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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31. 2023

트라이앵글(2009)

폭력의 굴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스가 배에서 겪는 사건은 실제로 벌어진 게 아니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학살극 이전에 이미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제스는 자기 죽음을 부정하는데,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렉의 배로 돌아간 이유는 이 죄책감을 해소하고 아들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제스가 배로 향하는 동기이자 목적은 자신의 저지른 일에 대한 자기 처벌,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부터 해방, 과거로 돌아가서 아들을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 뒤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학살극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닌 제스의 정신세계가 만들어 낸 심리적 사건이다.


 이 심리적 사건은 꿈과 동일시된다. 샐리의 친구 헤더는 “나쁜 꿈은 현실 세계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줘요(Apparently bad dreams cure you of real life stress).”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이를 해석해 보면, 제스는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학살극을 벌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제스가 마주하는 등장인물들은 제스가 살아있던 세계를 바탕으로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 배, 등장인물 등등 모든 것은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그 상징성은 제스의 상태와 생각을 대변한다. 극장에서 보자는 제스의 메시지는 연극처럼 등장인물이 각자의 상징을 가지고 있고, 이 모든 것이 환상임을 은유하고 있다.


피로 적힌 '극장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보는 제스


 또한, 연극이 은유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다. 희곡에서 등장인물과 주변인물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주인공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고 그로 인해 성장을 하며 해피엔딩이거나 슬픈 운명을 맞는다. 연극 속 인물은 이 각본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비극도 마찬가지다. 시련을 겪고 각성을 하지만 배드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정리하자면, 제스가 만들어낸 심리적 사건은 꿈이자 연극으로, 짜인 각본 안에서, 어떤 짓을 해도 똑같은 결말을 맞는다. 그 때문에 여객선 안에서 제스들의 행위가 달라도 결국 같은 결말을 맺는다.


 제스는 배 위의 모두가 죽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샐리와 다우니로 은유되는 자폐아 엄마이자 싱글맘에 대한 주변의 평가, 빅터로 은유되는 이상적인 아들의 모습, 그렉으로 은유되는 이상적인 연인(제스의 조건을 모두 이해해주는 다정한 남성) 마지막으로 주인공 제스로 은유되는 폭력적인 엄마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모든 것을 감내하고 희생할 수 있는 엄마가 될테니까. 


 먼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기 전까지 제스에 관한 이야기를 유추해 보려고 한다. 그녀는 어째서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가 됐는지 살펴야만 죄책감의 근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 항해를 떠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그녀는 왜 아들을 영원히 살릴 수 없는지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1) 생전의 제스



 제스는 집과 레스토랑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집에서의 자폐아의 보호자이자 싱글맘, 일터에서의 노동자이다. 아들 토미가 엎지른 물을 보고 제스는 이런 말을 한다. “하루만 좀 쉬자(Just one day off is all I ask).” 그녀는 지쳐있을 데로 지쳐있고, 쉬는 날조차도 토미의 보호자 역할을 하느라 쉬지도 못한다. 정신이 없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그녀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녀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자폐아와 정상 어머니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는 정상아이의 어머니보다 자기 억제의 강도가 높게 나타나며, 자기비판적인 면과 동기와 행위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불안과 근심 걱정이 더 많고, 대인 관계에서 민감하며, 현실의 냉담하며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는 아버지에 비해 자녀와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가 높고, 함께 밖으로 나가 야외활동을 선호하기보다 집 안에서 둘의 시간을 보내며 ‘희생’하는 경향이 크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누군가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그녀는 그냥 넘기지 않고 옆집의 잭에게 친절한 말투로 벨을 누르는 누굴 보지 못했냐고 묻는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줄 남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혹은 레스토랑에서 자신을 항해에 초대한 그렉이 나타나진 않았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엄마로서 희생조차 감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죄책감은 자폐아 부모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아이를 유기하고 싶은 충동에서 오는 갈등’ 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폐아 부모들은 육아 중에 1) 아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2)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지르는 등의 비정상적인 행동, 3) 부모와의 상호작용의 결여, 4) 아이의 문제행동을 부모의 문제로 삼는 주변의 시선들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제스도 마찬가지로 토미가 없었다면 내 삶이 조금 더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이내 윤리적인 자아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모성을 가지도록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제스가 “서둘러, 이러다 늦겠어 (Hurry up, Sweetheart. We're gonna be late)." 이라고 토미에게 말하는 걸 보면, 토미와 같이 그렉에게 가려고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약점으로 보일 수 있는 토미를 그렉에게 소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제스는 그렉과 좀 더 잘 되고 싶었을 것이고, 이런 마음이 컸다면, 토미의 소개를 최대한 늦추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토미는 그녀의 인생에서 '그녀의 꽃무늬 드레스를 물들인 물감'처럼 허점과 같은 존재이니까. 그렉의 항해에는 분명 그렉의 친구들이 초대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삼자의 시선 또한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스 인생의 보물이자 걸림돌인 아들 토미


