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페이스북의 피드에 지하철에서 찍힌 또 다른 마스크 전쟁이 보인다. 70대로 보이는 남성,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18놈아”, “18년아” 쌍욕을 주고 받으며 고성을 내지른다. 다른 포스팅도 비슷하다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그를 질타한다. 그도 질 수 없다. 삿대질을 하며 그들과 언쟁을 시작한다.
댓글을 보면 비-마스크의 남성은 “나이를 헛쳐먹은”, “지긋지긋한 노인네”이다. 지하철에서 “18놈아”라고 고성을 지르며 혐오 남성을 저격한 20대 여성은 영웅이 된다.
나도 내 공간을 침범한다고 느껴지는 모든 비윤리적 행위가 싫다. 난 예의바른 사람이 좋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청년, 버스에서 큰소리로 통화하는 아저씨, 식당에서 어린 자녀가 뛰어 다니고 내내 고함을 질러도 방치하는 엄마, 제품의 결함을 질문하는데 짜승스럽게 응대하는 판매원, 그 모든 장면이 불편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내 옆 자리에 앉는다면? 아마도 난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건 윤리의 문제이다. 윤리는 정치가 아니다. 만약 윤리가 정치를 대신한다면, 그러니까 예의, 인성, 성품, 배려, 관용에 관한 과잉의 의미화 작업이 넘치기 시작한다면, 정치적 논의는 왜곡되고 폄하될 수밖에 없다.
싸울 수 있다. 산다는 건 전쟁이기도 해서 누군가는 몸동작이든, 얼굴표정이든, 욕이든, 대자보든, 무엇으로든 어디서든 시비를 걸 수 있다. 제대로 된 싸움질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명분은 차별과 정의 같은 정치적 의제일 것이다. 혹은 내 일상과 정체성을 가해하고 자유와 권리를 포획하는 관행에 저항하는 노력일 것이다.
각자 삶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제만 붙들어도 충분히 바쁜 인생이다. 소송을 할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한다. 필요한 자료도 읽어야 하고 토론도 하면서 어딘가 글을 쓰기도 해야 한다.
마스크는 어떤가? 마스크의 문제는 정치인가, 윤리인가? "18년"과 "18놈"이 지하철에서 왜 그리 싸우고 있는가?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당연한 상식은 모두 이데올로기이다. 당연한 상식으로만 살아가면 우린 행복할까? 좀처럼 흔들지 못하는 상식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서울대가 제일 좋다," "여자가 상냥해야지," "일본은 이기고 봐야지,"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마스크를 잘 쓰는 건 개인에게 요구된 윤리적 행동이었지만 이젠 지금 사회체제를 구동시키는 집단의 당연한 신념이 되고 있다. 윤리는 그렇게 정치를 대신한다. 내가 보기엔 마스크 쓰지 않는 인간들에 대한 정죄가 커질수록 우리는 탈정치화된다. 역설적으로 좋은 삶에 대한 가치는 온전히 다루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마스크에 관한 상식을 놓고 질문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문구로 남은 논점을 대신한다:
"정치담화에 재갈을 물린 곳에선 무엇이 허락되는가? 윈스턴이 관찰한 <1984>의 그곳은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맥주, 축구, 도박, 엉뚱한 곳을 겨냥하여 투정을 부리는 것”이 넘친다. 그곳은 결코 좋은 언어사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