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포실포실 하얀 털북숭이 캉캉거리며 주인을 향해 살살 꼬리를 흔드는 작은 강아지를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쓰다듬기라도 하면 온몸을 발발거리며 땅바닥에 엎드리고 신뢰감이 생기면 벌러덩 땅바닥에 드러누워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는 강아지는 그야말로 '너 마음대로 하세요'다.
노후에 내 옆에 사람이 없을 때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를 옆에 두고 그렇게 반려자로 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정도로 강아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누군가 강아지를 안고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좋은 웃음으로 봤었고, 강아지를 동반한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니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도 충분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느 여자의 품에 안겨온 그 하얀 강아지는 내게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 출장을 가기 위해 일층 현관으로 내려온 나는 내 차를 가로막고 있는 비싼 외제차때문에 차를 빼지를 못했다. 내 차를 가로막은 그 외제차를 밀어보니 꿈쩍도 하지 않아 차를 둘러보며 차주 전화번호를 찾아보니 선팅이 짙게 된 차 유리안에서 차주 전화번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할 수 없이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해서 상황을 얘기하고 차주에게 연락하든지 방송을 해서 차를 빼달라고 요청을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없고 함께 출장을 가기로 한 사람과의 약속한 시간이 다되어 조급한 마음에 다시 연락을 했다. 그제야 관리사무소에서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차를 밀어본다고 하는 것이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관리사무소 직원이 걸어오면서 차주에게 전화를 하는 듯했다.
그런데 처음전화에 차주가 통화 중이라고 하더니 두 번째 전화에서 차주는 차로 남의 차를 가로막아놓고 아파트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어서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조급하고 불쾌한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차주는 자기 집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관리사무소는 몇 번의 인터폰 끝에 차주의 배우자에게 연락이 닿았다.
잠시 후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현관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 걸음걸이는 조급한 나의 마음과 달리 아주 슬로비디오로 천천히 내려오는 듯 했고 그 품에는 하얀색 털이 북슬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가 평화롭게 안겨있었다.
순간 내 화는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아니 어떻게 사이드를 잠가놓고 전화번호도 없이 평일에 다른 차를 막아놓고 있을 수 있어요?"
화를 내고 말았다.
화를 내는 내게 그 사람은
"전화를 하면 되잖아요? 전화번호가 왜 없어요?" 하면서 가리킨 곳에는 진한 선팅이 된 앞 유리 중간쯤에 작은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전화번호는 보라고 붙여놓은 것인지 보지 말라고 붙여놓은 것인지 짙은 선팅에 보이는둥 마는중 했다.
그리고는 덧붙이는 말이
"이 차(차종을 말했는데 잊었다.)에 사이드가 어디 있어요?"
하며 자기의 차종을 두 번이나 말했다. 나는 순간 그 차는 사이드가 없나? 하는 생각에 당황했다.
내 차는 사백만 원을 주고 산 중고 소형 스파크 차량이다. 그 차주가 나의 작은 차를 보고 그저 미안함을 느끼지 않기로 작정을 했는가?
그 차주는 자기로 인해 출근 못 해 쩔쩔매고 있는 사람의 당혹감은 보이지 않는지, 오로지 자신들은 보이든 말든 작은 글씨든 아니든 적혀있는 전화번호와 그리고 사이드는 원래 없는 고급차이기에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고 나는 그 여자로 인해 늦기도 하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굴렀다.
그 여자는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차 안 빼"
라고 하며 버티더니 내가 경찰을 부를까 고민하던 차에 차를 빼기는 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아침의 불쾌함을 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보냈다.
출장을 가는 길에 동행한 분께 아침의 그 불쾌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그 여자의 품에 안겨있던 그 강아지를 좋게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남의 차앞에 차를 가로막아놓고 다른 곳에 가있을 수가 있으며, 그 차때문에 출근을 못하고 늦어지는 사람에게 미안한 태도가 전혀 없으며, 그리 느긋하게 개를 안고 나올 수 있는지 정말 화가 났어요."
그렇게 화재는 애견인에 대한 분노로까지 얘기가 진행이 되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바람직한 태도는
자기들의 차로 인해 출근을 못해 발을 동동 그리는 사람에게 먼저 사과를 하는 행동이어야 했으며, 그 품에는 서둘러 나오느라 털북숭이 강아지는 없었어야 했다.
그렇게 품에 강아지를 안고 여유롭게 내려와서 그 비싼 차에는 사이드 잠금이 없으며,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전화번호가 있다고 고집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여자로 인해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살면서 의미 없이 한 나의 행동이 관계없는 타인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고, 그와 비슷한 모습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기 쉽다. 최근 아주 안좋은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어떤 여성을 자기집앞으로 개를 데리고 다닌다며 이웃집 아저씨가 심하게 각목으로 때려서 폭행을 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쇠로된 몽둥이로 폭행을 가해 쓰러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엉뚱하게 애견인에게 불똥이 가긴 했다만, 서둘러 나와야 할 그녀의 품에 안긴 강아지는 정말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되어있는 것이 좋다. 나로 인해 피해입는 사람이 없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나 아닌 제 삼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차를 빼주러 잠깐 외출하는 때에도 품에 안고 나올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는 그 강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
본인이 죄 없이 내게 잠시 미움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