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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전하는고양이 Jul 04. 2024

쓰레기 더미에서 널 구해 줄게.

너를 만나려고 오늘 하루가 이렇게 어두웠나 봐.


비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 뉴스를 보니, 비는 이른 새벽부터 내렸다고 했다. 태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물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있었다. 무슨 욕심인지 곧 아래로 떠나보낼 물을 꽉 움켜쥐고선 심통 난 아이처럼 퉁퉁 불어 있었다. 그런 아이의 그늘진 마음처럼 하늘은 어둑했다. 아니 이른 새벽의 외로운 어둠을 그대로 끌고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빗소리는 꼭 그 시간, 내 마음의 소리 같다. 그래서인지 늘 달리 들렸다. 난 그렇게 마음의 소리를 빗소리인 양 낮은 곳으로 흘려보냈다. 어떤 날은 '쏴아 쏴아' 쏟아붓는 비에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흘렸고, 또 어떤 날은 '보슬보슬' 마치 미스트처럼 가늘고 촘촘해 내 마음 어느 한구석 빠짐없이 어루만져 준 그 비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면 차가운 물방울일지언정 포근한 담요처럼 느껴졌다. 서서히 식어버린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아주 가끔은 그 담요를 덮고 느리게나마 온기를 되찾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오늘의 비는 '추적추적' 슬퍼 보였다.




언젠가부터 내 심장이 미지근해진 걸 느꼈다. 내가 쓴 마음과 상대가 쓴 마음의 차이가 크다는 건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을 순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 또한 인정했다. 그 마음마저 감사하게 여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난 서서히 식어갔다. 나에게 내준 그 마음도 과분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따르면 난 욕망 덩어리였다. ‘마음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야’ 나의 모습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조금씩 살과 마음을 깎았다. 상대를 향한 마음도 무참히 깎여 손톱만치 작아졌다. 그 안에 자리했던 상대를 향한 배려, 존중도 점점 사라져 갔다.




보낼 마음이 없으니 뛰는 심장의 속도도 느려졌다. 뜨거운 마음이 미지근해지고 그 이후론 차갑게 또 더 차갑게 결국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졌다. 그 위로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서서히 단단하게 얼어버린 심장은 빗물에도 잘 녹아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는 차가운 심장에 얇은 얼음이 돼서 붙었다. 아래로 흐르지 못한 비는 내 안의 눈물로 고였다.




그때부터 나에게 비는 늘 ‘추적추적’이었다. 내리는 비의 양과는 상관없었다. 서늘하고 슬픈 빗소리지만 다행히 그 안에도 귀한 하나의 설렘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늘 머릿속에 맴도는 지글지글 기름 튀는 소리. 난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닥에 내팽개치진 마음을 다독이고자 프라이팬에 기름을 부었다. 검댕이 묻은 마음에도 뽀얀 부침가루를 얹어 ‘추적추적’, ‘지글지글’ 빗소리인지 기름 끓는 소린지 모를 곳에 풍덩 빠뜨렸다.




냉장고에서 신문지에 곱게 싸인 부추 한 단도 꺼냈다. 어제저녁 늦게 마트에 갔다가 마감 떨이로 사다 논 부추였다. 부추를 다듬으려고 묶인 끈을 풀러 반으로 가르는 순간 난 “아!” 짧은 탄성과 함께 엷은 미소를 지었다.




새하얀 부추꽃이 있었다. 부추꽃에는 어제의 맑고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씨가 묻어있었다. 하루 종일 어두웠던 마음에 환한 부추꽃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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