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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r 28. 2021

정답을 찾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커피맛은 훌륭했다. 깊고 진한 향이 입안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내게 중년의 신사가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의 이 생각이 정확한 지 확인받고 싶어 졌다. 핸드폰으로 원두를 주문했던 앱을 열고 새로 산 원두에 대한 설명이 적힌 웹페이지를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무심한 듯 커피 본연의 맛에 충실한 쌉싸름함과 진한 카카오의 초콜릿향과 단맛이 공존하며 한껏 남자다움을 어필한다.

정답을 맞힌듯한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곧이어 떨쳐내고 싶은 씁쓸한 뒷맛도 함께 찾아왔다.


나는 수수께끼 놀이를 좋아했다. 누군가 문제를 내고 내가 그 물음에 답을 맞히는 순간, 나는 신이 났다. 학교에서 정답이 가득한 시험지를 받아왔을 때 웃는 엄마의 얼굴도 좋았고, 티브이 퀴즈 프로그램에서 언니, 오빠들이 못 맞히는 문제의 답을 말할 때 놀라는 아빠의 표정도 기뻤다.

“정답입니다~!!”라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말에 환호하는 출연자처럼 나도 그랬다. ‘정답’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싱글벙글 입꼬리가 올라가는 만큼 어깨도 한껏 솟아올랐다. 나는 정답의 기쁨을 찾아 헤맸고, 애초에 맞고 틀리고 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정답을 갈구했다. 반면 그것이 왜 답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만 중요했고, 오직 그 쾌감만을 즐겼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정답을 추구하는 삶은 대체로 내게 만족감을 줬다. 짙은 안갯속에 헤매면서도 나는 늘 정답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내게는 항상 그에 대한 보상이 따랐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모범답안이 나에게 족쇄가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뒤였다. 퇴사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많아졌다. 누군가는 내게 답을 알려줬지만 때론 용기가 없어서, 때론 내키지 않아서 답안을 채울 수가 없었다. 정답이라고 생각해 행동한 일에 누군가가 뜻하지 않게 상처 입는 일도 생겼다.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눈 앞에 새로운 문제들이 놓일 때마다 정해진 답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고 나는 지치고 허기졌다. 삶에는 애초에 정답이 없었다.


최근 그림을 배우며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느낀다.

내가 배우는 그림 수업은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이 그림과 재료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채 한 시간도 안된다.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간에 돌입하면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선생님의 명쾌한 가이드를 기다리지만 그런 건 없다.

“각자 한번 그려보세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면 모두 저마다 이해한 대로 자유롭게 하얀 면을 채워간다. 선생님은 모두에게 잘하고 있다며 격려를 보내지만 나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연필을 들고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나는 그리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 방법이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옆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지?’ 정답지를 들춰보고 싶은 마음만 누르다 결국 시간이 다 가고 만다.


“선생님, 전 이런 그림들이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그리고 싶은데 잘 안돼서 힘들어요. 자꾸 이렇게만 그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제가 좋아하는 그림은 아닌데... 재미는 있어요.”


즐거운 그림을 그리세요. 자신이 즐기며 그린 그림도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즐기지 못하고 그린 그림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고역이거든요.”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첫 숙제를 하기 위해 종이를 펼쳤다. 자화상 그리기였다.

사진으로 담긴  모습을 그리는데도 그림은 자꾸만  얼굴에서 멀어졌다. ‘눈은 이렇게 생겨야지, 입은 이렇게 그리는  맞을 거야라고 하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실물과 달리 미화하고 있었다. 의도한 대로 선이 나가지 않자 짜증이 났고,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고 남은 자국 때문에 속상했다. 그때 심각한 얼굴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예고 갈 거야? 엄마 꼭, 예고 입시 준비하는 사람 같아.”


‘아차..!’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정답에 얽매여 있었다. 정답의 눈치를 보느라 진짜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실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바르게 고쳐야만 했다.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고 생명이 없는 듯한 그림은 봐주기가 힘들었다.


나는 태초로 돌아가듯 다시 연필을 잡았다.

내 머릿속의 생각을 내려놓고 찬찬히 나를 들여다보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듯 선을 그었다. 꽤 오래 나를 찾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르게 선이 나가는데도 즐거웠다. 나와 닮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이게 진짜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림을 그리는데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정답을 찾지 않는 것이 정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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