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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Mar 23. 2023

거북이 사건의 행복한 결말

나눔 받은 거북이가 너무 커서 생긴 일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나눔 게시판이 있다. 며칠 전 밤 11시경에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게시판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는 "거북이 키우실 분"이라는 제목을 보고 재빨리 댓글을 달았다. 평소에 아이들이 거북이를 키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글 본문을 보니 거북이, 거북이집, UV 램프, 먹이까지 준다고 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글쓴이의 집에 거북이를 데리러 갔다. 집 앞에서 기다리니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가 커다란 박스와 종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어쩐지 박스가 비현실적으로 커 보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거북이 박스를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박스를 건네줄 때 분명 아저씨는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저씨가 앞으로 거북이를 키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거북이가 들어있던 박스는 불투명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상자는 왠지 무거웠다. 라면상자보다 더 큰 상자 안쪽에 어렴풋이 거북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거북이의 등딱지 크기가 내 얼굴 크기만 한다고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아저씨를 바라보며 무어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아저씨 집에 있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오빠와 동생이었다. 둘은 아주 애처롭고 아쉬운 눈빛으로 거북이를 아끼고 사랑해 달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타이밍을 그만 놓쳐 버렸다.


"아저씨가 잘 키울게" 라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잠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거북이가 깜짝 놀랐나 보다. 거북이가 요동치니 플라스틱 상자가 앞뒤로 움직였다. 그 기세에 나는 흠칫 놀라 겁을 먹었다.


집에 데려와서 거실에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그 웅장한 거북이의 위용에 눌려 하염없이 한참 동안 거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북이도 그런 내 모습이 궁금한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가족들은 자고 있었다. 아침에 가족들이 놀랄 모습을 상상하며 데리고 왔는데 기쁨의 놀람일지 화남의 놀람일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거북이는 상자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디 한번 잘 키워보자며 마음을 가다듬고 거북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놔 보기로 했다. 거북이 등딱지를 두 손으로 잡았다. 거북이가 뒷다리로 내 손을 밀어내려고 했다. 거북이의 뒷다리 발톱에 손바닥이 찔려 피가 났다. 피가 나서 아픈 손의 통증보다 이 거북이를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아팠다.


다시 아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하지만, 거북이가 너무 커서 아이들이 겁을 먹었어요." 나는 굳이 아이들 핑계를 댔다.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아저씨에게 알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2분 뒤 아저씨는 거북이를 다시 데려와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황망하여 수프와 파스타를 챙겨 아저씨네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거북이를 건네고 챙겨간 물건들을 전해주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손 세정제 5개를 가지고 나와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이거 애들하고 같이 쓰세요."


눈물이 핑 돌뻔했다.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에 뜨거운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이웃에 사시는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라며 감탄했다.


나지막이 미소를 띠며 큰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아저씨가 처음으로 거북이 상자를 건넬 줄 때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아저씨는 본인이 생각해도 거북이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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