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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너머 Apr 07. 2021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입니까?

'4.7 재보궐선거와 합리·상식 논쟁', 그 너머의 이야기

국회에 들어와서 처음 겪는 선거다. 아마도 인턴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겪을 줄 몰랐던 선거다. 사실, 겪지 말았어야 할 선거다. 그래서 더욱 암울하고 속상한 선거다.

열린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배출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바빴어야 할 선거운동 기간에 마치 태풍의 눈에 있는 것만 같은 불편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열린민주당 자체가 강성 친문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이번 선거 구도에서는 잠자코 있는 게 돕는 것이었다. 사실 예비후보가 한 분 계시긴 했는데, 그 분은 그냥 재미도 감동도 없는 자기희생과 함께 삽시간에 사라지셨다.

그 암울하고 속상한 선거가 내일이면 마침내 끝이 난다. 사실 선거운동 기간 물리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뿐이지 그럼에도 여전히 여의도에 있었기에, 정치권에서 오가는 각종 뒷 이야기들은 웬만해서는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이따금씩은 화가 치밀거나 답답해서 글이라도 싸지르려다 간신히 참아내고 써둔 글을 지웠던 적이 꽤 있었다.

써서 올리는 글보다 썼다가 지우는 글이 더 많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별다른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계속해서 누군가를 비판하고 지적하기만 해서 결국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을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내적 통쾌함인가, 아니면 배신감에 따른 배상심리인가. 혹은 나는 그들과 다르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식의 무의식 속의 타자화는 아니었는가.

정치에서 완전무결하게 합리적인 사람은 없다. 각자가 우선시하는 가치와 그것으로 쌓아올린 가치관이 있을 뿐. 누군가의 가치관이 시대 상황과 제반 조건에 따라 '합리'라는 지위를 잠시 얻게 될 순 있을지라도 그 지위가 영속적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조건의 충족으로 얻은 일시적 지위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한다면, 이는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연히 얻게 된 지위에 취해 그 지위 자체의 영속성만을 맹목적으로 좇게 된다면, 결국 그 끝에는 탈정치와 무정치만이 남을 뿐이다. 합리라는 지위를 벌레처럼 좇기보다 나 자신부터 겸손하게 성찰해보기로 했다. '오류가능성'이라는 별을 마음 깊이 껴안은 채.

정치라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특히 좋은 정치를 하려 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이렇게 영원히 어렵고 무거운 게 정치로서는 나은 게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아직 내일 내 한 표를 행사할 후보를 확정하지도 못했는데, 고민은 자꾸 무게만을 더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치학을 공부한 게 처음으로 후회되는 밤이다.


※ 어젯 밤에 쓴 글이라 시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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