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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l 28. 2021

내가 내 삶 위에 존재한다.

한때는 명랑했고, 건강했고,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성선설을 지지했으며 비가 오는 날에도 하늘은 내게 푸르렀다. 행복의 끝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상상조차 안되던 날들이었다. 그 삶을 잃을까 두려웠고 그때마다 나는 감사했다. 마치 절실한 기도를 하듯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 속에 모든 게 달라졌다. 애초에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있던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후회와 죄책감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며 미화된 과거 속에 무기력한 현재를 맞이했다. 마치 그것만이 나를 위로한다는 착각에 빠져 꿈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무겁다 느꼈고 탈출하고 싶지만 탈출할 수 없었다. 탈출을 할 용기가 없는 건지 실제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행인 건 그때 내가 그림책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끊임없이 상처와 좌절을 주는 그 길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다. 이 길을 떠나고 싶지 않아 이 길 위에서 세운 목표를 버렸다. 이 길을 지키고 싶어 내 삶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오직 눈앞에 놓인 길만 보며 걷는다. 목표가 없으니 안심이다. 마음껏 쉴 수 있고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소하지만 나의 삶 위에 있다. 그렇게 서서히 그 길 위에서 내가 나를 바라본다. 누가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내 삶 위에 존재한다. 때론 지루하고 때론 무책임하지만 괜찮다.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나오는 말처럼 인생은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으니까, 인생은 언제나 행동하는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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