 제스는 분명 그렉에게 가는 내내 굉장한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성애를 가진 엄마로서 토미를 데리고 가야 하지만, 여성으로서 제스는 분명 토미를 두고 혼자 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렉에게 가는 내내 심리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져 토미를 두고 가는 상황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교통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스가 은밀하게 바랬던 ‘사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제스는 이제 혼자 그렉에게 갈 수 있게 됩니다.



2)죽음 이후


 등장인물 제스와 토미는 사고로 인해 ‘8시 17분’에 목숨을 잃었다. 아이올로스호의 시계와 제스의 손목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이 바다와 여객선이 제스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제스가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진짜인물을 원본으로 하여 제스가 창작한 인물들이다.

제스가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시간


다우니(좌)와 샐리(우)

 샐리와 다우니는 적당한 직업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의 평범한 커플의 상징처럼 보인다. 샐리는 그렉과 동창이면서 몇 일정도 데이트를 했다고 나온다. 샐리는 자폐아 아들에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를 하는 제스가 그렉과 어울리지 않으며, 그녀를 꽃뱀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녀와 그렉이 이어지는 걸 방해하기 위해, 헤더를 데리고 와서 적극적으로 그렉과 제스의 시간을 방해한다. 따라서 제스의 상상 속 샐리와 다우니의 역할은 장애물이며, 자신을 안 좋게 바라보는 사회 속 사람들에 대한 은유이다. 이 순탄한 제스와 그렉의 항해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이다. 실례로 제스와 그렉이 방향키를 조종하며 로맨틱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땐 순풍으로 잘 나아가던 배가, 샐리의 방해로 바람이 멈추고 항해를 멈추게 된다. 


제스와 그렉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헤더


 헤더는 샐리가 그렉에게 소개하려고 데려온 여성이다. 거대한 파도로 인해 배가 뒤집히면서 실종됩니다. 제스와 그렉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기 때문에 이를 완수한 그녀는 더 이상 제스의 상상 속에서 필요 없게 됩니다.



빅터는 노숙자로 생활하다 우연히 그렉을 만나 그를 위해 일하면서 함께 생활하고, 그렉과 제스의 연결점을 만들어주는 역할과 동시에 토미와 대조되는 역할입니다. 토미는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이며, 아직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입니다. 어떤 새로운 것에 극도의 공포증이 있어서 괴성을 질러댑니다. 이와 반대로 빅터는 그렉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의존하지 않습니다. 어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순간에 먼저 뛰어들어 알고자 합니다. 따라서 빅터는 엄마의 존재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있는 존재로서 제스가 바라는 토미의 이상화된 인물입니다.


헤더가 끼어들기 전, 제스와 그렉의 로맨틱한 순간

그렉은 샐리와 다우니처럼 중산층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성격좋고 다정한 캐릭터이다. 빅터를 기꺼이 거둬서 키우는 것만 봐서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깊은 것처럼 보인다. 제스의 상황을 알고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인지 사랑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제스가 그토록 바라던 제스의 현재 삶(지긋지긋하고 숨 막힐 듯한 자폐아, 미혼모의 삶)에서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처럼 보인다.



