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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May 20. 2022

장애인 교육권과 공공의료, 그 사이에서

제39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서진학교를 보며

한때 건축을 전공한 여운이 남아있는 건지, 아직도 나는 건축에 관심이 많다. 특히 '라떼는' 없었던 UAUS 연합 전시를 볼 때면 학생들의 푸릇함이 느껴져 설레곤 한다. 지난 8일에 막을 올린 서울건축문화제2021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노들섬 동쪽의 다목적홀에서는 서울건축문화제와 함께 서울특별시건축상을 소개하고 있었고, 서쪽의 노들스퀘어 일대 야외에서는 UAUS에 참가한 각 학교의 파빌리온을 볼 수 있었다. 


9월임에도 여전히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탓에 실내 전시가 반가웠다. 접수를 하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가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건축사진공모전을 지나쳐 서울특별시건축상 수상작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JTBC빌딩, 인왕산 초소책방, 서울여담재 등 다양한 건물의 모델을 감상한 뒤 '대상 수상작은 어디에 있지?'하며 이윽고 전시장의 끝자락에 다다른 순간, 익숙한 이름을 보았다. "서울서진학교".

제39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서진학교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지어진 특수학교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이곳에 특수학교를 건립하고자 했으나, 지역구 국회의원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우여곡절을 겪다가 학교 설립을 발표한 지 6년 만에 개교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주민들이 원한 것은 그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갈등 양상이 심화되고 주민 공청회에서 장애인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는 영상이 공개되며 여론은 급격히 서진학교 설립 찬성 쪽으로 기울고, 국립한방병원 유치를 원하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주민들의 의견은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2016년에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신문사에서 인턴 기자를 했던지라 이 이슈가 낯설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옛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설립한다는 이야기가 없었지만, 많은 의학 분과 중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지라 새로 지어질(지도 모르는) 국립한방병원이 공공의료 및 임상연구 기능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던 차였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국공립 의료기관은 '마이너'다. 소위 빅5로 불리는 의료기관 중 국공립 의료기관은 서울대학교병원 한 곳 뿐이다. 한의과는 향후 인구 고령화와 함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마이너'다. 서울시내 한의과 진료를 담당하는 국공립 의료기관은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 그것도 30병상에 불과하고 양방 위주로 운영되는 NMC의 특성상 국립한방병원이 향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국립한방병원 설립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물론 옛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이 설립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이곳을 특수학교 설립 부지로 활용할 것임을 행정예고에서 밝혔으며,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학교용지를 폐지한 뒤 조건부로 사안을 진행해야 했다. 전반적으로 많은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역주민들의 이기심이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병원을, 그것도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할 의료기관 설립을 주장한다고 해서 곧 '님비'에 동조하는 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옛 공진초 부지에 서울서진학교가 설립된 것은 당연한 순리였고, 이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써 그 순리가 이루어진 것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4년 전 이맘때, 그 곳에는 '공공의료'라는 키워드는 증발해버린 담론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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