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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샘 Jul 29. 2024

엄마의 여행과 집안 일

혼자서 흥분하는 거 이제 그만하려구요.

혼밥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 쌓인 생각들을 풀어놓을 생각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으니 신이 난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 시간, 아주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다.


2개월 전 친정식구들과의 여름휴가여행이 잡혔다.  

대학생 아이들은 지들 MT,과외 스케쥴을 들이대며 아예 통보를 했다, 못간다고.

집집마다 대학생 아이들은 같이 안가는게 당연하다는 말을 들은 터라 강요하진 않았다.

나도 분위기 파악쯤은 하는 엄마니깐.

그러면 4인가족이니 당연히 같이 가야할 사람 한명 남았다,남편.


평소 처가모임에서 안드로메다같이 빙빙돌다 필받으면 온 몸을 던지는 남편.

웬 일로 이번엔 순순히 처가여행에 따라간단다.

하지만 며칠이 못되어 아니다 다를까 웬걸, 골프를 치잔다, 이 삼복더위에.

당연히 아무도 반응을 안보였다.

골프를 안치는 막내제부, 이제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둘이 있는 남동생, 중학교1학년 아들을 둔 첫째 제부 이런 구성으로는 골프인원이 안나온다. 당연 여자들은 아무도 안친다. 나는 골린이다. 10년을 해도 뒷걸음치는 실력이라 당연 안당긴다. 골프이야기는 수면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결국 여행당일, 남편은 갑자기 회사에 10월 행사 워크숍이 있다며 안타까운 투의 카톡을 보냈다. 10월 행사는 남편이 PM으로 회사의 이름을 걸고 하는 큰 행사다.

어쩌랴~  유일하게 돈을 제대로 버는 이가 돈버는 일땜에 못가겠다는데 어찌 하겠는가.


알았다는 말만 남기고 이해를 했는지 삐졌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을 한 채 나 홀로 떠났다.


2박3일간 문자도 전화도 안했다.

동생들이 가끔 내 사진을 가족방에 올려주면 이때다 싶었는지 피드백을 달아주는 남편.



각자 남편을 챙기는 동생들, 함께 여행을 왔지만 남편과 대화가 안된다며 툴툴대는 올케, 그리고 조카들

내 원가족이 한 명도 없이 혼자 돌싱아줌마처럼 끼어있는 내 처지가 동생들 보기에는 어땠을지.

표현은 안했지만 이게 여행인지, 가출인지, 방랑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2박3일을 보냈다.


여행 내내 웃고 있어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나는 사남매의 맏이다. 맏이라서 늘 앞장섰고 중요한 일은 도맡아했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다보니 동생들도 이제 어엿한 40대. 예전처럼 녹록치 않다.  솔직히 요즘은 발언권도 영향력도 많이 쇠퇴해져가는 기분이다. 온 집안을 건사하고 동생들을 지도하며 가족을 이끌던 여장부 맏이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돈때문인가? 지갑을 여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말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물론 내 기분. 동생들은 전혀 티를 안낸다.


대신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갈수록 젊어져가는 이들 사이에 나는 나이듦에 맞는 언어와 포지션을 지혜롭게 사용해야한다. 자칫 내 심장이 하는대로 나대버리면 꼰대가 된다.


원가족도 마찬가지다. 내가 쥐락펴락하던 그들은 이제 없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어떤 불편함도 드러내지 않고 2박3일을 보냈다.

남편은 집 근처 식당에서 매일 돌아가며 외식을 하며 인증샷을 올렸다.

자기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 난 너 없어도 잘지내. 이렇게 협박하는 것 같았다.


대학생들은 부모의 여행에 관심이 없는건가?

내가 대학생때 엄마가 어디를 여행가고 무엇을 보고 왔는지 궁금해하고 물었었던가?

지금 곁에 없으니 물어보지도 못하고, 내 기억은 글쎄다.


우리 집은 주택이다.

이런 장마철엔 24시간 제습기를 가동해야 한다.

한번도 아이들이나 남편이 제습기의 물통을 비운 적이 없다.

