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전하는고양이 Sep 16. 2024

달, 네가 부러워 죽겠어.

나는 여전히 나예요.




하염없이 걸었다. 검푸른 하늘의 색이 땅과 맞닿은 내 발까지 내려온, 진하고 깊은 밤이다. 곧 달이 꽉 들어찬 날이 올 거다. 이때쯤의 '달 이야기'는 비록 짧게 지나갈지언정 산책 중인 사람들의 대화 속에 아주 엷게라도 자리한다. 자의든 타의든 난 도둑 귀를 열어 보름달 이야기를 훔쳐 들었다. 아이들의 허무맹랑하고 판타지가 충만한 '달 이야기'에 반응하는 초현실주의자 어른의 얼음장 같은 표정과 답변. 회색빛 산책에서 '그런 표정은 과해요'란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잠시 잠깐 웃었던 순간이었다.




오늘도 역시 생각의 굴레에 갇혀 산책이란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씌워진 굴레는 '나 자신'이다. '난 누구지?'부터 시작해서 '난 왜 맨날 먹을 생각만 하지'처럼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며, 결국 '그래도 나는 나다'로 결론이 나는 하나 마나 하지만 내다 버릴 수 없고 수시로 고찰해야 하는 주제. '나'라는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고, 그 생각들이 또 새끼를 쳐서 숫자를 늘린다. 빽빽하게 찬 머릿속, 개미 한 마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마저 없다.



"혹시 머리에 쥐 난 적 있어요?" 



독립적인 생각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아우성칠 때마다 발끝에서 느껴질 법한 저릿저릿한 그것이 머리 표면에서 느껴진다는 거다. 난 그럴 땐 눈을 꼭 감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머릿속에 갇힌 생각들이 울부짖고 그 울부짖음이 바다의 너울과도 같아질 때,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오늘도 그랬다.



"이지러진 달이다. 너 참 예쁘구나."



여전히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고 눈을 떴을 때, 내 눈 안에 달이 들어왔다. 아직 차오르지 못한 이지러진 달. 달이 차올랐다가 다시 잦아드는 것은 우주의 섭리. 이지러진 달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반대로 여백도 없이 가득 찼다고 해서 미련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혹시 아는가. 한없이 엷게만 보이던 달이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봤을 때 크게 부풀어 있다고 해서 그 누가 달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낼까.



"달은 좋겠다."



네 모습이 변했다 한들 사람들은 널 여전히 '달'이라 여긴다. 네가 등 뒤의 숱한 비밀을 감추고 앞모습만 드러내도 널 보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널 '신비'라 말한다. 사실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는데. 달의 모습이 변했다고 한 것은 달 자신이 아닌 사람들의 눈인데.




나도 바뀐 건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내 눈, 코, 입은 있던 자리에 붙어 있고 성격도 성질도 그대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며 말을 더하는 걸까. 왜 나 자체로 안 봐주고 자꾸 주변의 변화를 내게 입히는 걸까. 왜 달에는 마음대로 변했다고 말하지만 그마저도 품어주면서. 난….


달, 네가 부러워 죽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