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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Jul 06. 2024

펑펑 울어, 내가 가고 싶은 세상으로

Editor's Essay 글을 쓰는 일 / Editor. Nyeong


유난히 하얀 피부 탓에 눈시울이 차오르기 전 눈썹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야 우냐?’라고 묻기도 전에, ‘아닌데! 나 안 우는데!’ 황급히 자리를 뜨기도 전에 빨개진 눈썹이 먼저 ‘울어요, 울어’라고 대답한다. 놀랍게도 상대방이 한 일이라고는 ‘너는 어때? 니 이야기를 해볼까?’ 하나였을 뿐인데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입술을 먼저 칵 깨문다. ‘아, 제발, 지금 아니야 제발’을 읊조리며 정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 왜 울어요?’라고 되묻는 일뿐. 이상하지, 내 캐릭터는 슬픔이보다 버럭이에 가깝고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엘리멘탈의 불 원소 엠버에 가까운데. 이러한 현상은 글을 쓸 때도 똑같이 벌어진다. 덕분에 글쓰기모임을 하는 동안 매주 우는, 마지막 글은 우느라 읽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어쩌면 울고 싶어 글을 쓴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것은 나는 울보가 아니다.     


 ⓒ 영화 매직 오브 벨 아일

영화 <매직 오브 벨 아일> 속 서부극작가 몬테는 아내가 죽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타자기를 노려보는 하루를 보낸다. 쓰는 일의 원동력이었던 아내가 죽음으로써 극의 주인공 주발 맥로스도 아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야구라는 문이 닫히고 글쓰기의 문이 열린 시간들 그리고 6년, 문은 완전히 닫혀버렸다.      


나에게도 사방의 문이 닫힌 것 같은 날이 있다. 닫힌 문 안에는 뭉뚱그려 덩어리가 된 어두운 마음이 있고, 잘게 쪼아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불안이도 있다. 두 친구가 마주 앉아 방을 가득 채우면 어떤 문도 열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성실’이라는 입력값이 관성적으로 출력되는 인간이라 보통은 하루에 해내야 할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는 인간. 그날은 이상했다. 눈을 번쩍 뜬 순간부터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성실히 맞춰둔 알람을 듣지 못했고 가야 할 수업에 한 시간이나 늦었다. 원래라면 이미 수업은 끝나 있어야 할 시간, 굳이 굳이 오겠다는 나를 말리지 못해 선생님이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급한 마음은 운전도 재촉했고 끼익 끼익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거의 사고가 날 뻔했다. 진심이 부딪히는 일이 있었고 여러 가치가 충돌해 혼란스러운 날들이긴 했으나 이런 적은 없었다. 가만 누워 시간을 죽였다. 죽은 듯 누워있지 않으면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쾅쾅 때려서라도 문을 열라고 소리칠 작정이었다. 올해 나의 목표는 자책하지 않기(자학하지 않기에 가깝다) 였으므로 한참 누워, 가는 시간을 죽였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조차 크게 울릴만한 밤, 두 친구는 책상 앞에 나를 불러낸다. 자, 이제 너의 이야기를 해볼까.     


몬테는 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여름을 보내러 온 벨아일에서 씩씩한 자매들을 만난다. 34달러 18센터를 주며 글을 알려달라는 둘째 핀에게 매일 안 보이는 걸 찾아야 하는 수업을 하고, 막내 플로라는 좋아하는 코끼리가 나오는 글은 없냐고 묻는다. 그렇게 어느덧 몬테의 책상에는 술잔 대신 탄산음료캔이 놓이고 아날로그 타자기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코끼리 주인공 ‘토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완전히 닫힌 줄 알았던 곳에 다른 문이 열렸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들을 적어 내려간다. 덩어리 진 어둠을 쪼개고 쪼개진 불안을 붙여 문장을 만든다. 펑펑 울며 문장을 만들수록 가려진 문이 드러난다. 나를 이야기하려면 이 마음들을 먼저 자리에 앉혀야 한다. 활짝 열어 자리에 앉은 이 두 친구를 내보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게 쓰는 일은 펑펑 우는 일. ‘아직’ 울음이 남은 건 ‘아직’ 내가 가고 싶은 세상이 많다는 의미. 우는 일을 다 쓰고 나면 가려진 문 다음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울지 않고 쓸 수 있는 이야기와 가보고 싶은 세상은 그 문 너머에 있을까.     



ⓒ 영화 매직 오브 벨 아일
ⓒ 영화 매직 오브 벨 아일

- 원래 주정뱅이들은 그러는 법이야, 술에 취하면 금세 울게 되지. 펑펑 울면 어디든 갈 수 있어.

- 가다니요?

- 내가 가고 싶은 세상으로.


왜요, 새벽에 글 쓰지들 말라고 하잖아요. 해가 밝아 다시 읽으면 이불을 뻥뻥 차게 된다고. 그런데 전 그 밤이 좋아요.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약한 마음만 돌보면 되는 시간. 날 것의 가장 솔직한 문장이 투둑투둑 쏟아져 나오는 시간. 아직 저는 우는 일을 써요, 가고 싶은 세상이 아직 거기에 있다고 믿으면서. 이 문을 스스로 닫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가고 싶은 세상이 열리겠죠. 


Local Editor Nyeong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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