몇 번을 톡으로 제습기,제습기했지만 아무도 자원하지않았다.

마치 '그건 니 일이잖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메아리가 없는 나의 소리에 지쳐 포기했다.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식탁위에 아이스박스와 종이박스팩이 있었다.

한우다. 이 불볕더위에 복날에 먹으라고 누가 한우를 보냈나보다.

박스를 여니 이미 비어있다.

이렇게 배달온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살짝 감동이 밀려왔다.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

층층이 냉기는 간 곳 없고 물이 뚝뚝 흐른다.

냉동실의 모든 재료가 다 녹아있다.

놀란 마음에 다 들어내고 물기를 닦아냈다.

급히 급속냉동을 누르고 다시 넣을만한 것은 도로 넣었다.

문을 닫으려다 바닥을 보니 물이 흥근하였다.

냉동실이 해동되면서 그 물들이 바닥으로 흘러나온 것이었다.


상황을 톡에 올리자 아이들은 다들 '헉~' '난 몰랐는데'하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한 사람, 남편은 무반응이다.

아마도 내가 엄청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녹아봤자 얼마나... 그래봤자 냉동고인데.. 이런 생각인지 아예 관심이 없는건지.. 심장이 벌렁거렸다.

베란다에 골프화가 눈에 들어왔다.

'골프치고 받아온거군'


현장을 다 정리하고서야 남편이 집에 왔다. 물난리가 난 이 사태를 아이들에겐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척은 한다. 그런데 남자, 뭐가 그리 난리냐는 듯이 힐끗 보고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물이 흘렀으면 그냥 닦으면 되지 뭘 그런걸 갖고 누가그랬냐 왜 그랬냐를 따지냐는 듯.


냉동실과 바닥에 고인 물을 닦아내며 오를대로 오른 열기는 한 순간에 꺽였다.

'그저 아이구 고생했네. 여행갔다오느라 피곤할텐데 오자마자 수해복구하느라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

이 한마디를 못들었다. 그냥 나만 얼굴이 벌개가지고 급 전의가 상실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조용히 오늘의 사태를 되돌아보았다.

상황에 대해 인정은 커녕 무시받았다는 마음이 훅 올라왔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한없이 무참하게 무시당한 것같은 감정에 빠질 때면 항상 나를 공격했다.

마치 내가 부족해서, 내가 제대로 내 생각을 전달하지 못해서 이런 대우를 받는가보다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리고 상대방을 원망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갈등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이 있다.

상황을 이해했는지, 거기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어떠함때문인지 등등

혼자서 상황을 객관화시켜보기도 하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나무라기보다는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려고 애쓴다.

또한 상대방을 바꾸려고, 설득시키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대신 원트(want)보다는 니드(need)를 정확히 설명해주고 합리적으로 요구한다.

애써 설명하고 화내고 요구해도 들어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겐 나의 과다한 요구는 히스테리로밖에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냉동실 해동사고는 해프닝이다. 그래서 음식을 제대로 넣고 문을 닫아야함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냈다.

다음 제습기 물통 비우기. 이건 누구나 알아야 할 집안 일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모두가 한 사람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물통을 비우기로 합의했다.

하루씩 돌아가면 제대로 익히지 못할 수 있어 일주일로 했다.

아들이 첫순서였다.

지하에 제습기가 있는지, 제습기의 물이 차는지, 그 물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아들은 처음 알았다.

이건 나의 실책이다.

아들은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며 신기해했다. 별 거도 아닌데 .....


곧 남편과 딸 차례다.

가사 일은 오롯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꼭 시켜보려고 한다.

작은 일이지만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 지 해봐야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수십가지 가사 일은 남편이 하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가사 일에 불과하다.

이제부터는 직장을 다닌다고 집안 일을 남의 일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할거다.


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들며 나의 영역으로 그들을 들일 것이고 그것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알도록 도우려고 한다.

급한 성격때문에 빨리 따라오지 않으면 그냥 내가 해치우고 말던 그 단순한 열심을 버리고 조금 늦게 조금 천천히 함께 가는 방법을 나도 익히고 공유하려고 한다.


너무 늦지 않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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