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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Feb 08. 2024

이해가 아닌 깨달음

화려한 꽃무늬 또는 패턴에 쨍한 색감.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의 원단이 몸을 1도 조이지 않는 화려하고 편한 옷.


젊은 시절의 나는 늘 의아했다.


"엄마들은 왜 옷스타일이 약속이나 한 듯 저렇지?"


짧고 빠글한 파마가 나이 든 어머니들의 클래식 패션템처럼 존재하듯, 엄마들의 옷 또한 그러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성장한 자식들이 자신의 몫을 하며 심신에서 멀어질 때 즈음에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클래식 패션템을 장착했다.


아줌마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찾은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 온 엄마들은 옷을 사면서도, 집에 와서 옷을 입어보면서도, 친정 엄마에게, 시어머니에게 젊은 눈에 유치하고 화려해 보이는 옷들을 선물하면서 즐거워했다.  


곱다, 이쁘다.


엄마의 엄마들의 행복한 리액션은 엄마들은 행복하게 했다.


엄마들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겠던 짧고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어느덧 나 또한 두 아들을 성년으로 키우고 심신에서 독립을 시킨 나이가 되었다.

오락가락하던 생리가 1년 넘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마침내 완경을 달성했고, 갱년기란 나이병에 걸려 뒤척뒤척 불면과 싸우고 온도가 고장 난 몸과 싸우는 그런 시기가 된 것이다.

몸이 아프니 세상 모든 게 귀찮아졌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아파졌다.

그러다 보니 매일의 생활이 버거워졌다.

보조제를 먹고 약을 받아먹어야 컨트롤이 되는 몸과 마음이 된 것이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조절되지 않자 두려움과 짜증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불이 몸을 감싸고 있어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거나, 딱 맞는 청바지를 입거나, 몸매 라인의 보정이 가능한 속옷으로 몸을 빈틈없이 조이거나 하면 곧 죽을 거 같은 두려움이 순식간에 나를 잠식하는 느낌이 들어 출근시간에 쫓기면서도 나는 입었던 옷과 속옷을 벗어던지고 와이어도 없이 편안하게 늘어나는 브라와 배꼽을 덮는 팬티로 갈아입고 허리가 고무줄로 조여지는 와이드 팬츠를 입었다.


김장을 해야 해서 퇴근하자마자 친정 엄마 집에 방문을 했던 어느 날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오지 않아 엄마에게 입을 옷을 달라 청했더니 옷장에서 옷을 챙겨주셨다.

진짜 진짜 쨍한 핑크한 자주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패턴이 몸통은 물론 팔까지 잠식한 반팔티셔츠 반바지 세트였다.

예전 같았으면 무던한 옷 찾아 입겠다고 손수 옷장을 뒤적거렸겠지만 순순히 받아들여진 옷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었다.


입지 않은 듯한 편안함


옷을 입은 감상은 딱 저 한 줄로 충분했다.

부드럽고, 가볍고, 편안하게 피부를 감싸는 좋은 느낌.

옷의 색과 문양은 강렬했지만 착용감은 파스텔톤 색감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모처럼 몸의 부대낌 없는 편한 시간을 가열차게 움직이며 김장을 했다.

김치를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엄마는


"이거 가져가서 입을래?"


하며 옷을 건넸다.

냉큼 옷을 받아 든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퇴근 후 바로 외출복을 벗어던지고 그 옷을 입고 있다.

이후로도 엄마집에 가서 자고 오면서 가져오게 된 화려뽀작한 티셔츠가 여러 개인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옷이라곤 온통 무채색 일색인 나의 옷장에 색감과 문양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그 옷들.

편안함을 주는 엄마의 옷들을 입고 있자면 불편하고 힘들었던 심신이 편안해졌다.

옷이 주는 화려함이 나이와 더불어 다소 칙칙해진 내 모습에 활력감을 얹어주었다.

그래서 잘 밤이라 이불 속에 들어가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빨간색 립밤으로 입술에 생기를 주기까지 했다.


저무는 단계에 이르러 있는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들이 선호하는 붉으스레한 립스틱

엄마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옷


그건 생기를 잃어가는 단계에 활력과 버팀을 주는 하나의 치트키가 아닐까.

힘들고 고되고 괴로운 것을 조금은 덜고 편안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이제 엄마의 옷들은 더 이상 유치하고 촌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내 눈엔 편안함과 생기를 주는 엄마의 옷은 너무나 예쁘고 곱다.


이해가 아닌 깨달음으로 나는 예쁘고 고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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