언어와 그로 인한 조우 그 자체를 ‘커다란 충격처럼 쇼킹한 사랑(Punch Drunk Love)’로 표현한다.
미국의 게리 코마린과 한국의 강준영은 ‘집’과 ‘유년시절의 기억’을 단초로 삼아 작업하는 예술가다. 이 작업의 재료들은 두 아티스트의 작품 속 형식적인 공통점을 도출시킨다.
두 작가의 아버지는 모두 건축가였다. 스케치업이나 라이노, 캐드 등의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의 건축가들은 드로잉과 트레싱지, 펜, 제도 도구 등을 이용해 작업실에서 공간을 설계했다. 두 예술가는 2D 화면 위에 선과 면으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아버지들의 행위를 보고 자랐다. 그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아티스트가 된 두 작가에게 어떻게 발현됐을까. 게리 코마린의 추상에서 보이는 두터운 회반죽과 강준영의 ‘OX시리즈’에서 느껴지는 물감의 마띠에르는 마치 도장 단계의 건물 외벽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코마린의 회반죽을 이용한 추상작품 < A Wilder Blue >은 재개발을 앞두고 그라피티(Graffiti) 예술가들의 무대로 대체된 오래된 건축의 벽을 갤러리로 옮겨온 듯하다. 강준영의 신작 < How to be a hero > 역시 오일스틱이나 물감을 손가락에 묻히고 직접 그리는 방법과 물감의 포장지, 철망 등의 타매체를
물감 터치 사이사이에 삽입해 만들어낸 회화 표면의 물성이 거친 콘크리트 벽을 연상시킨다. 또한, 마천루와 같이 쌓인 게리 코마린의 ‘Cake Series’와 강준영의 < 집 짓기를 위한 우리의 여러 가지 드로잉 방법 >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면을 차용한 듯 한 건축적 기호들 역시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을 만들어냈던 아버지들의 건축을 향한 행위는 두 작가에게 예술을 발아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작업의 무대로 삼는 공간은 집(home)이다. 코네티컷주에 위치 게리 코마린의 집과 작업실은 화가의 인스타그램 계정(@garykomarin)에 작품과 함께 종종 업데이트된다. 개인의 내밀한 거주공간이자 작품이 잉태되고 탄생하는 인큐베이터와 같은 장소는 역설적이게도 작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공간이 된다. 강준영에게도 집은 작업의 배경이 된다. 삼대가 함께 살았던 주택의 뒷마당에 놓여 있었던 할머니의 옹기와 항아리들에 대한 기억은 현대도예가로서의 작품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두 예술가에게 집은 자신의 추억과 감정이 강하게 점착된 ‘토포필리아’이다. 코마린의 ‘Cakes series’는 그가 소년이었을 적 어머니가 집에서 구워 준 케이크의 향과 맛을 시각화한 작품이며, 강준영의 작품 또한, 개인적인 기억과 기록 그리고 아카이빙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그 기저에는 집과 가족에 대한 애정의 감정이 깔려 있다. 집과 관련된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재구성해 예술적인 실험을 더해 두 작가는 캔버스 위 붓으로, 때론 손가락 끝으로 도자기를 성형한다. 두 작가의 심리적 애착이 담긴 토포필리아 위에 지어진 작품에는 컬러와 제스처 혹은 재료의 실험과 도면의 이미지 등의 설계를 통해 탄생한 ‘따스함’이 묻어 나온다.
머릿속에서 설계를 마친 캔버스 위에 건물을 시공할 때 주로 사용되는 회반죽과 수성페인트, 에나멜이라는 비전통적인 회화 재료를 입혀 작품을 완성하는 코마린과 같이, 강준영은 도예를 전공하며 채득 한 공예적 배경(제작과정을 컨트롤하고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며 손에서 비롯된 심미성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자유롭게 동시대 미술에 접목시키고 있다. 게리 코마린과 강준영은 자신이 가장 잘 채화한 재료를 작품에 도입한다. 장소라는 기억에 대한 기록(작품)에 잘 어울리는 매체를 자연스레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토포필리아 위에 설계되는 작품은 오랜 시간 지속된 전통적/비전통적 회화 그리고 미술/공예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자유롭게 교차하고 있다.
겉보기에 우연적으로 보이는 두 작가의 조우는 사실 건축이라는 행위를 보고 자란 두 작가가 느껴왔던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가장 표현하는 조형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들의 필연적 조우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의 감정이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완성되는 과정처럼 게리 코마린과 강준영의 이야기들은 다채로운 색실로 직조되는 타피스리(tapisserie)처럼 전시장에 펼쳐진다. 두 작가의 만남이 주는 ‘Punch-drunk love’를 경험해 보길 바라는 동시에, 지난한 2020년을 보낸 우리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 Gary Komarin >, 2019.12.29 – 2020.01.23, Azulejo Gallery
[2] 토포필리아는 그리스어로 장소를 뜻하는 ‘topos’와 수평적 사랑을 뜻하는 ‘Philia’의 합성어로서,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이 자신의 저서 『Topophilia』(1974)를 통해 처음 주장한 개념이다. 토포필리아는 개인의 심리적 애착을 담은 공간을 의미한다.
글 정수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