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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Sep 29. 2021

나의 허리 디스크 극복기

뭐? 내가 허리디스크라고?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한다. 하루에 5km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애피타이저, 큰 마음먹고 소고기 먹는다는 기분으로 15km 이상을 걷던 나였다. 그 정도 걷는 기본식에 일몰의 주황 빛깔에 번진 한강을 곁들이면 트러플 오일로 재워 미디엄 레어 구운 스테이크 먹는 기분 그 이상이다. 걷는 거에 성이 차지 않는다 싶으면?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서 마시는 물은 한 여름의 대구 날씨에 시원한 얼음 맥주 한 잔의 그 이상이다. 새우깡마저 랍스터 같은 맛을 선사한다.


그만큼 걷는 것과 등산을 좋아했고 나에겐 행복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갑자기 허벅지가 아파 산을 오르지도 제대로 걷질 못했다. 조금 무리해서 단순 근육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동네 병원에서도 그냥 단순 염좌일 거라 했다. 동안 너무 무리했나 보다.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걷자. 응? 그런데 다시 걸어도 허벅지는 자꾸 아프다. 뭐지? 이게 그 운동선수들이 말하는 햄스트링 부상인가? 운동선수 친구에게도 물어봤고, 헬스장 하는 친구에게도 물어봤지만 뾰족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걷질 못하니 살이 찌기 시작했고, 움직이지 않으니 자꾸 먹게 되고, 배달어플의 다양한 이벤트는 나를 확찐자로 만들게 했다.


 다른 병원을 찾았다. 다른 병원에서 내가 허리디스크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난 허리가 아닌 다리, 허벅지가 아프다! 선생님에게 되물었다.


 "선생님, 허리디스크는 허리가 아파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허리가 아니라 다리가 아픈데요?"

 "네.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다리 쪽으로 가는 신경을 눌러서 그런 거 일 겁니다. 일단 MRI를 찍어 보시죠."


 설마 허리 디스크겠어? 일단 MRI 비용이 25만 원, 실비 하루 적용가에 딱 들어온다. 뭐, 보험 적용되니까 일단 찍자. 그렇게 시끄러운 MRI 기계 안에서 꼬박 20분을 보내고 나왔다. 동안 만나던 의사 분은 휴가라 대표원장 선생님을 만났다. 대표원장 선생님 진료실은 넓고 좋다. 여러 연예인과 유명인사와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응? 사진 속 선생님이 맞나? 여기 확찐자 추가요! 크록스를 신은 대표원장 선생님의 표정에서 심각함이 묻어난다. 영상을 보여주며 나에게 설명했다.


 "지금 4번 5번 사이 척추에 디스크 터진 거 보이시죠?"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으니 크록스 선생은 부감 샷에서 측면 샷 허리를 보여준다. 부감 샷으로 된 허리를 봤을 땐 몰랐는데, 측면을 보니 좀 알아보겠다. 4번과 5번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다른 곳과 좀 다르다.


 "지금 심각한 상태입니다. 디스크가 터져서 지금 인대가 부었고 신경을 심하게 누르고 있습니다. 왼쪽 다리 아프지 않으셨어요?"


오른쪽 다리가 아팠지만, 왼쪽 다리도 뭔가 갑자기 아픈 기분이다. 기분 탓이겠지?


 "지금 기술이 좋아져서 수술 말고 시술하셔서 터진 곳을 지져야 합니다. 시술하시고 스케줄 잡으셔야 합니다. 이러다 발가락까지 저리고 나중엔 온몸이 아파요. 대변보실 때 마저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건 뭐 협박인가? 현타 제대로 왔다. 크록스는 나를 미생에 나온 뽀글이 김대리 같은 상담원에게 안내를 시킨다. 뽀글이는 시술비가 130만 원이라고 한다. 뭐? 130만 원?? 시술은 10분밖에 안 걸리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안심시킨다. 돈 걱정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보험이 뭐가 있는지 물어본다. 뽀글이는 이 정도 보험이면 입원처리로 해서 시술비 130만 원은 물론 입원 보상비를 더 챙길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시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고민했다. 진짜 시술을 해야 하나? 시술인데 130만 원? 그래도 보험 처리되는데 이득 아닌가? 고민하는 나의 표정을 또 읽은 뽀글이가 세상 가장 선한 미소를 지으며,


 "저도 시술받았는데, 말짱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시고 받아도 돼요. 저희 병원 장비가 좋거든요."


 뽀글이도 확찐자였다. 허리가 꾸부정해 말짱해 보이지 않는다. 넥타이를 너무 조여 보는 내가 숨 막힐 지경의 뽀글이. 여기가 병원인지 복덕방인지 원… 단순 저주파, 물리치료, 도수치료였다면 고민하지 않았다. 삼촌도 친구도 허리디스크로 고생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저 고민 좀 해보고 시술 날짜 예약 잡을 때 전화드릴게요."


