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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May 07. 2024

형이 내 인스타에 댓글을 달아줬으면 좋겠어

 친한 형인 A는 배우이다. 10여년 전 연출부를 하던 시절 알게 된 형이다. A는 큰 역할이 아니었지만, 스포츠팀 영화였기에 계속해서 앵글에 걸렸다. 그래서 거의 합숙을 하며 지냈다. A는 그때 많이 친해졌다. A는 연기에 대한 열정도 컸다. 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지만,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그때마다 A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늘 문자를 보냈다.


 "형 나오는 거 잘 봤어요!" 


그러면 A는 

"그거 다 편집되고 조금 나왔어. 그래도 봐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다. 


 단역배우들 대부분 편집되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건 대부분 사실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주인공 서사 위주로 편집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단역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한다고 해도 편집될 수 밖에 없다. 단역 배우가 튀어 보이면 그만큼 영화나 드라마의 톤앤매너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형, 다 그런거죠. 뭐! 빨리 좋은 역할 맡아야죠!"


그러면 형은 늘 이렇게 말했다. 

 "네가 빨리 잘 돼서, 형 써줘야지!"


나는 확실치 않은 다짐을 늘 형에게 했다. 

 "그럼요! 제가 빨리 성공해서 형 쓸게요!"


대부분의 단역배우들은 부업이 있다. 주조연 급이 아닌 이상, 부업 없이 버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A는 가족과 함께 녹두전 사업을 했다. A의 인스타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녹두전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A는 한번도 녹두전 먹어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가족끼리 하는 작업 사업이라고만 했다. 


-


작년 9월 나의 결혼식에서 짧게 인사를 했다. 정신없어 길게 인사하진 못했고 다음에 따로 보자고 다짐했다. 올초 A는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들었다. A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인스타 피드에 뜨면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다른 형을 통해 A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A가 드라마 현장에서 대기하다가 쓰러졌대."


다른 지인을 통해 알아보니 A가 쓰러진지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이다. 아직 40댄데 뇌졸중으로 쓰러지다니... 

아들도 겨우 8살 정돈가 그런데... 어이가 없었다. A의 카톡을 봤다. 결혼식 때 감사인사가 마지막이었고, 다음에 보자는 대화가 마지막 채팅이었다. 


수소문 끝에 A의 형수님과 연락이 닿아 중환자실 면회를 할 수 있었다. 하루에 두 명 정도 면회할 수 있는 것을 형수님은 같이 면회 온 지인들에게 양보해주었다. 형수님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라고 했다. A가 쓰러졌지만, 듣기는 한다는 것이다. 


A를 만나기 위해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A의 눈엔 헝겁으로 가려져 있었고, 자가호흡을 하는 상태였다. 들었던 것보다 상태가 최악은 아닌 것 같았다.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했다. 


 "형 저 왔어요. 저 결혼식 끝나고 처음 뵙네요. 더 빨리 연락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거짓말이 시작되었다. 


 "형... 저 곧 영화 들어가요... 그리고 드라마도 썼어요. 반응 좋아요! 형 캐스팅 해줄테니까... 빨리 일어나요. 알았죠?" 


A는 당연히 미동조차 없었다. 손도 잡아줄 수 없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내 음성으로 형을 위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 A의 눈가로 눈물이 살짝 맺힌 것을 봤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형수님과 면회 교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밖에서 형수님을 기다렸다. 형수님은 면회시작을 모두 소진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혹시 A 울고 있었어요?" 

 "눈물이 살짝 맺힌 건 봤어요."

 "제가 들어가니까 펑펑 눈물 흘리고 있더라고요"


내 거짓말에 A가 감동했나보다. 뇌졸중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해줘야 깨어난다고 했다. 

A는 분명 의식이 있다. 깨어나지 않았을 뿐. 저기 어딘가 내 말을 분명 들었을 것이다. 



나는 A의 인스타 링크를 타고 녹두전을 구입했다. 그리고 잘 하지도 않는 인스타에 녹두전 홍보를 했다. A에 대한 사연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A가 언젠가 내 인스타 게시글에 댓글을 달거나 리그램 하길 바랐게 때문이다. 




A의 눈물을 보고 생각난 영화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엔딩이다. 감정을 따라 원씬원컷으로 촬영되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이 마치 A와 함께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마지막 장면>


내가 A에게 했던 거짓말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톱스타의 캐스팅보다 A의 캐스팅이 지금은 더욱 간절하다. 



 "형이 빨리 내 인스타에 댓글을 달아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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