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집트 카이로 여행기
케냐여행을 마친 나는 새벽비행기를 타고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다.
한 달간의 아프리카 여행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어 그런지 이집트에 가는 비행기에서는 아무런 기대도 느낄 수 없었다. 오랜 대기시간에 공항은 또 왜 그렇게 추운지 솔직히 이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집트에 다녀와본 친구들에게 무엇이 좋았냐고 제발 내 기대감을 키워달라고까지 말했다. 친구들은 이집트 전통음식도 맛있고, 박물관도 좋았으니 꼭 가보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쩐지 기대가 더 커지진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카이로에서는 심지어 이름마저 '홀리쓋'인 (진짜 이름이 Hollyshit이다)호스텔에 배낭을 풀었다. 1박에 만원밖에 안 하는 호스텔이라 예약했으나 이름이 홀리쓋이래서 불안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깨끗하고 넓고 좋았다. '이 호텔은 최악입니다, 오지 마세요'라는 홍보문구로 대박이 났다는 어느 호텔처럼 아마도 기대감을 낮춰놓고 만족감을 주려는 마케팅 전략인가 보다 생각하며 안도했는데 떨어진 열쇠를 주우려고 침대 밑을 손전등으로 비춘 순간 그만 봐버리고 말았다. 정체 모를 흰 버섯들이 침대 밑에 몽글몽글하게 잔뜩 자라 있는 광경을.
-아, 홀리쒯.. 이래서 홀리 쒯이구나.
그렇지만 침대 밑의 버섯들은 버섯들이고 나는 너무 피곤했다. 내가 누울 자리에 핀 것도 아니고 버섯은 버섯일 뿐, 못 본 걸로 하기로 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단잠을 잤다.
다음 날에는 이집트 국립 박물관과 시장에 갔다. 박물관에서는 평생 볼 미라를 다 봤다. 인간은 물론이요 강아지, 고양이, 생선 미라까지 있었는데 털과 비늘조각까지 결이 살아있어 조금은 섬뜩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다시 돌아왔을 때 몸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라를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고대의 육체들이 여태까지도 남아있다는 것보다도 삶에 대한 집착이 광기같이 느껴져서 섬뜩했다. 그래도 삶에 그렇게 집착한 걸 보니까 이집트사람들 사는 게 참 좋았나 보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은 홀리쒯 호스텔에서 한창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서 부스럭부스럭, 꼼지락꼼지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애 하나가 짐을 풀고 있었다. 내가 침대에 달린 커튼을 치며 빼꼼 내다보자 잠을 깨워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를 하던 여자애의 이름은 중국인 친구 리. 땋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흰 피부의 친절하고 상냥한 친구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리도 오늘 친구와 함께 기자피라미드에 간단다. 마침 잘되었다며 택시를 나눠 타기로 하고 리의 친구를 기다리니 저쪽에서 리의 친구가 걸어온다. 갓 스물이 된 것 같은, 꽤 어려 보이는 남자애다. 그런데 어쩐지 눈치가 좀 그랬다. 남자애가 자꾸 리를 보고 수줍어했다.
아, 썸 타는 커플 사이에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든 걸까.
하지만 리는 어쩐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남자애 혼자 리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이었다. 리와 리를 보며 설레하는 남자애를 보자 좀 놀리고 싶어 져서 나는 둘이 커플인 거였냐고 놀렸고, 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남자애는 어쩐지 좋아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렇게 떠들어대면서 기자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관광객과 낙타와 말똥이 득시글거리는 무지막지하게 더운 사막. 난 살면서 그렇게 더운 곳은 정말 처음 가봤다. 신비고 뭐고 처음엔 솔직히 더워죽겠고 똥냄새도 나고 호객꾼들까지 따라와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두 번은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 평생 다신 오지 않을 피라미드에 온 장면을 남겨야겠다고 한창 사진을 찍는데 리는 사진을 안 찍겠단다. 그런 리를 바라보던 남자애는 느끼하게 말했다.
"진정한 미인은 사진을 찍지 않지."
신나게 사진을 찍어대던 나는 머쓱해졌다.
-야, 그럼 나는 뭐가 되냐...
리는 웃었고 남자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는 길은 아주 좁아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내부는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한증막처럼 더웠다. 한참을 내려가자 왕의 관이 있다. 거기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자신이 이곳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시나 사진을 찍고 나니 돈을 달란다. 가만 보니 이곳의 직원 같지도 않았다. 또 사기로구먼. 피라미드에 오는 택시기사도 가는 길을 빙빙 돌며 요금을 올리고 낙타를 태워주겠다던 사람도 낙타를 타고나니 요금을 올리더니.. 여기도 사기 저기도 사기였다. 피라미드 속에서조차 사기는 난무했다.
선조들이 보고 있는데 이것들이..
괘씸하긴 했지만 오백 원 천 원이라 그냥 주고 말기로 했다.
피라미드에서 빠져나오자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가까이서 피라미드를 보니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봐온 벽돌은 고작해야 내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정도의 벽돌뿐이었는데 이 벽돌들은 세로길이가 내 허리만큼 왔고 가로는 그 두 배만 했다. 찾아보니 벽돌 하나에 2톤씩 한단다. 그런 벽돌들을 230만 개 쌓아 만든 게 이 피라미드란다. 이걸 이 찜통더위에 사람이 만들었다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왜 피라미드가 있는지 알 것 같다. 이걸 인간이 만들었다는 건 같은 인간으로서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걸 정말 인간이 만들었다면 그건 불가사의가 아니라 희망에 가까웠다. 불가능은 없다는 말은 피라미드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이후에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든 게 분명하다고 하는 내 말을 듣고 이집트인 친구가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당시에 있던 나무들을 굴려 벽돌을 이동시키고 거중기의 원리로 쌓은 거란다. 그 친구의 설명에도 나는 실제로 가보고나 말하냐면서(이집트인 토박이 친구에게 감히) 그건 어쨌든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주장해서 친구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만들었다. 사실 과학적인 증거들이 많다지만 아무래도 상상의 여지가 있어야 즐거운 거니까. 외계인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어주고 떠나면서 남은 역사동안 인간들끼리 잘 궁리해 보라고 떠났다던지, 거인족들이 재미로 만들어놓고 이후에 멸종했다던지 그런 상상이 진실보다 즐거운 거니까!
그렇게 카이로에 즐거운 상상을 남겨놓은 나는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다음 여행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다합으로 향했다.
다합에서 떠나지 못하게 될 미래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