 뽀글이의 언짢은 표정이 마스크를 뚫고 느껴졌다. 나는 MRI 영상 CD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삼촌도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리에 함부로 칼 대면 안돼!"

 "수술이 아니고 시술인데?"

 "시술이나 수술이나 같아. 절대 안 돼! 나는 한의원 갔어. 허리는 꾸준하게 관리해줘야 하는 거야."

 "..."


 친구가 말한 한의원에도 갔다. 한의원에서도 역시 허리는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크록스가 거짓말한 건 아녔구나 싶다.


나는 허리디스크 환자가 되었다


 한의사는 수술은 선택이랬다. 추나요법과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보란다. 그리고 선생님은 추나요법과 침 치료, 그리고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다리만 아팠는데 뭔가 벌써 허리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플라세보 효과가 이렇게 무섭다. 병원비를 수납하는데 10만 원이 넘어가는데 한의원은 실비처리가 조금 애매하다. 내가 든 실비보험은 한의원에게는 불리하다. 계속 이 금액으로 매주 병원을 다니긴 부담스럽다.


 집에서 허리 디스크에 대해 엄청 검색했다. 내 MRI 영상을 보며 남들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봤다. 나는 도통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아무리 신경이 눌러서 다리가 아픈데 왜 허리는 아프지 않은가? 남들은 다리도 아프지만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유튜브에서도 허리디스크에 관한 영상은 다 챙겨봤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늘 나를 허리 쪽으로 안내했고, 그러다 마주한 어느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인데 유튜브를 하고 말씀도 재밌게 하신다. 설명도 재밌고 허리에 좋은 운동을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유튜버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병원을 찾았다. 면목동이다. 아, 나도 목동이긴 한데 면목동은 지나치게 멀다. 서울 살면서 거의 가보지 못한 동네 면목동. 악어와 목욕탕 거리쯤은 되는 거리. 그래도 예약전화를 해본다. 선생님은 매우 바쁘시다.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단다. 진료도 일주일에 사흘만 하신다. 나머지는 방송이나 외진 때문에 바쁘신 듯하다. 뭐 어떡해. 기다렸다. 그리고 내부순환로를 달려 면목동으로 갔다.


면목동 의사


 드디어 면목동 의사를 만났다. 면목동 의사는 앞 선 의사와 달리 몸이 좋았다. 의사 가운 안으로 그의 근력이 느껴진다. 역시 진단은 같았다. 선생님 역시 내 허리는 심각한 상태란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앞 선 상황을 다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수술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수술은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겁니다. 죽을 것 같진 않죠? 재활이 하셔야 합니다."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정말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선생님, 근데 전 왜 허리디스크라는데 왜 허리가 아프지 않죠?"

 "등산이랑 걷는 거 좋아한다고 하셨죠? 지금 허리를 보면 코어 근육이 아주 좋아요."


그래, 등산이 나쁜 건 아녔어 ㅠㅠ


 "다른 사람 같았으면 허리 아파 죽었을 겁니다. 근육이 그나마 잡아주고 있어서 허리는 덜 아팠을 겁니다."

 "선생님, 그럼 전 뭘 하면 될까요?"


면목동 의사는 툭 던지며 이야기했다.


 "플랭크 많이 하세요. 그럼 좋아지실 거예요."


 면목동 의사는 바빴다. 대기 환자도 많았다. 밖으로 나보다 심각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허리 안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다. 퇴근시간에 맞이한 내부순환로의 막힘은 강남대로 곱하기 강변북로다. 마치 9호선 급행열차 같다. 차라리 걸어가는 편이 빠른 거 같다. 걷고 싶다. 등산가고 싶다. 나는 불행해졌다. 근데 플랭크? 늘 스쿼트 런지 플랭크가 뭔지 헷갈렸는데 플랭크를 하라고? 그렇게 어두워지고 집에 도착했다.


재활의 시간


 나는 면목동 의사 말대로 집에서 플랭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플랭크는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필라테스로 소개한다. 필라테스가 재활에 좋다고 들었다. 보통 운동선수들이 부상당하고 재활할 때, 필라테스를 많이 한다고들 한다. 주변에 필라테스 하는 남자는 없었다. 남자가 필라테스를 해도 되나? 유튜브로 필라테스를 검색하다 보니 하는 남자들이 많다. 해도 될 거 같다. 동네 가까운 필라테스장을 갔다. 필린이는 일단 단체 레슨보다는 1대 1 레슨을 해야 한단다. 필라테스 한지 5분 만에 땀을 쭉쭉 흐른다. 선생님은 히터를 끄고 수건은 가져다주신다. 뭔가 부끄럽다. 더 부끄러운 건 필라테스 하면서 자꾸 삐져나오는 뱃살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뽀글이 상담원과 크록스 의사의 그 이상이었다. 이 몸으로 플랭크를 하면 내 팔이 견뎌내지 못하겠다 싶다. 언제 내가 이렇게 살이 찌고 흉해졌지?


