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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석 Mar 07. 2024

나를 이끄는 것

질문이 있는 삶에는 궤적이 있다

2024년 2월 중순, 졸업식에 참석했다. 6년 전 입학식에서는 크고 넓게만 느껴졌던 홀이 작고 좁게 느껴졌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학부생으로서의 길었던 여정이 막을 내렸다. 한 주간은 그간의 작업물과 수업자료, 필기들을 각각 하드 드라이브와 캐비닛에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리하면서는 어릴적 사진앨범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졸업이 마냥 기쁘지 않았던 것은 곧 닥쳐올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염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학기별 마인드셋을 적어둔 메모와 매거진 B 컨셉의 작업물 목업, 년도별 회고기록 ⓒ정희석


오랜만에 이전의 작업물과 필기, 짧은 메모, 스케치, 낙서 등을 천천히 살펴보았는데 세밀함이 떨어지는 작업들도 있었다. '다소 과감했던 작업' 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던 것들을 보면서 치열했던 학부생활과 고마웠던 동기들을 떠올렸다. 대학은 전공에 대한 지식과 디자인 작업에 유용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만들고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학부생활 6년은 학부과정 4년에 군휴학 2년이 더해진 결과다.


식상하지만 이 글은 '6년 동안 나를 이끈 것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나를 이끌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잘 알고 싶었다. 핵심에 가까운 질문일수록 식상해 보이는데 막상 답을 하려고 하니 답하기가 어려웠다. 부끄럽지 않은 작업물을 창작하기 위한 욕심이었을까,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미 때문이었을까. 욕심과 꾸준함 같은 것은 오히려 기질에 가깝다. 여러 가지 요인이 떠올랐다. 그러나 고민 끝에 강한 확신을 느꼈던 것은 '질문'이라는 단어에서 였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파악하고, 본인의 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찾으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죠." - 김경희 편집장, <당신의 삶에는 질문이 있나요?>, Editor's Letter 중


잡지 컨셉진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컨셉진은 매달 하나의 새로운 질문을 통해 새로운 한 달을 살 수 있게 돕는다는 콘셉트로 발행되고 있는 잡지이다. '당신의 삶에는 질문이 있나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92호에서 편집장 김경희는 잡지의 첫 페이지에서 질문의 목적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질문의 목적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 문제를 발견하면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한 적합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질문의 그러한 목적 덕분에 질문이란 우리가 삶을 목적한 방향으로 이끄는 구심점이자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질문이 그랬다. 정리를 하며 살펴본 학부생활 동안의 여러 메모와 회고기록에도 항상 어떤 질문이 존재했다. 그 질문은 때때로 작업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 또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오류에 관한 것이기도 했으며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기도 했다. 비단 6년 동안의 학부생활뿐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중요하다고 여겼던 각각의 시기에는 매번 몇 가지의 유의미한 질문이 있었다. 그때 그 질문은 스스로에게 향할수록 더욱 예리해졌다. 그 덕분에 스스로부터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답은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와 의미 있는 의사결정들을 이끌어내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질문이 이끄는 삶에 기꺼이 이끌려 여기까지 온 셈이다. 질문은 지금까지 줄곧 삶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왔던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단지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스스로 질문하는 삶에는 질문이 만드는 궤적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는 그것을 안다. 질문이 스스로에게 중요한 정체성이라면 질문이 만드는 궤적은 겪어온 시간과 앞으로 겪어야 할 시간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일은 살아갈 삶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나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질문에 기꺼이 이끌리는 삶, 질문의 궤적을 부지런히 쫓는 삶. 그런 입장에서 이제는 감히 좋은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질문의 질이 중요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어쩌면 질문의 질이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반짝이는 의미는 대게 스스로 발견한(할) 답 쪽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향해 충분하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질문이 이끄는 삶에서 삶을 이끄는 질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고 관심있게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꾸준함이 좋은 덕목일 수 있다. 스스로가 던진 질문의 궤적을 부지런히 쫓아가며 과정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


간단한 질문을 자주 던져보는 습관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질문도 던질 수 있게 된다. 필요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던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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