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일환 Aug 30. 2021

성과는 초과해서, 역할은 주어진대로

팀장 시켜주면 팀장처럼 일할게 vs 팀장처럼 일하면 팀장 시켜줄게

'팀장처럼 일하면 팀장 시켜줄게.' vs '팀장을 시켜주면 팀장처럼 일할게요.'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립구도이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대립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팀장을 시켜주는 사람이 의사결정권자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먼저 '팀장처럼' 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근데 '팀장처럼' 일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지금 있는 팀장을 제치고 내가 그를 대신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팀장을 대신하여 팀의 비전과 미션을 설정하고, 팀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팀장처럼' 일하는 것일까? 나는 '팀장처럼'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성과는 팀원 레벨을 상회해서 보여주고, 역할은 딱 그만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할을 역류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 스포츠, 군사활동 등을 비롯하여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집단활동들은 각 구성원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을 때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선수는 선수답게, 코치는 코치답게, 감독은 감독답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때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선수가 감독처럼 굴려고 하고, 코치가 선수처럼 뛰려고 하면 그 팀은 승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팀장처럼' 일을 한다고 해서 지금 내 위에 있는 마음에 안 드는(?) 팀장이 해야 할 역할을 자신이 하려고 들어서는 안된다. 팀원인 내가 '팀장처럼' 일하는 방법은 내 팀장이 '팀장처럼'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려면 팀장이 본연의 제 역할을 잘하게 만들면 된다. 제 역할을 잘하게 만드는 방법은 그가 처해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입장에서 최적의 솔루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해 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또한, 팀원 자신은 조직의 비전과 미션을 잘 숙지하고 그것에 입각한 업무들을 능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팀장은 팀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팀원처럼 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뛰어난 직원들은 자신들의 상사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보다,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조직을 떠날 확률이 훨씬 높다. 팀장이 팀원처럼 일하려고 하는 것은 둘 다 잘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팀장의 역할이 너무 버거워서 그런 것이다. 팀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질투 나서 자신이 매력 발산을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팀원이 팀장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팀장이 팀원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할을 주어진만큼만 하라는 것이 한 사람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에 온 힘을 쏟아도 그 역할을 '주어진만큼'만 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역할에서 자꾸만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본래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명확하게 직급이나 직책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역할'을 규정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여러 팀이 함께 일을 하는 경우에는 때로는 서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다. 내 경험에 의거해서 봤을 때 모호한 역할은 시간이 흐른다고 한들 저절로 정의되지 않는다. 때로는 PM, PO, PL과 같은 용어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헷갈리게 만든다. 각자의 경험하에서 각자 정의되는 용어는 사람들의 생각을 일치시킬 수가 없다. 가장 실용적이고 명확한 방법은 단순히 용어로만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구성원 간에 이번 프로젝트에 필요한 역할과 각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세밀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용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다할 때 성과의 초과 달성도 가능하다. 애초에 '팀장처럼' 일을 한다는 것은 팀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팀장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의미이다. 팀장은 자신이 팀원처럼 일하려고 하지 말고 팀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방향을 설정해줘야 한다. 구성원들의 역할이 모호하면 각자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구성원이 자신들의 역할을 모르는 곳에서는 성과가 나올 수가 없다.


인간은 팀워크, 협동심이 발휘되는 순간에 극심한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의 큰 쾌락을 느낀다고 한다. 모두가 제 역할을 다해서 조직의 목표가 달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은 진입장벽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