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현 작가 16번째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G&J 갤러리서
# 시화(詩畵) 빼곡한 골목마을과 ‘기억풍경’
목포 유달산 아래 마을은 여전히 그대로다.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 붙잡아야 할 희망이 남아서일테다. 올망졸망 늘어선 담과 지붕들, 구불한 골목길은 아직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희망을 잊지 않고’ 남은 온기(溫氣)를 내어주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여전히 사람들은 드나들고, 시인과 화가, 주민들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시화(詩畫)를 담벼락에 새겨 넣었다. ‘골목의 주인’이자 ‘시(時)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시화마을’은 이제 ‘바다가 그린 마을’로 불린다.
시간 속으로 사라져가는 존재와 공간, 삶의 조각들을 목포 온금동과 서산동 ‘달동네’와 ‘행복한 마을’로 재구성하고 있는 조순현 작가의 16번째 개인전 <기억의 풍경-행복한 마을>이 7월 24일(수)부터 29일(화)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G&J갤러리에서 열렸다.
# ‘연희네슈퍼’를 지키는 벚꽃나무
“달동네 꼭대기에 오남매 가족이 살았어요. 어느 날은 가족들이 연탄가스를 마시면 다 쓰러져요. 엄마가 저를 깨워서 ‘아이스께끼’ 사오라고 시키면, 제가 저 아래까지 내려가서 ‘밤맛바’라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올라왔어요. 그걸 형제들한테 물려주면 뽀글뽀글 일어났거든요”
‘동네슈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소이면서 마을주민들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공간이다. 조순현 작가에게 ‘달동네슈퍼’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으면서도 유년의 행복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어릴 적 아픈 기억조차 가족들이 만들어 간 사랑과 희망의 시간으로 새겨진 ‘행복 창고’인 셈이다.
벚나무 꽃가지가 왕성하게 뻗쳐나가 연희네슈퍼를 ‘보듬어 지키는 것’은 유년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그곳에서 자란 모두에게 따뜻한 희망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작품명-연희네슈퍼, 100x72.7, Acrylic on canvas, 2020]
# 기억의 안식처, 온금동의 잔상과 희망
작가 조순현은 사람들을 품어 온 달동네를 ‘기억의 안식처’로 삼아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는 ‘언덕 마을’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한 존재인 ‘어머니’와 가족들이 살아 온 ‘삶의 조각들’을 담아낸다. ‘언덕 위 마을’은 그 자체로 ‘사람’이자 ‘가족’이면서 ‘생生의 빛’이다.
목포시 온금동(溫錦洞)은 ‘다순구미’, ‘다순금’, ‘따순기미’, ‘따신기미’로 불려왔다. ‘따뜻하다’는 전라도 말 ‘다순(따순)’과 ‘바닷가로 돌출된 땅’을 의미하는 ‘기미’를 더해 그렇게 불렀다. 1897년 개항 이후에도 그 이름과 공간을 지키고 있는 ‘온금마을’은 지금도 유달산과 목포 바다를 지키는 ‘누군가의 안식처’다.
그 곳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집’들이 불을 밝히고 희망을 품은 채로 일상을 살아낸다. 안식처를 밝히는 ‘백열등’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생生의 수고愁苦와 기쁨’을 넉넉히 비추어준다. 달동네를 둘러싼 ‘빛의 잔상’과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무수한 ‘푸른 별빛 하늘’이 희망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작품명-(좌)<온금동 잔상>, 117x74, mixed media on canvas, 2020, (우)<온금동 희망>, 600x820, Acrylic on LED, 2014]
# 언제나, 누구에게나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우리가 살아가는 ‘집’과 ‘마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그곳은 ‘따뜻한 과거’와 ‘성실한 현재’, 그리고 ‘희망적인 미래’를 약속한 곳이어야 한다. 그곳이 ‘달동네 토막집’이여도, ‘고층의 아파트’라도 모든 이에게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공간이어야 함은 마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집과 마을은 ‘유달산’과 ‘벚나무’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명–(좌)<봄의 향연 1>, 100x100, Oil on canvas, 2024, (우)<봄의 향연 2>, 100x100, Oil on canvas, 2024]
#덧붙이는 문장. 목포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으로 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