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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Jun 15. 2024

사월글방 - 집 꿈

나에게 집은 ‘home’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게 ‘안온함’이 우선인 집은 어릴 시절에 박제되어 있다. 추억을 담은 따뜻한 공간은 두 곳인데 하나는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조부모님이 사셨던 시골집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입학 때까지 살았던 연립주택이다. 둘 다 꿈에 등장했고 꿈에서 모두 부서졌으며 아직도 그 꿈은 생생하다.

 시골집에 친척들이 40명은 모였다. 아마도 명절이었나 보다. 모두 잠든 한 밤 중, 대청마루 한쪽에 두었던 신발장에 불이 났다. 불길이 거세지는데 친척들이 하나 둘, 방에서 이불을 끌고 마당으로 나와 잠을 이었다. 집이야 타든 말든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불길이 거세지자 친척들은 다시 이불을 끌고 집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40동 101호의 저녁은 평온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 엄마와 나, 동생 셋이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엄청난 발소리가 들렸다. 집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지붕이 (정확히는 천장이) 뚫리면서 커다란 초록색 발이 우리 옆에 착지했다. 거대한 초록발의 주인공은 공룡이었다. 아기공룡 둘리를 닮기는 했는데 하나도 귀엽지 않았다. 물끄러미 공룡을 바라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실제로도 두 집은 현재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시골집 터에 새로 지은 집에는 둘째 고모부가 사신다. 대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고모부는 본인 고향이 바로 인근임에도 (심지어 그 집안의 장자임에도) 처가에서 노년을 뿌리내린 셈이다. 사실 내심 나는 그 집을 물려받고 싶었다. 현 씨 집안에서 장자의 첫아이로 태어났지만 아들이 아니라 꿈도 못 꿀 일임을 알고는 있었다. 허나 욕심이 그랬다. 지금은 내 마음의 고향이 생판 모르는 남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충북 청주시 봉명동의 연립은 1980년대 지어진 2층 건물로 한 동에 여덟 가구가 살 수 있는 15평짜리 공동주택이었다. 일부 5층짜리 아파트도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한 동네를 계획 단지로 만든 곳이었다. 프랑스식 연립과 아파트가 생소한 사람들은 그 동네를 외면했다. 급기야 주택공사는 공무원에게 임대를 해주는 방식으로 분양을 완료했다.

연립주택은 앞뒤로 작은 마당이 있었다. 앞마당에서는 장독대를 묻어 김치를 보관하는 동네 연례행사가 열렸다. 뒷마당 쪽에는 개나리와 무궁화가 일렬로 서 있어서 동과 동 사이 경계선 역할을 했다.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지남철, 땅따먹기 등 어린 시절 놀 수 있는 모든 놀이는 그곳의 마당과 길가, 나무와 건물 사이사이에서 벌어졌다. 몇 년 전 그곳은 재개발로 사라졌고 현재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2023년 순천에서 열린 남도영화제에서 봉명동 연립주택의 최후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아주 우연히 만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추억에 잠기면서도 내 눈은 40동을 찾기 바빴다. 비록 우리 집(이었던 곳)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거기 등장하는 모든 곳이 내 기억 속 그대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공간에 대한 오랜 각인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근원인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전화벨이 울리면 “여보세요? 네 현OO 씨 댁 맞는데요. 무슨 일이신데요?”라고 아버지 직장동료의 전화를 받던 일, 엄마가 늦으시던 날 온갖 불안에 떨며 기다렸던 일, 냄비 설거지를 제대로 못해 세제가 남아 있었던지 라면을 끓였더니 세제 맛이 나서 통째로 버렸던 일, 현관문 앞에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산 차를 놓고 고사를 지냈던 일... 유년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시골집은 내가 13살 때까지 구들과 아궁이가 있는 옛날 집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밤을 숯불 이글거리는 아궁이에 넣어 구워먹었다. 한 겨울 매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고, 한 여름엔 집에서 엄청 먼 고추밭에서 농약 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새참을 가져다 드리려다 일사병에 걸린 일도 있었다. 앞마당은 할아버지 할머니 회갑잔치며, 증조할머니 장례식이며 집안 대소사를 다 치러냈다.

여전히 시골집과 연립주택 40동은 꿈에 간혹 나타난다. 나타났던 것 같은 기분은 더 자주 느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회귀본능이 존재하는 걸까? 현실적으로 나는 어디로도 회귀하고 싶은 생각이나 본능은 없다. 다만 심정적으로 눈을 감으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그곳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재에 감사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과 시댁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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