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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Nov 15. 2021

이사 후, 이케아에서 만난 반갑고 그리운 사람


 이사를 했다. 뉴스에서만 봐 내 얘기가 아닐 것 같던 전세대란에 참전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해서 계약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은 1년만 계약하고 1년 뒤 전세금을 올려 다시 계약하는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계약 파기를 했고 다시 집을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금 괜찮은 매물이다 싶어 전화하면 금방 없어졌고, 찾더라도 사진과 많이 달라 성에 차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방을 확인하고 자기 직전까지 다방 어플을 확인한다. 아이폰의 직방과 다방 어플이 위치한 곳에 액정이 닳기 시작하는 것 같다. 두어 달 집을 보다 보니 심신이 지쳐가고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원인모를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쳐있던 찰나에 겨우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사실 자금을 조금 더 확보하니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한 번의 계약 실패 덕에 이번엔 보자마자 가계약하고 목표 날짜 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볕 잘 들고 앞에 전망 탁 트인 동향인 집이다. 반지하에 오래 살았던 경험 덕(?)에 볕과 뷰가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다. 한강 뷰는 아니지만 나에겐 찰지게 좋은 뷰와 살 타도 좋을 정도로 좋은 볕을 주는 집이었다.  


<전세금 뽕 뽑기 위해 매일같이 일출 타임랩스를 찍는다>


 이사 전, 혼자서 이마트에 대략 4-5만 원 치의 청소 도구를 사들고 이사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엔 미리 락스를 뿌려두고 바닥부터 쓸고 닦고 수납장을 닦고 창문까지 쓱싹-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두꺼비집 내부까지 청소를 했다. 청소는 삶의 열정에 대한 가장 정확한 척도이다. 청소가 즐겁다. 청소가 즐거우면 삶의 질도 높아진다. 이건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다. 그런데 분명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이다.


 집과 어울리지 않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당근 마켓에 처분한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겠다 싶은 물건은 무료 나눔으로, 취향 타는 물건들은 시세에 맞춰 팔았다. 어느덧 당근 마켓 매너 온도는 40도를 육박하게 되었다. 아끼던  책과 DVD, 비디오 테이프, 잡지들은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비워내야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니까.


이사집 기사님께서 정리를 잘해뒀다고 좋아하셨다. 반포장으로 선택한 옵션이었지만 완전 포장이사처럼 잘해주셨다. 아직 팔지 못한 책상은 분해를 해둬야 잘 팔린다며, 도착 후 직접 분해를 해주셨고, 냉장고의 청소법부터, 대리석 바닥 관리 등등 여러 팁을 알려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이사 후 짜장면 먹을 것을 소고기국밥을 사드렸다. 단무지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드시는 모습에 괜히 흐뭇했다. 누군가 그랬다. 부동산 복비는 깎더라도 이사집 기사님에게는 돈을 더 드려야 한다고... 아주 많이 드릴 수 없었지만, 이사집 어플 수수료 떼이는 만큼의 돈을 더 드렸다.


가구와 물건들이 생각만큼 없어 공허했다. 비워냈으면 즉시 채워야 할 것, 이사 후 이케아는 국룰인지라 바로 출발을 했다. 사야 할 것들이 많았다. 침대부터 소파, 수납장 등등.


시국이 시국인지라 평일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쇼룸부터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구부터 예전에 샀던 소파가 등장했다. 그 소파는 고양이들이 오줌을 하도 싸대서 결국 냄새 때문에 버렸다. 그 소파에 앉아 잠시 추억에 잠겼다.


다시 일어나 다른 가구들을 보는데 어느 어머니와 아들이 그 소파에 앉아보며, 이거 어때? 이건 너 결혼하면 사자. 라는 말을 한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에겐 서글픈 기시감이었다.


대략 6-7년 전, 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오셔서 새로 생긴 이케아가 궁금하다며 가고 싶다며 졸랐다. 그 소파는 엄마가 사준 소파였다.


 "엄마, 반지하에 이런 소파 두면 뭐해?"

 "그래도 이런 거 사면 접었다가 폈다 공간 알뜰하게 쓰면 좋잖아."


 엄마와 했던 대화가 모두 생각났다. 괜히 서럽고 부럽고 생각하기 싫어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다음에 등장하는 침대와 의자 역시 우리 엄마가 다 앉아보곤 이건 너한테 어울리겠다며 나중에 사자, 결혼하면 사줄게. 이건 아버지에게... 그리고 조금 비싼 매트리스에 앉고선 이거 나중에 네가 돈 많이 벌면 사주렴.

식물 키우길 좋아했던 엄마는 식물 코너에선 볕 잘 드는 집에 가면 식물을 꼭 키워보렴. 등등... 엄마가 했던 말들이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들렸고 동안 희미했던 완전히 잊고 있던 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눈이 빨갛더라. 얼굴도 점점 달아올랐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마치 나를 코로나 확진자로 오해하는 것만 같았다. 후드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바로 앞에 열감지기 기계가 보인다. 달아오른 볼을 만져봤는데 너무 뜨거워 도저히 열감지기를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돌아서 반대방향 입구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가구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기 시작했다. 결국, 참을 수 없어 급하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고 말았다.


이렇게 울고 있지만 이 울음이 너무 반가웠다. 이젠 무감각해진 무뎌졌던 감정을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 오늘 하루를 포기해서라도 오늘의 이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을 만큼.


다시, 감각이 무뎌지기 전에 밖을 나갔다. 이 감정에 엄마에게 해야 할 말들이 많았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벌써 엄마가 모르는 두 번째 집이다. 생각해보니 복비 아끼고 이삿짐 기사님에게 돈 더 주라던 말도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다음 주에 다시 이케아에 가면 식물을  사야겠다.


엄마 보고 싶어요... 많이... 7년 전 이케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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