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Movie&Book / Editor. 궁화
깊은 곳이거나 좁은 곳이거나 어딘가에 잠겨있는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글과 영화.
어느 시대에 살고 있을 나와 나.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두 눈에는 예상할 수 없는 불특정한 다수의 것들이 한 번에 담긴다. 그리고 잠에 들면,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를 설명하는 이것들을 단순히 예민한 사람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엔 나에게 공감할 나들에게 미안한 일. 그래서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만의 방을 원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그런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그녀가 잉크 펜으로 적어 가는 글자에는 분명한 그녀의 생각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언제 어느 시대에 그녀와 닮은 이들에게 닿아 자신을 투영하고 또 살아갔을 것. 살기 위해 쓰고 죽기 위해 쓴다. 그것이 의미하는 고독은 나에게로 던져지는 계속되는 질문이자 살기 위해 고독해지는 방법이다.
마이클 커닝햄이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The Hours>는 1923년 버지니아가 영국 교외 시골에 갇힌 시간과 1951년, 그녀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은 LA에 사는 로라의 시간을, 그리고 2001년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이름으로 살고 있는 클라리스의 시간을 한데 모아 우리에게 외친다.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의 삶, 포기하지 않는 삶이 기쁨과 슬픔을 모두 떠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나는 과거를 극복했는가. 고독을 양분 삼아 써 내려간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과연 나는 환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겠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아직 써야 할 글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는 동안 역작을 쓰겠다 선언하고 데뷔작과 동시에 유작으로 남은 메리 앤 셰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건지 감자 껍질파이북클럽> 역시 주인공이 대변한 그녀의 필연적인 씀의 이유가 담겨있다. 칠십 평생을 갈구한 목마름은 단순히 유명세를 위한 글이 아닌, 써야만 하는 운명임에 버지니아와 닮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갈증은 가려도 가려지지 않고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작가는 원하지 않는 현실에 애써 몸을 욱여넣으며 누군가의 조수로, 혹은 글과 관련된 직업으로나마 하루를 버티는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실제 인물인 원작 소설의 저자 조안나를 담은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주인공 조안나가 그저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와 엮여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는지를 보면 다시금 나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억누른 욕망을 참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써야만 하는 것이라면. 호밀밭의 파수꾼에 적힌 문장 중에는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라는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의 말을 빌려 쓴 글이 있다. 그렇다. 결국, 우리는 예민하고 미친 사람이 아닌 부조리와 모순을 싫어할 뿐인 사람이다. 다시금 심호흡을 해본다. 위태로운 인생에서 삶과의 투쟁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목적을 찾은 듯했다. 어느 시대에 살고 있을 누군가도 나와 같다면, 당신의 쓰는 일이 당신을 숨 쉬게 하는 일이라면, 그저 써보자. 우리는 하나만을 외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Local Editor 궁화 씀.
*Editor's Movie&Book*
· The Hours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마이 뉴욕 다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