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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May 23. 2022

예술이 기억하는 우리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나너의기억> 展

의학용어사전에 따르면 ‘기억’의 의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각, 인상,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정신기능으로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 내는 것.’

즉, 기억이란 우리가 지각하고 경험한 뒤 보관된 것, 혹은 그 보관된 것이 재생 내지는 재구현되는 것을 가리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너의 기억> 전은 이 정의에 충실하게 인간 사회에 있어서 ‘지각’되고, ‘경험’되고, ‘재생 내지는 재구현’되는 것들을 광범위하게 다루며 화두를 던진다.

허만 콜겐, <망막>, 2018,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채널 오디오, 레이저, 10분. 작가 소장.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공동 제작.

이 중 ‘지각’의 과정을 표상한 대표적인 작품이 허만 콜겐의 ‘망막’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는 것은 외부의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이 망막에 도달한 뒤 뇌에서 생리학적 신호로 처리된 결과이다. 그 생리학적 신호와 그 처리 과정은 당연하게도 물체의 모든 속성을 반영할 수 없으며, 여기서 실재(reality)와 현상(appearance) 간의 괴리가 생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색의 사과를 본다고 가정하자. 우리가 인식하는 시각적 요소로서의 ‘빨간색’은 대상 자체(사과)의 속성일까? 모두가 그 사과를 보았을 때 같은 스펙트럼의 빨간색을 상정할 수 있을까?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다원예술가인 콜겐은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레이저라는 시각적 요소를 활용한다. 우리가 외계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과 뇌에서의 전기생리학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 사이의 경계를 보다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허만 콜겐, <망막>, 2018,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채널 오디오, 레이저, 10분. 작가 소장.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공동 제작.
송주원, <뾰루지.물집.사마귀.점>, 2021, 3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15초. 작가 소장.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구성된 기억을 다시금 구현해내는 두 작품, 안리 살라의 <붉은색 없는 1395일>과 송주원의 <뾰루지.물집.사마귀.점> 역시 인상적이다. <붉은색 없는 1395일>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떠한 언어적 설명도 없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케스트라의 합주 장면만을 토대로 그 배경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저격수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그 골목에서,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무채색의 옷을 입었던 시민들의 경험은 압도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으로 재현된다. <뾰루지.물집.사마귀.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을 치료 (또는 취조)하고, 사망자를 부검했던 국군광주병원의 옛 터에 서린 기억을 춤으로 담아낸다. 미처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의 잔해는 이처럼 비언어적 수단만으로 형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집단적 기억으로 남곤 한다.

홍순명,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 2022, 캔버스에 유채, 60.5*50cm(240), 605*1,200cm(전체).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지원으로 제작.

누구나 ‘바다’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휴가를 보냈던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어민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대한 생태계일 수 있고, 난민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검푸른 존재일 수 있다. 얼핏 거대한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사실 240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여 제작된 이 작품처럼, 기억은 다양한 주체 안에 다양한 모습으로 간직되었다가 다시 모여 기꺼이 윤곽을 드러낸다. 전시는 그 이합집산의 과정이 ‘나의 기억’도, ‘너의 기억’도 아닌 ‘나너의 기억’임을 전하며 홍순명의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로 끝을 맺는다.


국립현대미술관 <나너의기억> 展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1층 5전시실

기간: 2022-04-08 ~ 2022-08-07

주최/후원: 국립현대미술관

관람료: 서울관통합권 4000원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 뮌, 박혜수, 세실리아 비쿠냐, 송주원, 시프리앙 가이야르, 아크람 자타리, 안리 살라, 앤디 워홀, 양정욱, 임윤경, 허만 콜겐, 홍순명 총 13명(팀)


Further Readings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안내

나너의기억 - 월간미술

김효은, 2014. 통증은 지각 경험의 일종인가?. 인간· 환경· 미래, (13), p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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