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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Jul 12. 2024

나의 외로움이 너를 찾을 때

Editor's Poet 에디터 콘텐츠 / Editor. Cholog

울적한 기분이 들면 오늘은 슬픔이 배정된 날이라고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로 실행되지 않은 누군가의 슬픔이 나에게로 온 것이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외로웠던 것 같다. 기가 막힌 무수한 변명을 핑계 삼아 외로움은 찾아오니까. 실패와 함께하는 밤은 유독 혼자인 기분이 든다. 실패를 실망과 동시에 견디는 날에는 외로움이 배가 되어 뒤따른다. 오롯이 나만 경험한 일인 듯 느껴지는 밤은 고달프다. 밤새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맴돈다. 되새길 때마다 멍든 자리에 다시 멍이 든다.      


자책이 짙어지는 고독한 밤은 여러 얼굴을 떠올린다. 상처를 준 사람. 상처를 받은 사람. 마음을 내준 사람. 마음을 보낸 사람. 이곳에 있거나 없는 얼굴들이 나를 한 번 더 작아지게 만들기도, 커지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능청스러운 말과 재치로 유머를 펼치며 넘어갔을까. 모두 다 맞는 말이긴 해, 그렇지만 이 부분은 내가 맞아. 라며 근거와 자신감을 함께 내밀었을까. 그렇게 우정을 빌어 친구들의 삶을 훔쳐내 하룻밤을 또 살아낸다.      


어떤 말은 내뱉어지기 위해 태어난다. 필요한 순간에 당도하기 위해 내뱉어지는 문장들. 겹겹이 쌓아오던 궤적이 무너지는 밤에는 이들이 만든 사랑의 언어를 읽는다. 귀신같이 찾아온 외로움이 불러낸 시간에서 우연이 만든 다정과 우정이 보낸 세상에 기대 나를 끌어안는다.      



*Editor's Book&Poet*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제 그는 거의 돌이 되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나의 안부를 살핀다 푸른 잎을 매단 화분이며 꽃을 가져온다 이제 그만 그를 보내고 삶 쪽으로 걸어 나오라는 말을 한다 / <망종>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여름에 태어났지만, 싫어하는 이유는 진득하기만 한 이 계절이 늘 아팠기 때문이다. 지독했던 여름밤, 술기운 섞인 목소리로 더듬더듬 시를 읽어주던 이가 있다. 나에게 거기 있지 말고 이만 삶 쪽으로 걸어 나오라고. 내가 보는 삶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다고. 반짝이고 살아있는 것들을 보며 너를 내 삶 쪽으로 꺼내주고 싶었다고.


김소연 <i에게>

요즘도 너는 너하고 서먹하게 지내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도 매일매일 일어나니. 아무에게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은 하루에 축복을 보내니. 아무에게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은 하루에 축복을 보내니. 누구에게도 선의를 표하지 않은 하루에 경의를 보내니. 모르는 사건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듯한 기분으로 지금도 살고 있니. 아직도, 아직도 무서웠던 것을 무서워하니. / <i에게>
우리는 서로의 뒤쪽에 있으려 한다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등을 보고 있으려고
표정은 숨기며 곁에는 있고 싶어서 / <우리 바깥의 우리>

사람의 마음에 총량이 있다면 너는 얼마나 가득 찰까. 바깥을 지켜주는 이가 있다. 서로 뒤에 있겠다며 내가 널 지켜줄게, 아니야 내가 널 지켜줄게, 소란을 피운다. 우리는 계속해 안부를 묻는다. 너는 어떠니. 오늘 하루는 별일 없었니. 밥은 먹었니. 그때 아프다고 했던 곳은 여전히 아프니. 이사한 곳에서 잠은 잘 자니. 숨은 잘 쉬고 있니. 새로움은 여전히 무섭니. 


안미옥 <>

틀렸어. 틀려도 돼. 하얀 목소리가 벽에 칠해진다.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 <생일편지>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너는 어떻게 내 슬픔을 알아차릴까. 혹시 너도 오늘 슬픔을 배정받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내 사랑을 보낼게. 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너를 보며 나도 끝까지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그렇게 말해줄게. 




시를 읽을 때는 꼭 소리를 내어 읽어요. 소리 내어 읽으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럼 더 정성스럽게 읽게 돼요. 우연히 다가온 문장들을 보며 몸을 일으켰듯, 어떤 말은 내뱉어지기 위해 태어난다는 믿음으로, 부디 너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Local Editor Cholog 초록 씀.


+Editor's Music+

*장필순-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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