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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석 Mar 21. 2024

공은 둥글고, 삶은 계속된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시청기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는 결국 스스로에게 어떤 것이 유일한 것인지 알고 그것을 날카롭게 가는 데 달려있는 셈이죠. 기다리는 시간이 지치는 건 분명하지만 좋게 생각하려고 해요." 근황을 묻는 대화 끝에 꽤 담담한 척 답했지만, 그때의 내 속은 깎아 놓은 과일이 수분을 잃어가는 것처럼 누렇고 볼품없게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건 나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 썩 달가운 이야기도 못 된다. 무엇보다도 끝을 봐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다. 그건 꽉 막힌 길에서 귀찮아져 버린 차를 끝까지 몰고 오는 마음과도 같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채감 같은 것에 둘러싸여 알게 모르게 모나게 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던 때가 있다. 매 순간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당시의 나는 많은 면에서 하위 리그로 강등된 프로축구팀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모났고 못 미더웠으며 불안정한 한 편에 욕심과 약간의 오만함 그리고 도박과도 같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게으른 희망이 과거의 영광처럼 얼룩져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하는 <죽어도 선덜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머리라도 식힐 겸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시리즈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는데, 그런 생각 역시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고 굳이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결 같이 응원해 온 팀이 있다. 참고로 그 팀도 좋은 성적을 거둔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선덜랜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던 팀이다. 예전에는 기성용과 지동원 선수가 뛰었던 1부 리그 소속의 팀이었지만 다큐멘터리의 첫 촬영을 기준으로는 2부 리그(EFL 챔피언십)로 강등된 팀이다. 스포츠 다큐멘터리에는 '난관이 있지만 점차 나아지는 경기력으로 끝내 목표를 달성한다'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그러나 회가 거듭 될수록 선덜랜드에는 나아질 기미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이나 이적으로 인한 이탈로 급격히 얇아져버린 선수층,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구단에 닥친 재정난 등, 프로 축구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는 3부 리그(EFL 리그원)로 강등되고 만다. 정말 이러다가 무슨 일 나는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다큐멘터리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 여기까지가 전에 적어 두었던 다큐멘터리의 두 번째 시즌까지에 대한 글이다. 


24년 2월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의 세 번째 시즌을 공개했다. 선덜랜드가 2부 리그로 승격하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데 키릴 뤼이 드레프스라는 젊고 부유한 구단주가 새롭게 등장한다. 젊고 부유해서 의사가 분명하고 결정이 빠르며 야망도 있다. 그래서 경기를 치를수록 선수단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언제나 낙관을 시사하는 신호탄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즌은 하나로 뭉치지 못한 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하나로 뭉친 팀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적날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 시즌이 40분짜리의 에피소드 단 3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볼만큼 흥미진진한 이유다.     

<죽어도 선덜랜드>를 스포츠 다큐멘터리라고만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지역에 연고한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공동체를 연결하는 유대감이다.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렇다. 선덜랜드가 중요한 경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자 다큐멘터리 중간에 스포츠 중계 채널인 스카이 스포츠의 경기 해설자는 이야기한다. "선덜랜드에게는 불길한 패배였습니다. 이번 시즌에 승격을 못하면 팀과 팬들만 낭패가 아닙니다. 도시 전체가 고통받는 것이죠" 라고. 


지역사람들은 같이 울고 같이 화내다가 또 실낮 같은 희망을 발견하고는 같이 환호한다. 다큐멘터리 내내 선덜랜드의 모든 경기가 그 지역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죽어도 선덜랜드>는 경기와 결과가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면에서 휴먼 드라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길고 참담했던 시즌들이 끝난 후에도,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찾은 아버지의 목 메인 한 마디가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이유다. 지역을 상징하는 스포츠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믿음이 다큐멘터리의 전부이자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한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때의 나 자신 역시 침몰하는 배의 탑승객 같았다. 그 와중에 손에는 놓기 싫은 것들만 가득한 처지였는데 잘 살고 싶은 무거운 욕심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고, 그래서 팀이 추락하는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나도 줄곳 울컥했다. 축구와 승급 따위랑은 상관없이 꽉 막혀서 정체된 상황이 너무 내 처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할 것을 다시 해나가야 한다는 게 그때는 꽤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 죽어도 선덜랜드잖아, 그렇지?"라는 대사가 나에게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로 들렸고 다큐멘터리에서 사람들의 그런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온갖 복합적인 상황과 감정을 그저 삶의 순간으로 담담히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죽어도 선덜랜드>는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으레 다루는 성공과 그 비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성공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보다도 모든 걸 실패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삶의 일부로서 수용하려는 용기있는 태도에서 공감을 불러오며 감정을 동요시킨다. 그런 태도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한 상상 대신 현실과 본질 같은 걸 끌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비단 축구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건 사소한 것조차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때의 망가진 나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선덜랜드는 1부 리그 복귀를 목표로 하지만 아직까지 번번이 2부 리그에서 조마조마 아슬아슬한 경기를 펼치고 있다. 경기를 챙겨보고 있진 않지만 응원한다. 그리고 지역 서포터들의 지지도 여전하다. 


* 이 글은 The Lake Poets의 Shipyards와 함께 읽으면 좋다. 해당곡은 <죽어도 선덜랜드> 다큐멘터리의 오프닝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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