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cal editor Jul 22. 2024

능소화 피는 계절에 맡은 히노끼향 종이냄새

Editor's Place 전주와 부산의 예약제 책방

*Editor's Place 전주와 부산의 예약제 책방


①부산 열람실 @yeolramsil / 1인 기록 별장, 북카페     



지도에 장소 저장만 누르며 미룬 부산행이었다, 언젠가 부산에 간다면. 가려는 숙소도 저장한지만 벌써 수년이었다. 사라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정작 오기를 결심한 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의미 없이 인스타그램만 새로고침 하다 마주친 사진 한 장. 누군가의 방처럼 보이는 그곳에는 하늘색과 갈색의 체크무늬 1인용 소파, 작은 책상, 창문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어디지? 부산, 매해 겨울바다를 보러 가던 곳. 오래 안 갔지, 지금은 능소화 피는 계절인데 – 그렇게 부산행 차에 덜컥 올랐다.     


골목 사이 시간을 머금은 건물의 쪽문을 열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어항 속에 있는 것 같은 습기를 뚫고 젖은 나무 향이 났다. 에어비앤비의 주인은 오래된 건물이라 방문객에게 곰팡이 냄새가 난다는 의심을 꽤나 받은 모양인지, 섬세한 주의사항과 함께 방에서 나는 향은 히노끼나무임을 미리 알렸다. “어떻게 이 냄새를 곰팡이랑 착각할 수가 있지?” 말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침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부산에 왔다. 


‘여기라는데, 목욕탕 글씨가 귀엽네’ 하며 딴 길로 새던 찰나, 뒤에서 ‘여기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4층의 계단을 차곡차곡 올라 어릴 적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살던 집이 떠오르는 상가주택 문에 닿았다. 문 뒤로 보이는 천장과 벽의 경계가 없는 옛날 나무집. 웃음이 실실 났다. 내가 맞았다, 사진 한 장으로 부산에 오길 잘했지. 구옥의 따뜻함을 그대로 남긴 채 혼자만의 공간으로 재해석한 곳. 어디에 앉을까 공간을 둘러보는데 구석 벽면에 ‘어바웃타임’이 재생되고 있다. 고민의 여지는 더 이상 없다, 여기다. 소파 하나 협탁 하나 놓인 공간에 슬며시 커튼을 치고 헤드셋을 낀다. 익숙한 어바웃타임의 대사들이 재생되고 내게 남은 것은 이곳의 낡은 시간을 만끽하는 일.     



②전주 살림책방라운지 @sallim_books / 예약제 무인서점, 책캉스     




 ‘여기에 책방이 있다는데’ 마치 그날의 기억을 데려오는 듯 ‘여기야’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크게 들이마셨던 나무 향이 난다. 


구옥의 세월쯤이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보이는 높은 목조 천장과 곳곳의 흙벽, 다다미방이 남아있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알아보셨을까. 곳곳에 쌓여 있는 시간의 흔적과 책의 글자들을 더듬어 보다 1인용 빈티지 의자에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방에서 무얼 할지 몰라 내내 축구 영상만 틀었단 그는 이제 어엿이 책 한 권을 들고 앉았다. 방해하는 소리 없이, 발소리와 노랫소리만 자근자근 들리는 그 편안한 침묵 속에서 나는 쓰던 글의 한 문장을 ‘시인의 책상’에서 옮겼다. 여름과 자리가 데려다준 나의 첫 시였다.   

   

흘러나오는 호권님의 흰 자욱 노래를 뒤로 하고 테라스를 열어보니, 다시 능소화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빨간 장미가 담장에 흐드러지게 필 때쯤 5월을 알고, 장미를 지나 능소화가 늘어지는 때가 오면 완연한 여름이 왔구나 싶어요. 작년과 올해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는 히노끼향 종이냄새를 맡았는데 다음 계절에는 어떤 감각으로 계절을 알아차리게 될까요.


Local Editor Nyeong 녕 씀.

작가의 이전글 나의 외로움이 너를 찾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