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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05. 2024

버티는 힘, 언어의 힘 1

화살로 만들어 세상에 쏘아 올립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2024, 필로소픽) 단행본을 출간하며 에필로그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런 책을 낸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주어가 ‘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드는 건 용기가 필요합니다. 연구논문과 학술 단행본을 출간해온 내가 그나마 감정과 일상을 드러낸 곳은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공간이었습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때, 연구자 일지를 쓰듯이 그곳에서 사소한 소회를 남겼습니다. 다분히 개인적이거나 감상적인 글이었고 논거가 마땅치 않은 주장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난 거기 남겨진 내 글이 솔직해서 참 좋았습니다. 지우지도 않았고요.


자기검열도 있었습니다. 보여주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아니었는데 너무 다양한 분들과 연결되면서 누군가에겐 어떤 글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어에 관한 별별 연구를 다 하면서도 고만고만한 글쓰기로 내가 경직된다면 연구자로서 나는 어디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까요?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거기서마저 정직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타인의 시선을 품은 채 글을 쓸 것 같았습니다. 난 1인칭 시점의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사건부터 팬데믹 사태까지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겐 충격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전쟁에 맞먹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사망자의 규모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격리된 현실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죠. 우리 모두 국가로부터, 학교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수많은 공문과 지침을 전달받았습니다. 감염, 격리, 차별, 대립의 소식에 지쳤습니다. 위험과 안전 얘기를 제외한 다른 언어는 모두 침묵했습니다. 각자 심리적 망명처는 찾았을지 모르겠지만, 마땅히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아주 촘촘한 나라이며 국가는 방역과 안전의 이름으로 우리의 사적 공간까지 침투했었죠.


그렇지만 나는 고통만 호소하며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내뱉는 화가 잔뜩 난 말에도 휘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현재성이랄까요, 나만의 미학적 실존에 더욱 예민하고도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느릿하고 촌스럽지만 딴딴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책상에 앉아서 매일 글을 쓰는 일이었고, 그걸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화살처럼 쏘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초고를 마친 날에 눈이 왔습니다. 한없이 내리는 눈을 보는데 묘하게 봄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역설적인 공존을 좋아합니다. 비극성과 긍정성이 함께 묶인 공간 말입니다. 춥지만 따뜻한 느낌, 비관을 직면하지만 낙관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 용기. 산고의 고통은 쳐다보기도 안쓰럽지만 새로운 생명을 기대하는 희망. 그런 걸 원고로 만들면서 결코 고립과 불안을 자초하며 도망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책을 낼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작년에 《미학적 삶을 위한 언어감수성 수업》 책을 낸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출간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합니다. ‘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출판사’라는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고, 아늑한 창덕궁 옆길에 위치한 회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편집데스크에서 보여준 밝고도 친밀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 홍순용 편집자, 정성껏 원고를 읽고 사려 깊은 피드백을 준 김다연 편집자, 책의 중심 주제가 돋보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구윤희 편집장,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서로 경청하고 함께 도울 때 더 나은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울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사랑하는 가족, 함께 일하는 동료, 소셜 네트워크 친구(독자) 그리고 중앙대학교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만한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팬데믹도 지났고 책을 몇 권 내면서 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상실과 고립의 시간을 겪을 때 함께 우정을 나눈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책 정보: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4896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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