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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Oct 17. 2024

마음에 피가 돌지 않는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그림을 그리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 화재가 그림 관련 얘기들인데 그중 단연 한국화를 전공하신 분이 자기주장도 강하시고 늘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 이 지역 미술계의 고루한 사람들 이야기며, 그러한 고루한 그림 동호회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둥 지역 아트페어를 해서 판매전을 해야 한다는 등 그림은 많이 그려서 집안에 쌓아놓으면 되지 않고 빛을 보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요자들을 생각하는 그림을 그려야 하며, 가격을 작가입장에서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사고 싶은 정도의 가격이 책정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다양하게 넘쳐나는 생각들을 거의 쏟아내다시피 열을 올리며 말을 했다.  평소 직장의 크고 작은 행사와 문제들 그리고 개인의 일상이 머리에 가득한 나로서는 예술 관련 이야기가 내 마음에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듯 신선했다. 자연스레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들이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되더라도 듣기 싫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귀담게 되고 자극제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삶에 지치게 되다 보니 평소 친구처럼 가까이 두고 위로가 되던 그림이라는 것이 잊힐만할 때쯤 이 사람들을 만나면 자극제가 되어 내 삶을 돌아보며 죽어가고 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싹을 틔울 것만 같았다.

30년 전쯤 이 지역 첫 발령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낯선 이곳에서 정착해서 살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분들이었다. 그때까지 단순히 취미로 즐기기만 했던 그림을 이분들을 만나서 덩달아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혼자 즐기는 그림으로 끝나지 않고 부끄러운 그림들을 잘 모르는 타인들에게 공개를 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십 대의 어느 날 첫 전시회를 하고 내가 그린 유화그림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께 사진으로 보내드렸더니 선뜻 내 그림을 사주셨다. 붉은 노을 앞에 서있는 소그림이었는데 초보자의 솜씨가 좋았을 리가 없었으나 주머니 사정 팍팍한 스님께서 나 잘되라는 의미로 선뜻 사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보답을 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늘 지나고 나면 아쉬움만 남는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마음이 고픈 것을 느낀다. 채워지지 않는 삶에서의 고픔을 그림으로 일부 채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림이 고파서 돈이 되지 않아도 그린다. 그리고 그리고 그린다. 돈이 되지 않아도 그려서 쌓아둔다. 팔지 못해 집안에 쌓아놓은 먼지 앉은 그림이 여러 개가 다들 있다. 내가 아는 전문 작가분은 갤러리를 끼고 열심히 매년 전시회를 하고 계시는데 최근 경제적인 사정이 나빠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꽤 잘 나가는 작가분이신데도 좋지 않은 일로 인하여 큰돈이 들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에 매월 꼬박꼬박 급여를 받는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하시기도 하셨다.

그분처럼 전문 작가로 뛰지 않는 지역의 화가들은 그림으로 먹고살지 못한다. 미술교사들은 직장에서 급여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은 학생을 지도하면서 먹고산다. 그리고 순수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림으로 먹고사는 것은 사치로 보이며 생계를 위해 무언가를 또 해야 한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면 한마디로 예술가의 삶은 대체로 곤궁하다. 생계를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젯밤에는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한 사람은 허리가 아파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는데 엉거주춤 걷는 걸음이 얼마나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말해주었고, 한 사람은 등이 시리다고 했으며 등이 시린 이유는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시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통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나는 뜬금없이 마음이 시리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아픈 것은 머리만이 아니다. 마음이 시리다. 그리고 마음이 시린 이유는 내 마음에 동맥경화 내지 혈전이 고이고 막혀서 피가 돌지 않아 그렇게 시린 것이다.

순간 사람들은 내 말에 폭소를 터트리며 서로 안아준다고 팔을 벌리고 내게 달려드는 포즈를 취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언제든 와 전화 안 해도 돼 마음 시리면 언제든 와!" 농이지만 즐거운 농이었다. 몇 잔의 맥주잔을 더 비우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거머리 같은 두통이 이번에는 오른쪽에 뇌에 붙어서 함께 잠을 자긴 했는 것 같다. 어제 역시 한의원에서 발과 손가락 그리고 머리 여러 군데 침을 꽂고 그리고 목 뒤의 피를 빼고 나른함을 느끼며 오늘 밤은 곤히 잘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잠을 청했다. 조금 호전된 평온한 밤이었다.


* 며칠 전 전시를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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