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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빵 Oct 16. 2020

바늘땀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13

처음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을 때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써 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생각에만 그치고 실천이라는 어려운 길로 나아가진 못했습니다. 글쓰기는 어렵기만 하고 글을 공개한다는 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저의 ‘잃어버린 책’을 소개합니다.      


    이사를 준비하며 책장 두 개를 정리하려고 한다. 남길 책과 떠나보낼 책을 분리하는 일은 단순히 책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변화된 나의 관심과 취향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잃어버린 나와 현재의 나를 생각하며 한 칸씩 천천히 정리하는 중이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프로젝트>에 소개할 <바늘땀>은 마음속 책장에도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책 소개와 발굴된 위치     


앞표지만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예측한 내용과 실제 내용은 어떻게 다를까? 뒤표지의 추천평은 내용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출간일 2012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852g | 180*235*30mm     


   <바늘땀>은 작가 데이비드 스몰의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어린 시절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은 줄거리를 알고 보는 것보다 모르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사전 정보 없이 읽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알고 봤다면 이 책만이 지닌 매력과 재미가 조금은 줄었을지 모른. 2009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그 해 수많은 언론의 '올해의 책' 목록에 올랐으며 '죽기 전에 봐야 할 만화책'에 속한다고 한다.

    

정리하다 만 청소년용 책들과 함께 섞여 가장 끝에 있다.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데이비드 스몰'이라는 작가 이름은 몰라도 아래 책 제목은 많이들 알 것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면 <도서관>과 <리디아의 정원>을 이미 읽었을 테니. 두 권 모두 데이비드 스몰과 부인 사라 스튜어트가 함께 만든 그림책이다. <리디아의 정원>은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하였고, 초등 3학년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힌다.

<바늘땀>과 많이 다른 분위기이다.


 

이 책은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년 전쯤 한 독서 모임에서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정작 그 날의 토론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 끝에 책장에서 <바늘땀>을 꺼내시면서 청소년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말씀하신 것만 생각난다. 책 내용을 설명해주신 것도 아니고, 펼쳐 보여주신 것도 아니라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끌렸나 보다. 다음날 책을 샀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픽 노블이란 미국과 유럽의 문학 형식의 문장이 많고 강렬한 예술적 성향을 강하게 표현한 작가주의(인디) 만화. 컬러와 흑백 두 가지 형식이 있으며, 특별히 흑백 형식을 ‘블랙 앤 화이트’라고 한다. 슈퍼 히어로물이 범람하던 미국 만화계에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한 형식과 양식을 갖추고 나타난 만화를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픽 노블 [Graphic Novel, グラフィックノベル] (만화애니메이션사전, 2008. 12. 30., 김일태, 윤기헌, 김병수, 설종훈, 양세혁)


   그런데, 강한 끌림에도 불구하고 바쁜 생활 탓에 책은 한 장도 펼쳐보지 못한 채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책장을 열게 된 건 몇 달이 지난 후였다. 평소와 달리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는데, 잠도 안 오고 딱히 할 것도 없어 두껍지만 책장은 금방 넘어갈 것 같은 <바늘땀>을 꺼내 들었다.

   표지에서 보이는 아이의 방어적인 표정과 태도는 '여섯 살 소년의 인생 스케치'는 내용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걸 짐작케 한다. 책은 새까만 종이에 ‘내 나이 여섯 살’이라는 하얀 글자 소제목으로 시작되는 데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곧바로 책에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구절

넌 말이 안 되는 세상에 갇혀 살아온 거다, 데이비드. 누구도 네게 사실을 얘기해 준 적이 없었지. 하지만 난 사실을 얘기해 주마. 준비됐니? 네 어머니는 널 사랑하지 않아.  
미안하다, 데이비드. 하지만 사실이야. 널 사랑하시지 않아.
(데이비드 스몰, 이예원 옮김, 바늘땀, 미메시스, 2009, 250-253쪽)         

    

    데이비드는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차가운 분위기 속에 자랐다. 엄마는 툭하면 잔기침을 했고, 방구석에서 숨어 조용히 흐느꼈다. 의사인 아빠는 퇴근하기 바쁘게 지하실로 내려가 샌드백을 두드렸다. 형은 북을 두드렸다. 그것이 가족의 언어였다. 데이비드의 언어는 ‘앓아눕기’였다.

