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주었음 (V)
근래에는 허해진 빈틈을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다른 복은 없어도 인복 하나는
감사할 만큼 있다고 자부하는데,
요 며칠 여러 지인들이
나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며칠을 굶고 나서 허기를 채우는 사람마냥
이사랑 저 사랑으로 허겁지겁
허한 부분을 채우려 하다 보니,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눈빛이 돌아올 만큼의 배는 채워진 게 느껴졌다.
참 감사한 사람들이다.
우리 14살 강아지는 하루에 2번 아침 8시와 저녁 8시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고맙게도 곧 전남편이 될 현남편은 나와 대화는 하지 않더라도, 애 약 주는 것만큼은 냉장고에 써붙인 '약 체크 기록서'에 서로 번갈아가며 체크하면서 챙기고 있다.
'산책-아침약-저녁약'
혹시나 중복이 되거나 헷갈려
한번이라도 빼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병이라
매달 공책 한 장을 찢어,
네 칸의 줄을 반듯하게 접고,
날짜와 함께 순서대로 쓰는 것도
이젠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암묵적으로 아침은 주로 그이가,
저녁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데
때로는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하루하루 체크를 할 때마다,
이제 이렇게 두 사람이 더블체크
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반.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
사람이라도 많이 만나둬야겠다 하는
생각이 반.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그에게 의지를 하며
나는 그의 빈자리를
허겁지겁 나의 사람들로 채운다.
하루는 동네 언니와
커피 한잔을 하며 채우고,
하루는 친동생 보다 더 가족 같은
동생과 제철 음식을 먹고,
하루는 시집가며 물리적 거리만
멀어진 친구와 당일치기 콧바람을 쐬며
폐 안 가득 사람을 채운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이렇게 나를 필요한 때에
잘 나누어 주었던가 하는
반성마저 하게 만드는 감사함 들이다.
그렇게 한가득 사람을 채우고
강아지 약을 주는 시간이 넘어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에 붙어있는 체크표에
조금은 날카롭게 체크되어 있는
브이자를 보며 아이러니하게
저 깊은 곳 약간의 따듯함을 느낀다.
당연한 일인데,
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소위 현타도 느껴가며 말이다.
고맙다.
덕분에 네가 나간 만큼의 자리를
사람으로 채워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