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나너의기억> 展
의학용어사전에 따르면 ‘기억’의 의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각, 인상,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정신기능으로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 내는 것.’
즉, 기억이란 우리가 지각하고 경험한 뒤 보관된 것, 혹은 그 보관된 것이 재생 내지는 재구현되는 것을 가리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너의 기억> 전은 이 정의에 충실하게 인간 사회에 있어서 ‘지각’되고, ‘경험’되고, ‘재생 내지는 재구현’되는 것들을 광범위하게 다루며 화두를 던진다.
이 중 ‘지각’의 과정을 표상한 대표적인 작품이 허만 콜겐의 ‘망막’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는 것은 외부의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이 망막에 도달한 뒤 뇌에서 생리학적 신호로 처리된 결과이다. 그 생리학적 신호와 그 처리 과정은 당연하게도 물체의 모든 속성을 반영할 수 없으며, 여기서 실재(reality)와 현상(appearance) 간의 괴리가 생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색의 사과를 본다고 가정하자. 우리가 인식하는 시각적 요소로서의 ‘빨간색’은 대상 자체(사과)의 속성일까? 모두가 그 사과를 보았을 때 같은 스펙트럼의 빨간색을 상정할 수 있을까?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다원예술가인 콜겐은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레이저라는 시각적 요소를 활용한다. 우리가 외계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과 뇌에서의 전기생리학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 사이의 경계를 보다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구성된 기억을 다시금 구현해내는 두 작품, 안리 살라의 <붉은색 없는 1395일>과 송주원의 <뾰루지.물집.사마귀.점> 역시 인상적이다. <붉은색 없는 1395일>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떠한 언어적 설명도 없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케스트라의 합주 장면만을 토대로 그 배경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저격수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그 골목에서,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무채색의 옷을 입었던 시민들의 경험은 압도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으로 재현된다. <뾰루지.물집.사마귀.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을 치료 (또는 취조)하고, 사망자를 부검했던 국군광주병원의 옛 터에 서린 기억을 춤으로 담아낸다. 미처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의 잔해는 이처럼 비언어적 수단만으로 형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집단적 기억으로 남곤 한다.
누구나 ‘바다’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휴가를 보냈던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어민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대한 생태계일 수 있고, 난민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검푸른 존재일 수 있다. 얼핏 거대한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사실 240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여 제작된 이 작품처럼, 기억은 다양한 주체 안에 다양한 모습으로 간직되었다가 다시 모여 기꺼이 윤곽을 드러낸다. 전시는 그 이합집산의 과정이 ‘나의 기억’도, ‘너의 기억’도 아닌 ‘나너의 기억’임을 전하며 홍순명의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로 끝을 맺는다.
국립현대미술관 <나너의기억> 展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1층 5전시실
기간: 2022-04-08 ~ 2022-08-07
주최/후원: 국립현대미술관
관람료: 서울관통합권 4000원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 뮌, 박혜수, 세실리아 비쿠냐, 송주원, 시프리앙 가이야르, 아크람 자타리, 안리 살라, 앤디 워홀, 양정욱, 임윤경, 허만 콜겐, 홍순명 총 13명(팀)
Further Readings
김효은, 2014. 통증은 지각 경험의 일종인가?. 인간· 환경· 미래, (13), p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