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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Oct 27. 2024

집으로 가는 길 21

1루로 코 박고 달리기.. 그 이후가 기대될 때

(1) 90분 내내 전념해도 한 골조차 만들지 못하는 축구가 좋다. 9회 동안 1점도 내지 못하는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포인트가 축적되는 농구나  테니스보다 실재에 가깝다.


(2) 9회말 이미 진 게임이다. 고작 2루수 앞 땅볼을 치고선 타자는 씨뻘건 얼굴로 1루로 코 박고 내달린다. 그래봐야 아웃이다. 심판이 무심하게 손짓한다. "아웃." 


(3) 타자는 10번 나와서 2-3번 안타를 치기도 힘들다. 선수로 뛰려면 진루에 실패하고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오는 심정에 익숙해야 한다.  


(4) 승리의 서사를 붙든 다수는 축구장에서  메시와 같은 선수만 보인다. 메시에게 골을 먹고 고개를 숙인 수비수들이 눈에 들어온다면 (SBS '골때녀' 여자축구 방송은 이걸 작정하고 보여준다) 축구는 더이상 축구만이 아니다. 


(5) 내리막과 골짜기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위험한 순간이 아닐까?


(6) 급류에 떠밀려 내려가는 느낌.. 뭐라도 붙들고 순적한 순간까지 버틴다. 후회와 상실감도 넘치지만 역설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모험적이면서도 안전한 때이다. 생명과 평안이 그만큼 간절한 때가 있었던가.


(7) 이기면 물론 좋다. 그러나 져도 괜찮다. 승리와 패배라는 문법, 이분항의 서사는 늘 과장된 것이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고 한없이 기다리면.. 기다림만이 유의미한 종결이란 생각도 든다. 


(8) 그렇지만 코 박고 달리고는 진루에 실패한 이후부터 다음 타석까지가 미분의 변곡점과 같은 시간일 지도 모른다. 이제 기울기 변화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9) 몇년 째 변곡점에서 대기 중인 느낌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덜컹"하는 큰 소리와 함께 뭔가 앞으로 훅 밀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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