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2
바닥에 엎드릴 때 들리는 소리: 야유와 전쟁
1. 늙고 병들고 목숨만 붙어 있는 분들을 만난다. 서로에게 천국 소망이 있지만 이별은 여전히 감내하기 힘든 순간이다. 삶과 죽음을 다룬 철학, 미학 서적을 찾아 읽는다.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회복된 삶도 묵상한다. 남은 삶을 전혀 다르게 살아가자는 계획을 세우곤 한다.
2. 그런 중에 고개를 들어 세상의 소요를 바라보면 생명과 생태의 가치가 소멸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너무 많은 분들이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다.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넘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드는 원고는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깊은 곳에 나아가 그물을 내리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3. 바쁘게 움직이는 분들은 분주한 소음만 들린다. 자기 소리만 울릴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아픈 사람을 돌보고 땅에 납작 업드려 지내는 사람은 사방이 너무 조용해서 위협하고 고통받는 소리가 잘 들린다. 서로를 압살시켜야 중단될 것 같은 거친 야유.. 그런 것도 잘 들린다.
4. 무엇보다 전쟁을 자극하는 북소리도 있다. 전체주의 사회 북한은 늘 불편하고 두렵고 미디어에 비치는 북한 동포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그들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5.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했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다. 북한의 통치권력이 선택한 폭력과 전쟁의 텍스트가 늘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이번엔 징후가 좋지 않다. 저들만 돌아이라면 지나치겠는데 우리 주변에도 돌아이가 많다. 난폭하다. 저지르고 본다. 전 세계가 패키지로 거칠어지고 있다.
6. 국회의원이 국가안보실장에게 미사일 타격을 언급한 건 개인만의 과오가 아닌 듯하다. 핵무장을 발언한 대통령이 북한이 핵 공격을 하면 즉각 핵으로 응수한다고 발언했다. (그걸 듣고도 덤덤한 사람들의 표정이 더 놀랍다.)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외교전략을 맺을 지 모르지만 푸틴 대통령도 대규모 핵공격 연습을 과시하면서 북한에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원조를 약속했다고 알려졌다.
7. 정치인의 독단이 넘치지만 최소 절반을 휘어잡을 수 있는 포퓰리즘이나 자국중심주의가 제대로 통하고 있으니 영웅으로 사는 그들이 정말 뭔 일이든 더 크게 터뜨릴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정말 괜찮을까?
8. 사재기라도 하고 피난처라도 구해둬야 할 것 같은 느낌.. 욕심 많은 정치인들, 소멸되는 민주주의, 급변하는 시장질서, 더욱 강력해진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무엇보다 전쟁의 위협.. 지금의 통치질서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감싸줄 수 있을까?
9.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며 살 것이라고 해도.. 그보다 먼저 '내게는, 우리에겐, 이 나라엔, 21세기엔, 위기도, 전쟁도, 상실과 아우성도 절대 없을 것'이란 교만과 몰지성을 두고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자꾸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