  데이비드는 열한 살에 목에 혹이 생겼지만 부모님의 과소비 때문에 수술이 보류되어 삼 년 뒤에야 수술을 받는다. 단순한 혹 제거가 아닌 암수술이었데, 진실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드가 퇴원 후에야 이 엄청난 사실을 혼자서 알아낸 것이다. 

  열다섯 살의 데이비드는 8월 27일 오후 3시에 처음으로 상담사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상담사에게 위와 같은 말을 듣는다. 책에도 날짜와 시간이 기록될 만큼 이 날은 데이비드에게 중요한 순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때는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데이비드는 상담사와의 만남 이후부터 점차 자신을 회복해갔다. 

   

   데이비드와 주변 삶에서 충격적인 일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책을 보지 못한 분들의 감동을 미리 빼앗을 수 없으니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은 다시 여섯 살 시절로 돌아갔던 꿈 이야기를 한다. 높은 담에 갇혀 무서운 바깥세상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어린 데이비드는 장난감 차를 대신 밖으로 내보낸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동차를 건져 내려면 안전한 집에서 나가야만 했다.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생전 처음으로 정원 담벼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저 낡은 건물은 뭐지? 내 집에서부터 이어지는 길을 비질하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나는 그 건물이 할머니가 감금된 곳임을 깨달았다. 옛 주립 정신 병원 건물인 것이다. 그리고 아래 보이는 사람은 내 어머니로, 뒤따라올 나를 위해 길을 쓸고 있었다.
난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
(데이비드 스몰, 이예원 옮김, 바늘땀, 미메시스, 2009, 319-323쪽)

   

  “난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가족의 불행한 삶을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의 의지로 불행의 연결 고리를 끊어 냈다.  이처럼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도록 변화될 수 있었던 건 그림, 바로 예술 덕분이었다. 

   "내가 데이비드라면 나를 끝까지 살아내게 할 나의 힘(예술)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나에게 새겨진 바늘땀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부모의 입장에서 나 역시 아이의 마음에 얼기설기 바늘땀을 수놓고 있는 건 아닌지 긴 생각과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남는다.     

   <바늘땀>을 읽고 <도서관>과 <리디아의 정원>을 다시 펼쳐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친한 친구를 위로해주려고 만났다가 오히려 위로받고 온 느낌이랄까. 40대의 담벼락을 넘을 용기도 함께 생겨난다.데이비드 스몰의 삶 자체가 바로 '휴먼 책'이다.     


왜 이 책일까?
    

   책을 읽다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중간에 잠시 멈추고 작가 검색을 해봤는데, <바늘땀>의 데이비드 스몰이 그 <도서관>의, <리디아의 정원>의 데이비드 스몰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중간중간 내가 원래 알던 그 밝고 감동과 울림을 주는 '데이비드'가 이 어둡고 우울한 유년을 보낸 '데이비드'가 맞나 싶어 미국 사이트까지 찾아보며 몇 번이고 확인했다. “정말로 내가 알던 데이비드가 이 데이비드라고?”  

    어린이들과 책을 매개로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어린이책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여기저기 소개하고 다닌다.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두 번 생각해보게 되는 글도 있고, 부모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도 있다. 가끔 학부모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요즘 글자에 집중을 못해 책을 잘 못 읽어서 애들 책을 같이 읽어.” 라거나 “애가 만화만 봐서 걱정이야.” 


   그렇다면 <바늘땀>을 자녀와 함께 읽으면 어떨까? 실제로 웹툰이나 만화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서 만화를 좋아하지 않거나, 어린이책이 가볍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부러 그동안 읽었던 좋은 그래픽 노블을 소개해주었다. 

   이런저런 책을 참고해봤지만 자신 있게 그래픽 노블이 무엇이고 만화와는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이든 만화든 장점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한 페이지 안에 분할된 어려 컷(장면)과 만화 형식의 그림, 흑백의 선과 음영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데이비드의 꿈과 상상, 현실을 함께 넘나들며 속마음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또, 다양한 각도와 시선에서 인물의 표정과 사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데이비드의 상황에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러한 장점들은 만화 관련 이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냥,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책을 경험해보고 그 자체로 감동과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자녀와 싸우다 지쳐 어떤 위로가 필요한 부모라면 : ★★★★★

힘든 삶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 ★★★★★

뭐라도 읽긴 해야겠는데, 가벼운 건 또 싫다면 :  ★★★★★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잘 놓고 싶다면 :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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