 살을 빼야 한다. 필라테스로는 부족했다. 동네 헬스 PT를 끊었다. 동네 헬스장 PT선생님은 늘 무섭다. 나를 강하게 키운다. 마치 아빠 같다. 상처 받은 내 몸은 필라테스 선생님의 칭찬으로 위로받는다. 면목동 의사는 2주에 한 번 인대 강화 주사를 놓아준다. 주사를 맞고 나면 다리가 아프지 않다. 조금씩 걸었다. 그리고 조금씩 운동량을 늘였다. 그리고 친구의 소개를 받아 한약까지 먹었다. 한약을 먹으니 자동으로 술을 끊게 되었고, 식단을 관리하게 되었다. 살이 조금씩 빠졌고 필라테스 할 때 땀도 덜 난다. 그리고 이제 플랭크 하면서 숫자를 세며 30초씩 여러 번 한다. 습관적으로 플랭크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필라테스에서 플랭크는 기구를 써서 다양하게 시킨다. 그렇게 필라테스 선생님은 잘한다고 칭찬한다. 신난다. 헬스 선생님은 맨바닥과 짐볼을 이용해 플랭크를 한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 헬스 선생님은 늘 “다시”를 외친다. 필라테스와 헬스는 뭔가 음양의 조화가 잘 맞다. 나는 하루를 플랭크로 시작해 플랭크로 끝냈다. 이젠 플랭크를 하며 숫자를 세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 3분은 거뜬히 하게 되었다. 살도 10kg을 뺐다.

다시 MRI 검사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월요일에 MRI를 다시 찍는다. 주말이 초조했다. 날은 벌써 추워져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날씨. 몸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이따금 통증이 있어 괜찮아졌다고 확신할 순 없었다. 불안함에 또 플랭크를 한다. 이젠 플랭크는 습관이다. 그래도 뭔가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에 또로 마감 1분을 남겨두고 로또를 산다. 로또의 결과는 월요일에 확인한다. 만약 당첨된 주말엔 돈을 찾지도 못하고 한 숨도 못 잘 테니 말이다. MRI 결과를 보고 로또 확인을 해야지. 그렇게 불안함을 달랜다.


 월요일이 되었다. 면목동으로 간다. 면목동 진짜 너무 멀다. 내부순환로는 서울의 혈을 뚫는 도론데 어쩜 하루도 빠짐없이 막힌다.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운전 중 문자가 울린다. 생전 당첨되지 않던 나이키 범고래 운동화 드로우에 당첨되었다는 메시지다. 응? 뭔가 기운이 좋은데? 그래. 긍정으로 생각하자. 만약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우울해하진 말자! 범고래를 신고 다니면 되니까!


 면목동 MRI는 40만 원이다. 보험은 25만 원까지 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이자 개월 꽉 채워 결제부터 한다. 40만 원짜리 MRI는 헤드폰을 주고 듣고 싶은 음악까지 틀어준다. 나는 힙합을 선택했고, 20분 동안 “괜찮을 거야”를 힙합 리듬에 맞춰 50번은 외친 거 같다. 음악을 들으니 20분은 금방 지나갔다. 다시 면목동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MRI와 나를 번갈아본다. 마스크에선 또 심각함이 묻어난다. 불안하다. 무슨 말을 할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네???"


뭐지? 심각해진 건가? 의사가 MRI 영상을 보여준다.


  "6개월 만에 이렇게 괜찮아진 환자는 처음 봅니다. 허리디스크에 완쾌는 없지만 완쾌라고 보셔도 됩니다. 이제 등산도 하셔도 되고 많이 걸으셔도 돼요."


 기쁘다. 눈물 날 것 같았다. 6개월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구나. 운동의 노력은 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결과를 맞이해준다. 기쁘다. 의사가 나에게 의아해하며 되묻는다.


 "근데 도대체 뭘 한 거죠?"


나는 그간 노력을 단 세 글자로 근엄하게 말했다.


 "Plank."

 "네?"

 "플랭크요."


선생님에게 북한산부터 가도 되겠냐고 했더니, 아차산부터 가란다. 면목동 의사는 내가 근처 사는 줄 아나보다.


 "선생님, 저는 목동입니다."

 "아이구, 멀리서 오셨네요."

 "네. 안산과 우장산이 가까워요. 거기부터 다닐게요."


 로또는 여전히 당첨되지 않았다. 다행이다. 로또 1등이 되었으면 오늘의 이 행복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등산할 생각에 신난다.  


<로또가 되었으면 이 글을 쓰지 않았겠지?>
<당첨된 범고래는 유아 사이즈........나는 언제 범고래 신어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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