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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뱅뱅 May 01. 2023

중소기업에 다니면 무조건 '이직각'인가

 '위기는 어쩌면 기회'라는 관점에서

'내가 ㅈ소기업을 다녀서 그래'

회사에서 아니꼬운 감정이 들거나 울화통이 치밀 때마다 습관적으로 튀어오르는 생각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회사 생활을 물을 때에도 매번 등장하는 상스러운 말버릇이다. 나는 20명 남짓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소기업 2년차 대리다. 업종을 바꿔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는데 6개월만에 대리가 되었다. 내가 ㅈ소기업을 다녀서 그래...?


중소벤처기업부의 '2020년 중소기업 기본통계' 발표에 의하면, 국내 기업의 99.9%는 중소기업이다. 전체 기업 종사자의 81.3%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국내 소상공인·자영업자 비중이 해외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민 상당 수가 속해있는 기업 형태가 중소기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소기업 재직에 대한 낮은 만족도와 높은 퇴사율, 만성적인 구인난은 어딘가 씁쓸한 면이 있다. 현 직장에 입사한 직원끼리도 "여기 왜 다녀요?"라고 서로 묻는 지경이니 웃픈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경력 쌓아 더 큰 규모로 이직할 날이 올 것이라 손꼽아 기다리지만, 현실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경력직으로 입사한다고 하더라도 문과 계열의 직무 자체가 점점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채용의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얼마만에 이직을 성공할지 현재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장 이직할 수 없다면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로 했다. 중소기업은 무조건 최대한 빨리 떠나야만 하는 곳일까? 중소기업 재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까? 내가 대기업을 다니지 못해 갖지 못한 것보다 현재의 직장에서 얻고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근로조건이 아무리 괘씸하더라도 내가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한참 남아있지 않은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제한적인 나의 경험에 한해, '중소기업을 다녀서 의외로 좋은 점'을 말해보려 한다. 중소기업을 다니며 마음 속으로 발버둥치는 나 자신의 심적 평화를 위해 적어본다.




1. 단기간 역량 개발에 유리하다. 

소기업의 특성상, 직원 한 명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고 담당 업무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갑자기 퇴사 선언을 하게 되면 '폭탄 돌리기'가 시작된다. 곧 떠날 직원이 담당했던 고객사를 누가 맡을지를 두고 남은 직원들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상사가 조용히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당첨이다. 또한, 불시에 제안서 작성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덕분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회사가 있음을 알게 되며 해당 산업까지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연차 대비 여러 업무를 시도해볼 수 있고 책임 범위가 늘어나 단기간 고속 성장이 가능하다. (물론 고속 성장의 부작용은 어디에나 있는지라 체계적인 역량 개발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고속 성장은 빠른 승진의 기회도 가져다준다. 


2. 사내 보고를 위한 보고가 덜하다. 

중소기업의 업종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기업 대비 결재라인이 짧아 여러 단계의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중소기업 특성상 시스템의 부재로 주먹구구식 업무가 이뤄질 때가 많아 내부 보고할 것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다. 시중에 깔린 스타트업 경영 책에 의하면 이런 것을 '린 경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3. 사업가의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 

거대 조직의 일원일수록 일개 사원은 조직의 극히 제한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정말 뛰어난 인재가 아닌 이상) 사원/대리급 직원이 거대 조직에서 사업가 마인드를 갖고 비즈니스 전체를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말단 직원과 돈을 벌어들이는 주체(혹은 의사결정권자)와의 거리가 더 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의사결정권자가 어떤 방식으로 사업하는지 비교적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구나', '이런 식으로 절세를 하는구나' 등 책으로는 배우기 어려운 사업 날 것을 간접체험하며 사업가의 마인드에서 생각해볼 기회가 여럿 생긴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사업에 적합한 사람일지 아닐지 가늠하는 것도 가능하다.


4. 현명한 소비 습관이 형성 가능하다.

나의 경우처럼, 재직 중인 회사가 소기업인 것에 더해 업종이 대행업이라면 연봉이 낮을 수밖에 없다. 사회초년생 때, 갑자기 생기는 고소득의 뽕을 맞지 않기 때문에 감히 마이너스 통장을 뚫는다던가 할부로 명품백을 지르는 등의 과소비를 하지 않는다(못한다). 받는 월급으로는 평일 점심을 회사 밖에서 사먹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게 된다. 취미생활이나 운동도 웬만하면 돈이 적게 드는, 이를테면, 달리기나 독서 같은 것을 하게 된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결론적으로 절약하는 소비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진정한 재테크는 소비 방어에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5. 인맥 관리, 사내 정치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 

중소기업 재직 중인 젊은 직원 입장에서는 '어차피 여기 평생 다닐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디폴트다. 타고난 인싸이거나 오지랖퍼가 아닌 이상, 업무 외적으로 윗사람에게 아부 떠는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퇴근 이후에 회사 사람들과의 인맥 형성을 위한 술자리를 가지느라 개인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일손이 달리는 중소기업에서는 대부분이 사내 정치질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하다. 


6. 이직에 대한 욕망이 자기개발의 원동력이 된다. 

물론 요즘 대기업에 다닌다고 해서 고용이 안정된 것은 절대 아니며, 이직 준비는 직장인의 숙명이 되었다. 그러나 만약 열악한 중소기업에 다닌다면 ㅈ같은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역량을 쌓고 자기개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더 좋은 기회를 잡아 이직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진로를 찾아 비교불가한 삶을 살기도 한다. 젊은 날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 당시에는 위기상황일 수 있으나 멀리서 봤을 때에는 기회로 연결되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극복이 어려운 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1. 처음 만나는 사람, 특히 소개팅 상대에게 나를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단이 없다. 

'직장=나'는 아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가장 쉽고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은 직업 혹은 소속된 직장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모르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직업과 직장으로 가늠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억울할 것도 없다.


2. 그외 중소기업 직원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어려움이 있다. 

연차 사용의 어려움, 인사팀의 부재(직원 요구사항을 전달할 통로 부재), 직원의 잦은 퇴사로 인한 냉소적인 분위기, 잦은 업무 인수인계, 업무 교육의 부재 등이 있다. 사내 복지는 말도 꺼내지 마시라. 


결론적으로, 퇴사 및 이직은 기업 규모나 형태보다는 '현 직장에서 배울 것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 유튜버의 말처럼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지금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도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성장을 위한 발돋움이라 생각하면, 내가 처한 현실이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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