3)아이올로스호


 순탄하게 항해하던 그렉의 배는 뒤집힌다. 이는 샐리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깨우치고, 토미를 데려오지 않음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번진니다. 이러한 죄책감은 무시무시한 파도로 그렉의 배를 휩쓸고 다가오는 아이올로스호처럼 등장한다. 그렉의 배가 사회로 나온 혹은 여성으로서 그렉과의 데이트를 상징한다면, 아이올로스는 거대한 어머니로서의 제스를 상징한다. 이 거대한 여객선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제스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그녀의 집, 토미, 엄마로서의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집을 상징한다. 다우니를 살해하고 그의 피로 ‘극장으로 가라’라고 쓴 객실 방 번호가 237호이고, 이는 제스와 토미가 사는 집 주소 ‘237번지’와 같다. 


제스의 집 번지수와 객실 방 번호


 신화속의 아이올로스는 죽음을 속인 죄로 벌을 받는다. 그 벌은 거대한 돌덩이를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것인데, 이 돌은 꼭대기에 다가서면 다시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그 돌을 산으로 올려야 한다. 이는 제스의 운명과도 같다. 그녀가 모성애를 가지고 아들에게 돌아가는 방법은 이제 마음의 균열을 일으키는 인물들을 모두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토미의 엄마로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선 사회적 관계(친구, 연인)를 끊고 토미만을 돌보는 고립된 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은 다시 엄마역할의 도피와 자식의 유기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든다.    

모든 인물을 죽이고, 자신마저 죽여야 하는 제스



4)폭력의 굴레


고립된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선 마음속에서 다른 마음을 품게 하는 요소들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폭력으로 드러나지만 그녀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또 다른 죄책감을 일으킨다. 그녀는 자주 토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이상 화내지 않을게, 설령 너가 잘못했을 때도 말이야. 그녀는 널 헤치지 않을거야(Mommy won't lose her temper anymore, even when you do things wrong. And she won't hurt you).”라고 토미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한 뒤에 엄마로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처럼 자신의 앞길과 고립된 생활을 막는 토미에게 화가 나지만 그래도 아들이니까 내가 지켜야 한다는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고, 폭력 이후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몇번이고 다짐했을 것이다. 제스의 폭력성은 제스가 상상한 이 무한한 반복의 근원이다. 자신밖에 기댈 곳이 없는 토미를 폭행하고 그녀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있다. 아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 바로 자신의 소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올로스 배에서 뛰어내린다.  

  


5)돌아온 현재(변하지 않는 상황)


 해변에서 눈을 뜬 제스는 이제 토미가 있는 집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자신이 사건 당일날 했던 토미를 향한 폭력을 차마 지켜보지도 못한다. 자신의 폭력성에 후회하며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부정한다. 제스는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폭력적인 자신을 다시 죽여야만 하고 자신을 혐오해야 한다. 자신을 죽인 제스는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희망하고, 토미에게도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며 망각을 요구한다. 제스는 용서과 인정으로 상황을 해결하는게 아닌, 폭력과 망각으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6)망각


 다음은 영화의 초반 부분에서 제시가 토미를 껴안으며 하는 대사이다. 


그냥 악몽을 꾼거란다, 아가 (You're just having a bad dream).

그것 뿐이란다. (That's all, baby. It's all it was).

나쁜 꿈은 네가 안 본 것을 봤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야 (Bad dreams make you think you've seen things that you haven't).


 그녀는 폭력적인 자신을 ‘그녀(she)’라고 표현하며 제삼자처럼 취급한다. 그리고 토미가 여태까지 겪었던 폭행은 ‘나쁜 꿈(bad dreams)’으로 취급하며, 그녀의 죽음으로 폭력은 끝이 났다고 다독인다. 정리하자면, 고통스러운 과거의 일=나쁜 꿈이 된다. 따라서 제스는 과거의 나쁜 기억을 그냥 나쁜 꿈 정도로 취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사건은 결국 그녀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표출됐던 ‘폭력성’을 하나의 꿈으로 치부하여 생기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토미가 엄마의 폭력을 망각하고 살면 모든 것이 끝이나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제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한 짓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제스의 폭력성이 자신과 아들의 죽음으로 이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드려야 한다. 이것은 비극 속 주인공과 같다. 비극 속의 인물은 자신의 죽음이 정해져 있음 인지하지 못하고, 그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는 이미 완성한 비극 대본과 같은 것이다. 모든 것은 정해졌으며, 바꿀 수 없다.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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