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Aug 18. 2024

90. 아버지의 소파

― 나를 키운 동화

내가 초등 3학년이던 1970년대 중반, 우리 가족은 방 2칸 전세살이를 끝내고 12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방은 그전과 같은 2칸이었지만 아파트는 아버지에게 꿈의 집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한 뒤 아버지는 1인용 소파를 안방에 넣었다. 아버지가 당신을 위해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소파를 들였다면 엄마는 세 자녀를 위해 50권짜리 소년소녀문학전집을 할부로 넣었다.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까지 그 소파는 내게 책 읽는 공간이자 쉼터였다. 아파트에 살던 5년 동안 그 소파는 학교생활이 버거운 나를, 책 읽는 나를 품어주었다. 폭넓은 소파는 아홉 살 즈음의 소녀가 팔걸이에 머리와 다리를 걸치고 눕기에 맞춤했다. 벽 쪽으로 붙은 팔걸이 양쪽엔 영어사전과 국어사전, 옥편이 놓여 있었다. 책 읽기는 항상 그 소파에서 이뤄졌다. 50권을 평균 세 번씩은 읽었다. 네댓 번씩 읽은 책도 있었는데 ‘소공녀’도 그중 하나였다.    

  

소공녀 이야기는 동화의 특성상 권선징악의 결말을 가졌다. 1970년대 중반 볼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 소년소녀문학전집은 내성적인 아이였던 내게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소공녀 세라를 되새긴다. 세라를 나이보다 성숙하게 만든 데는 부자 아빠가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내재된 결핍이 한몫했을 것이다. 아빠도, 엄청난 재산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세라가 가진 내면의 힘은 갖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세라가 아빠에게 받은 사랑과 가정교육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지혜의 밑바탕이 됐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50년 세월을 거슬러 아버지의 소파에 누워 동화책을 읽던 아홉 살 즈음의 나를 만났다. 세라만큼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나의 지난 50년도 잔잔히 흐르는 강물 같지만은 않았다. 삶의 거센 물살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었던 것은 어쩌면 수많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함을 선택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 악과 타협하는 순간 행복한 결말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동화 속 주인공들이 알려주었다. 내성적인 내게 안온한 쉼터이자 책 읽는 공간이 돼 준 아버지의 소파, 엄마가 생활비를 쪼개 할부로 넣어준 50권의 책. 그런 환경 덕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많은 책 속에서 뒹굴며 어른이 된 뒤에도 나는 사랑을 전하는 일에는 여전히 게으르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에야 좀 더 자주 엄마에게 얼굴을 비비고 온기를 전할 걸, 하고 후회한다. 지난주에 아버지 집을 방문했다. 살갑지 못한 딸은 아버지 입맛에 맞는 몇 가지 음식으로 마음의 빚을 덜려고 한다. 다음엔 아버지와 그 옛날의 소파에 대해 얘기해 봐야겠다. 팔걸이 폭이 평평하고 넓어 사전을 쌓아둘 수 있었다거나 질감이 톡톡한 녹색 천 커버를 입혔다거나 하는 …. 어쩌면 그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버지의 소파가 어린 시절의 내게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요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소파를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소파는 어린 내가 맘껏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의외성이 우리 삶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중년의 기도는 갈수록 소박하고 겸손해진다.   

  

글을 쓰기 전 나를 키운 동화를 톺아보는데 많은 책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 글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의 소파’였다. ‘소년소녀문학전집 50권’을 떠올리자 바로 아버지의 소파가 딸려 나왔다. 서울에 살면서 부산의 작은 아파트를 떠올릴 때 크고 포근했던 그 소파가 그리운 순간들이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 소파가 어린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명확해졌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아이에게 엄마가 있듯이, 엄마가 잠시라도 부재하는 순간을 채워주려 내게 아버지의 소파가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