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석 Sep 04. 2022

탐 크루즈씨의 헤어질 결심

영화 <탑 건:매버릭> 에 대해 마침내, 적어본 감상기

얼마 전 극장에서 탐 크루즈 씨의 <탑 건:매버릭> 을 관람했습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 한참 늦게 관람한 감이 있지만, 직접 보는 것만큼 정직한 건 없다고 역시 영화는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짜릿했고 무엇보다도 잔잔한 여운 같은게 있어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에 오랜만인 극장관람의 경험과 탑건 시리즈에서 '매버릭'이라는 캐릭터가 쌓아온 서사의 행방들을 재조명하는 탓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그런 감각들을 극대화 시키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는 극장의 어두운 조명이 켜지고, 좌석에서 천천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출구 통로로 향할 때, 어쩌면 이 영화가 탐 크루즈 그 자신과 함께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르로서도 획을 그을 무척 상징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탑 건: 매버릭> 을 완성도 높은 블록버스터의 탈을 썼지만, 결국 점차 저물어가는 한 사람과 그가 쌓아온 그의 시대에 대한 고뇌가 담긴 휴먼 드라마의 일종으로 보았습니다. 비록 <탑 건> 세대는 아니지만, 용산 전자상가에서 아버지가 사오신 1986년 작 <탑 건> DVD에 대한 유년기의 신선한 충격과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는 개인적인 면에서도 많은 여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빠져나오며, 다시 유유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성한 짧은 메모를 수타 짜장 면 반죽처럼 치대고 짓이겨 늘려본, 나름대로의 수정본 같은 글입니다만, 그 직전에 본 영화가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 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탑 건:매버릭>은 본질적으로 놓아주고, 내려놓아야만 하는 삶의 순간들 앞에서의 고뇌를 다룬 휴먼 드라마의 영화로 보았습니다. 평생 달고 살 잔 부상처럼 그간 지고,이고,달고 살아왔던 과거의 잔상과 해묵은 삶의 체증들로부터 그 자신이 이제는 헤어져야 겠다고 결심하는, 혹은 헤어지는 것에 대해 납득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한 탐 크루즈씨와 매버릭 스스로의 치열한 고민이 가득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탐 크루즈는 영화 내내 중요한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정말 이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무모하고도 불가능해 보일 법한 비행들을 '뮤지엄 피스(구식의 오래된 비행 기체)'들로 선보입니다. 그리고는 긴장되는 순간들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걸 또 보란듯이 성공해내고 말죠. 그에게는 마치 불가능한 미션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영화 내에서 그가 꽤 고전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을 직면하게 되며, 이러한 굴레들로부터 몇 번의 헤어질 결심을 나름대로는 다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무엇보다도 어려워하고 또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이건 사실 꽤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에 출연하는 탐 크루즈 씨를 기점으로, 그간 그의 캐릭터들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은 다분히, 이와 같은 그 자신의 인간적인 갈등 혹은 망설임으로부터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말미에서 그 자신에게 부여된 상황적인 고난도, 그리고 그러한 복합적인 인간적 갈등 혹은 관계성의 문제들도 모두 아슬아슬하게 해결해냄으로서 캐릭터 그 자체를 조금 더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구축해나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가 줄곳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 역시 어쩌면 그런 부분에서 그간 그가 구축해온 시네마 캐릭터상의 특징과 탐 크루즈라는 한 개인이 엮어온 영화적 유산을 위한 치밀한 고민들을 이어가는 과정과 부분들에서 비롯되는 카타르시스같은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기체들의 액션과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다양한 기종의 전투기들과 압도적인 스케일에서 비롯되는 카타르시스도 컸습니다만, 오히려 매버릭이 가진 인간적인 고충들 속에서 그가 삶의 매듭을 풀어가려는 고군분투와 마침내, 해소의 과정들을 겪으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들이 한 층 더 깊이 있고 생동감 있는 상황들을 자아내며, 그렇게 결국에는 관람객으로서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여지들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탐 크루즈 씨의 탑 건이 시리즈로 이어지거나 프리퀄로 나올 가능성은 적어보입니다. 하지만 탐 크루즈씨는 어떨까요. 영화를 촬영하며 그가 쌓고 만들어온 그간의 '매버릭'과 어쩌면, 헤어질 결심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매버릭은 최고의 동료였던 '구스와 불의의 과거 사고'에 대한 죄책감을 완전히 지우고 마음의 큰 짐이었던 이 과거의 잔상으로부터도 헤어질 결심을 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몇 년 전부터 맨 골드 감독과 휴 잭맨의 <로건>이라던가, 무척이나 작렬한 엔딩을 보여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노타임 투 다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요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는 메인 캐릭터들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각자 나름의 '헤어질 결심' 같은 것들을 염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관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이를 감각적으로 풀어냄으로서, 그렇게 서로가 담아낸 그 시간과 각자가 기여한 바들을 멋진 마무리를 위한 여지로서 진실되게 남겨두는 것이 요즘의 미덕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과 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