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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Jun 30. 2024

혹부리 영감 말고 진짜 영감을 받는 방법은.

Editor's Place 작은 수첩을 빼곡히 채울 영감공간

 ‘영감’. 혹부리 영감, 건넛마을 영감 말고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감정. 또는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말할 때의 영감. 나는 그 영감을 받기 위해 굳이 ‘영감 데이(day)’를 만들었다. 다시금 펜을 잡기로 한 이상, 글은 써야만 했으나 예전처럼 모든 것에 감동받고 작은 것 하나에 상상력을 불러오지 않게 된 지금, 굳이 굳이 영감을 받아야 하는 날을 만들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럼 영감 데이에는 무엇을 하느냐. 아주 잠깐 고민하고 발길 닿는 곳으로 간다. 거창하게 정해 놓고 가면 그 공간의 강렬함에 내가 지워지거나 일하는 기분이랄까. 영감 데이만큼은 틀을 정하되, 내 상상력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계기랄 것을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은연중에 자주 가게 되는 공간, 힘들 때 생각나는 공간에서 대부분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였던 것 같다. 한때는 내가 예쁜 공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게 작은 의자 위였던,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바닷가 앞이었든 간에 말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무작정 혼자 기차 타는 것이 멋진 일이라 생각해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면 제일 가까운 시간대의 기차표를 끊고 대천 혹은 여수 등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으면, 작은 수첩 빼곡히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적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몸에 밴 습관일 수 있겠다. 어느 공간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분위기로 위로받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영감의 원천이었나 보다. 사실 편안해진다는 기준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일이라 내 공간이라 칭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마감일보다 무서운 게 더 있으랴. 이게 내 영감의 방법이라면 기꺼이 나누어야지.




� 슬로우 준_전라북도 익산시 하나로 1길 34



‘영감 데이’를 만들게 된 곳. 무작정 바다를 보러 갈 시간이 지 않게 되고 나서 만난 이 공간은 울창한 나무를 앞에 두고 눈보라와 강렬한 해를 버텨낸 날과 다정한 사장님의 기억으로 영원했으면 하는 공간이 되었다. 울고 싶은 날 가만히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볼 수 있어 위로가 되었던 곳.     


� 사유의 공간_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 194 1층 3호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 세월의 흐름이 간직되는 게 얼마나 귀하고 멋진 일인지 알게 된 곳. 물건에 담긴 시간에 애정을 듬뿍 주던 주인장의 모습이 강렬했던 여름의 기억.     


� 서천 국민여가캠핑장_충남 서천군 마서면 장산로 856



굳이 만든 ‘영감 데이’인 만큼 굳이 몸을 써서 행복해지고자 방문한 곳. 프라이빗 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남았다. 엄청 큰 뱀을 만나긴 했지만 그 뱀도 작은 수첩에 적어두었으니 어느 날 영감이 될 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으면, 작은 수첩 빼곡히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적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그때 깨달은 나의 영감일지도.


Local Editor 궁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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