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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Oct 25. 2022

통증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병원에는 소위 NP, 또는 PS라고 불리는 환자들이 있다. 병원마다 조금씩 그 명칭이 다를 수 있는데, 어쨌건 '보통의' 환자들에 비해 유난히 예민하고 가지각색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다 보니 진료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케이스는 아니어서, 병원에서 몇 번 접하다 보면 그런 분들의 공통분모를 포착하게 된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발견한 그런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독특한 어휘를 사용해 통증을 호소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아프세요?'라고 물어보면, '저릿하다, 뻐근하다, 우리하다(사투리)' 등의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칼에 베이는 듯한 느낌이예요', '등줄기에 차가운 물이 흐르면서 아픈 느낌이예요', '허리부터 시작해서 짜르르 내려가는 전기가 있는 느낌이예요' 등 유니크한 어휘로 통증을 묘사하면 그 순간부터 긴장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Institute for Neuroscience에서 주관하는 Art of Neuroscience Competition (신경과학의 예술 공모전 정도로 옮길 수 있을 듯하다)의 2021년도 대상작 'Cognition IX'에서도 그런 심리가 엿보인다. 뇌간(brainstem)과 시상(thalamus)가 맞닿는 부위의 신경 분포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창작 계기 역시 흥미로운데, 작가 Yas Crawford가 근육통성 뇌척수염, 보다 쉽게는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알려진 질환을 오랜 기간 앓아온 탓에 장기의 상태와 변화 같은 신체 내부의 감각, 즉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에 민감해진 것. 그러고 보면 병원에 오신 분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표현으로 감각을 묘사하는 게, 이런 내수용감각에 민감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Yas Crawford, Cognition IX, 2021. Winner of the Art of Neurosciences Award 2021.

가작 중 이처럼 신경의 분포를 활용한 작품이 하나 더 있어 눈길을 끈다. '변심'이라는 한국어 부제가 붙은 Adrienne Lee의 'Change of Heart'에서는 소뇌피질에서 외부로 신경 섬유를 보내는 유일한 세포인 Purkinje cell이 핵심 제재로 등장한다.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소뇌의 Purkinje cell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제작된 이 작품은 금속과 종이의 혼합 미디어로 Purkinje cell의 형태를 구현했다.

Adrienne Lee, Change of Heart, 2021. Honorable Mention of the Art of Neurosciences Award 2021.

통증은 그 자체로 사회적이고, 주관적이며, 관계에 기인한다. 객관적인 수치와 정량적인 지표로 '측정'할 수 있는 여타 질환과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함께하고, 사라지는 예술처럼 질병도 사회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 앞에 드러난다. 그와 대면하는 의사는, 그래서 시대와 소통하며 문화와 함께하는 사회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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