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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경 Oct 26. 2020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글로 떠나는 여행 : 2020년 2월의 글 하나를 꺼내며

얼마 전 영국과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저에게 영국은 근사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도 장소도 남의 말을 믿기보다는 직접 겪어보아야 하는 거였어요. 먹을 것이 없고 지루한 곳이라고 들은 영국은 제가 좋아하는 특별한 서점과 찻집이 가득했습니다. 프랑스는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풍경들이 멋있어서 특별한 장소를 방문하지 않아도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멋진 건축물들과 프랑스만의 아름다운 하늘 때문에 파리의 그림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더군요.


그중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일본 판화와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상징주의와 인상주의 작품들이 오랜 시간 저를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화가와 비평가들이 쓴 글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1800년도 후반부터 신문에 그림과 사진이 조금씩 실리기 시작하여, 1900년도 후반에 와서야 신문 속 사진은 당연하게 되었지요. 때문에 과거 작품들은 글로 묘사되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였으며, 유명세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핸드폰부터 꺼내는 요즘의 저에게 그 글들은 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색상과 선을 묘사하는 글들,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나 추악한 이유를 담은 글들도 있지만, 오늘은 이 글을 통해서 제일 좋아하고 자주 읽는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들 중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관한 편지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는 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1888년 6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 중
 



 위의 글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장면을 만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고흐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경이 잘 느껴지고, 감성적인 문장들이 그의 그림만큼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 전에 나누었던 섬망 증세에 관한 글을 기억하시나요? 그 글에서는 전체적인 선망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때로는 제가 본 것들을 좀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요즘에 읽고 있는 그림에 관한 글들이 장면의 묘사에 도움을 줄 것 같아 문장 하나하나 새기며 읽고 있습니다.


그림에 관한 글을 찾으면 비평하는 글이나 슬픔과 절망에 대한 글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고흐의 그다음 편지는 무척 절망적이었습니다. 환자인 저에게 인상적인 문장도 있었어요.




시인, 음악가, 화가… 그 모든 예술가들이 불우하게 살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네가 최근에 모파상에 대해 했던 말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냐. 이건 영원히 되풀이되는 물음을 다시 묻게 한다.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 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다음 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 마찰,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 중




 프랑스어로 적힌 편지들을 한국어나 영어로 해석한 글을 보면 그 글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이 글 속에 고흐의 편지를 옮기며, 어투나 표현을 조금 다듬기도 하였습니다. 첫 편지에서는 ‘~다네’로 마치는 문장이 많지만, 다음 편지에서는 조금 편안 문체를 선택하여 옮겼습니다. 옮기는 작업을 하며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까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강렬한 글은 다음의 편지에 있습니다.




여기 동봉한 작은 스케치는 30호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린 거라네. 밤에 가스 등불 아래에서 그린 별이 총총한 하늘이지. 하늘은 녹청색, 물은 감청색, 땅은 옅은 자주색이네. 마을은 파랑과 보라, 가스등은 노랑, 그 불빛은 수면 위로 비쳐 적갈색조의 금색에서 녹색조의 청동색으로 변하며 내려앉지. 넓은 녹청색 하늘 위로 큰 곰자리는 녹색과 분홍색의 섬광을 빛내고, 그 신중한 창백함은 가스등의 조잡한 금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네. 전경에는 두 사람의 연인이 조그맣게 보이지.


- 1888년 9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 중




그림을 완성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스케치와 함께 그림에 대해 설명한 편지입니다. 색상의 표현과 불빛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 큰 곰자리에 대한 설명 등 편지의 문장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옅은 자주색의 땅을 연보라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접시꽃 색이라고 옮겼습니다. 불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도 ‘내려앉다’, ‘옅어지다’, ‘내려오다’, ‘비치다’ 등 다양한 표현을 만날 수 있었어요. 편지도 그림과 같이 고유의 시선이 닿아 다양한 결과가 나온 것이겠죠? 


다른 분들의 시선에서 고흐의 편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힘든 상황에도 그리는 것에 위로받는 고흐의 모습에 공감을 표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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