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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30. 2020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

1월 1일은 늘 새롭다. 예쁜 카페를 잘 찾아다니는 수진은 틈틈이 기회 삼아 카페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번에 찾아간 카페는 가오픈을 마치고,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카페여서 새해를 맞이해 시작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의미다.


요즘 트렌드에 걸맞은 오래된 주택을 카페로 개조한 이 카페는 그저 'O리 단길'의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진이 부여한 의미로 나에겐 기억이 남을 장소가 되었다.

오픈한 지 우리가 앉은자리는 이 카페의 메인 창이 정면으로 보이는 이파리가 세 개 정도 달린 화분 옆자리였다. ★그램의 수많은 사진 속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음료와 쇼케이스에서 유독 노랗게 보이던 단호박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나왔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카페 앞 정원에서 덜덜 떨던 수진은 가득 차다 만 달이 참 예쁘다며 달 사진을 찍었고, 나도 덩달아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연신 달을 찍어댔다.



시간은 흘렀고, 장마로 오랜 기간 내리던 긴 비가 그친 날이었다. 늦은 퇴근에 올려다본 하늘엔 가득 차다 만 달이 떠있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 나 또한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해진 대답을 척척 기계처럼 내뱉어낸 하루의 끝 올려다본 밤하늘의 달이 떠 있었다. 기나긴 장마 끝 반가움과 맞물려 공허한 그 어딘가의 스위치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툭' 눈물이 흘렀다. 수진이 생각났다.


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수진! 요즘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느라..."

뜬금없는 저녁에 풀이 죽어 전화하여 고해성사하듯 수진에게 수진은 모르는 '툭' 떨어진 눈물의 이유를 늘어놓았다. 뻐근해진 팔과 뜨거워진 볼과 귀 한참 시간이 지났나 보다. 나의 스위치가 된 오늘의 달을 보았던 그 카페에 가고 싶어 졌다.


"수진, 그때 시작하는 의미로 갔던 그 카페 기억나? 단호박 케이크를 팔던 카페! 주말에 그곳을 가보자."

"응, 주말에 봐"

가만히 듣던 수진은 제안에 승낙했다.


주말 수진과 다시 방문한 시작하는 의미를 갖은 카페는 겨울과 다르게 인테리어에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조금 더 유명해져서 테이블이 좀 더 생겼고, 특유의 톤은 유지되었지만 정돈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티 나지 않게 참 많이 바뀌었구나. 수진과 나는 그때와 같이 메인 창이 정면으로 보이는 이파리가 세 개 정도 달린 화분 옆자리에 앉았다. 화분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지만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수진도 그 화분을 보았는지, 말을 꺼냈다.
"여인초 화분! 정말 많이 자랐는 걸? 이 카페 지난번에 왔을 때랑 미묘하게 인테리어가 많이 달라져있어서 조금은 서운할뻔했는데, 여인초 화분에 위안을 생기네!"


화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찡해진다. 아뿔싸 수진의 말에 또 정해지지 않은 정해진 듯한 적당한 맞장구를 쳤고,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를 먹으며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대화는 어제의 나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수진에게 이 화분을 보고 든 생각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적당한 맞장구 이후 줄곧 숨겨온 마음이 신경 쓰여 용기를 내보았다.


"수진이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던 이 여성초 화분 말이야, 사실 나는 이 화분을 보고 조금은 나 같다고 생각해. 나라면 매일같이 드나드는 손님과 조금씩 바뀌는 인테리어로 어쩌면 전지적 식물 시점에서 시끄러운 소음의 스트레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나의 입지 등..., 걱정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화분 속 여성초는 전혀 그런 것은 없는지 고고하게 자라난 모습에 위안을 얻었어."


수진은 나의 여성초에 대한 감상평을 귀담아듣고 씽긋 웃어 주었다. 수진에게 '툭' 눈물이 났던 그날의 위안을 얻은 것은 이 카페의 여성초 화분이었다고 100%의 마음을 다 아야 기하지는 못했지만 한결 마음은 가벼웠다. 자연스레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는 수진과 있다 보면 어쩐지 나의 마음은 참 자연스레 물꼬가 튼다. 혼자서는 참 솔직하기 어려운데 신기한 일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걸까? 재잘거리는 수진에게 나도 씽긋 웃어주었다.




감정이라는 게 항상 일렁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접촉하고 있는 사물처럼 움직임이 없고, 1 아니면 0인 단순한 결괏값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흐르는 것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일렁이는 것들이 멈추고 고이게 된다면 흐름을 잃어버리고 썩어버린다. 공기와 중력이라는 자극을 온전한데, 억지로 자극을 모른 체할 수 있지 않다. 모든 것이 정지된다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지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고이기 시작한 것은 썩기 쉽다. 썩어버린 것은 냄새가 난다. 썩은 것 옆에는 보기 좋지 않은 것들이 생겨난다. 그럴 것을 원했는가? 물음을 던져본다.


다시, 흐르기 시작하기만 한다면 일렁일 수 있다. 고였던 곳에 흐를 수 있는 고랑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단지 고랑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힘이 들뿐이다. 얼마큼 썩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의지와 힘만 있다면 말이다.


흐르는 것은 흐르도록 놔두면 된다. 가령 그것이 나약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내면의 강함은 흐르도록 놔두는 것에서 강해질 수 있다. 상류 중류 하류로 내려갈수록 수면 아래의 지면의 곡절은 평평해진다. 깊고 잔잔한 수면 아래 곱고 양분이 가득한 토양이 쌓인다.


잔잔하고 일렁이는 수면에 반짝이는 햇살은 너무나도 반짝이고 아름답다. 적어도 이 반짝이는 것은 그 일렁임이 있기에 반짝일 수 있는 것이다. 사무치게 긴 시간 동안 흐를 것이다. 애쓰지 않고 흘려냈기에 고이지 않았다. 자연의 흐름이 그러하다. 1 아니면 0인 단순한 결괏값처럼 정해진 것이 없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유연하게 자연스럽게 그게 바로 나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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