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릭 Feb 06. 2024

필요적 근시

겨울은 여러모로 피부에 해롭다.   

  

추운 날씨에 잔뜩 웅크린 세포로 단단해진 피부는 찬 바람에 거슬거슬해진다.

추위를 피해 서둘러 들어선 실내엔 따뜻하지만 건조한 공기가 가득해서 잔뜩 긴장했던 피부가 훅 늘어지고, 그 틈을 타 건조한 공기로 수분을 빼앗긴다.

웅크렸다 늘어졌다를 반복한 탓에 점점 탄력을 잃고 늘어지는 피부는 설상가상 면역도 약해진다. 

면역을 잃은 피부는 감기에 걸리기 시작한다.

트고, 갈라지고, 건조해지고, 따끔거리고...

피부에 좋은 팩을 매일 밤 얼굴에 도포하고, 저렴해서 부담이 없는 영양크림을 양껏 바르며 내일 아침엔 피부가 회복되길 바란다.

하지만 기상 후 눈을 비비며 쓰다듬어 보는 피부는 밤새 영양분을 어디다 빼돌렸는지 건조하고 거칠다.

지난밤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출근 준비를 서두르면서도 최대한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공사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에센스를 잔뜩 머금었다 홍보하는 팩트로 칙칙한 피부를 보정한다. 

추위를 뚫고 도착한 회사는 강력한 히터로 따습게 나를 맞아준다.

순간 반갑고, 순간 경계가 되는 순간이다.

분주히 업무 준비를 하고 일감에 정신을 팔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있다.

무던한 나는 묵직해진 방광을 그제야 깨닫는다.  

   

에구구...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볼일을 마치고 세면대 앞에 서 온수를 틀고 비누로 손을 닦는다.

외갓집 마당의 세숫대야가 생각나는 비누향과 온수의 적당한 온도가 좋은 기분을 만들어준다.

손에 집중했던 시선을 정면 거울로 가져간다.

거기엔 피곤해서 쪼그라진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내가 있다.

유난히 선명한 내가 있다.

시선 끝에 건조함에 잔뜩 들뜨고 갈라진 파운데이션이 선명하다.     


이런...     

내가 다초점 안경 벗는 걸 잊었군!     


서둘러 안경을 머리 위로 올려 쓰고 다시 거울을 본다.

피부가 멀쩡해 보인다.

그제야 안심을 한다.     

선명하게,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보며 사는 게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굳이 그걸 제대로 보겠다고 다초점 렌즈 안경을 써가며 들여다보면서 좌절과 속상을 겪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안경을 벗고 조금은 뿌연 시야 속에, 조금은 나아 보이는 모습에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업무를 할 때, 책을 볼 때, 휴대폰을 볼 때만 안경을 쓸까 한다.

나머지는 약한 시력에 조금 필터링된 시야로 나를 보고, 세상을 볼까 한다.

“이만하면 됐다.”하며 조금은 편하게 살아가려 한다.


필요적 근시를 필요껏 사용하며 살아가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