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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너머 Dec 24. 2020

죽음의 불평등: 열심히 일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3D프린터 사용 안전 문제', 그 너머의 이야기

 오늘 점심에는 의원님을 모시고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전부터 줄곧 유가족분들을 찾아뵙고 싶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연대 방문 자체를 최소로만 받으면서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마침내 기회가 생긴 오늘은 국회 단식농성을 시작하신 지 13일 차가 되는 날이었다.

 김미숙선생님(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께서는 오랜 단식으로 몸이 쇠약해진 나머지 종일을 누워만 계셨다. 원래부터 의원님과 친분이 있으셨던 이용관선생님(고 이한빛 PD의 아버지)께서 앞장서 의원님과 나를 맞아주셨으나 선생님 또한 이미 너무나 지쳐 보이셨다. 의원님을 수행하는 내내 가슴이 참 아팠다. 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때의 무력감이 너무나 괴롭다.

 사실 오늘 의원님과 단식농성장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함께 연대 방문하기로 약속된 분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다. 올해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참 우연적인 계기로 파헤치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파헤칠수록 숨겨져 있던 심각성에 놀랐던 문제다. 오늘 단식농성장에서 만나 뵌 또 다른 분은, 지난 7월 육종암 판정을 받은 끝에 사망하셨던 3D프린터 사용 교사의 아버지셨다. 처음 아드님의 사망 사실을 접하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를 이후 오마이뉴스 등 언론 보도와 의원실의 문제 제기를 통해서야 인지하게 되셨다고 하셨고, 이후 유사한 사례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며 감사하게도 의원실로 먼저 연락을 주셔서 공동대응을 제안해주신 분이시다.

 미래만을 앞세워 무리하게 추진한 일선 학교에의 3D프린터 보급은 기어코 교사와 학생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최초 보급 후 7년여가 지났고 학계에서도 꾸준히 위험성을 지적해왔지만, 정부에서 현장에 안전 지침을 배포한 건 선생님의 희생이 있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뒤이어 다른 3D프린터 사용 교사 2명도 육종암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지난 10월 학교를 대상으로 벌인 후속 실태조사에서는 무려 전국의 274개 학교에서 3D프린터 사용 후 신체 이상 증세를 경험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의제화를 위해 함께 협업하고 있는 KBS ‘시사기획 창’ 탐사보도팀에서는 취재 과정에서 상당수의 새로운 피해자가 발견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물론 육종암은 애초에 의학적으로도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못한 질병이기에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외면받았고, 한참이 지나 국회의원까지 나선 후에야 비로소 피드백이 돌아오고 있다. 분명히 짚어야 할 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자재였고,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조치하지 않았으며, 희생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외양간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또 열심히 일한 누군가는 사망에 이르렀다. 이는 안전불감증이라는 안일한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다.

 국회에 와서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그중에도 나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남은 건 ‘죽음의 불평등’이라는 불편한 사실이다. 이제는 더 행복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많은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만 하는 아찔한 매일을 살고 있다.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조차도 없던 내가 매일 죽음 앞에 서야 했던 이들을 마주하는 그 순간마다, 나는 오히려 순진했던 스스로가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열심히 일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이 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죽음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잡아야만 하는 걸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기어코 들려온 비닐하우스 속 한 이주노동자의 동사(凍死) 사실에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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