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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an 17. 2021

허무개그에 웃고 싶다.

문자 : 아이스크림이 사고를 당한 이유는?
           난센스 퀴즈예요. 맞춰보세요~. :)

어른들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과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친한 친구로부터 ‘차가와서’라는 정답을 듣자마자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곧장 지금의 남편인 그에게도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분명 핸드폰이 고장 난 것은 아닌데 몇 시간이 지나도 그는 답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먼저 정답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고 나는 또 기다렸다. 하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하하호호 웃고 싶었던 나의 마음에는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 화가 났다. 밤새 불쾌함이 사그라들지 않아 다음 날 남편에게 왜 아무런 답을 하지 않냐고 따지듯이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남편 역시 화가 나 있었다. 퀴즈도 너무 황당하고 재미없지만, 나의 말투가 더 불쾌하다고 했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들은 나의 친구들은 퀴즈가 재미있다 없다에 대해선 생각이 제각각이었지만 내가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의견은 모두 일치했다.

여전히 나와 남편의 유머 코드는 완전히 다르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농담처럼 얘기한다. 그때 그 친구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고.


내가 십 년간 다녔던 회사도 늘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늘 엄숙하고 진지하게 다들 모니터만 보고 있어, 사무실에 일하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이사님은 경직된 분위기를 녹이고자 유머의 중요성에 관해 연설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어느 누구 하나 웃지 않았고, 얼마지 않아 유머를 위한 유머는 출구가 없음을 모두가 깨달았다. 그리고 쉬운 일도 어렵게 해결하는 갈등은 여전히 잔불처럼 남아있었다.


마음속에 불덩이가 사그라들었다 일었다를 반복하는 요즘, 나는 허무개그가 그립다. 규칙적인 삶의 리듬을 깨는 시적 해방이 절실한 것이다. 자주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아재 개그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전처럼 재밌지 않다. 혹 내 얼굴에 있던 웃음 근육이 할 일이 없어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나는 조용한 모범생이긴 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깔깔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보물찾기 하듯 모였다 하면 서로 먼저 웃음거리를 찾기에 바빴다. 그 덕인지 우리는 시험 앞에서도 취업 앞에서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 내 삶은 조심스러워졌다. 엄마라는 사람이 철없는 아이처럼 굴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아이에게 사고가 날 것 같았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은 매번 나에게 ‘조심해야 해!’, ‘주의하는 게 좋아!’라며 걱정과 불안을 불러왔다. 나는 엄마들 사이의 작은 소문 하나에도 예민했고,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는 삶은 줄타기하듯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유머로 재치 있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나중에 ㅇㅇ할까 봐’라며 지레 겁먹고 진지해지기 일쑤였다. 나와 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소진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유머를 말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안면 피드백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얼굴의 웃는 근육과 뇌신경이 연결되어 웃는 근육이 움직일 때 뇌는 긍정적인 정서와 관련된 도파민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즉 자주 웃는 것만큼 삶의 면역력을 높이고 행복을 불어넣는 일도 없다.


얼마 전 학원에 가기 싫은 아이가 검은색 양말 한 짝을 신다 말고 자기 발을 들어 올려 내게 말했다.

“엄마 내 발 좀 봐봐. 정말 까맣지?!”

빨래를 널고 있던 나는 아이의 예상치 못한 말에 웃느라 정신을 못 차렸고,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 아침은 내 차례였다. 매번 아침 식사자리에서 사춘기 딸아이의 외모를 거론하는 남편을 향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는 거울이 필요 없네. 보지 않아도 말하는 거울이 있으니 말이야.”라고.

순간 불만스러운 얼굴이던 딸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남편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나에겐 호랑이를 때려눕힌것처럼 기운이 솟았고 그 웃음 속에 우리의 삶은 새롭게 충전되고 있었다.







Image thanks to unsplash

@josh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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