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플로거 Mar 09. 2023

To my Grandpa
- 여성의 날에 부쳐

플로깅 96번째 

안녕? 나의 할아버지! 

Hey, yo! 천국에서 잘 지내?      


얼마 전에 할아버지를 추모공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왔었어. 그전에 할아버지 계시던 공동묘지 공원이 통째로 아파트로 재개발된다고 해서 보상금을 받아서, 그 돈으로 무덤 아래 유골을 수습해 화장을 하고 자리를 옮겼다고 했지. 그래서 겸사겸사 전부터 할머니 계시던 추모공원으로 옮겼고, 부부실에 나란히 한 칸 차지하고 들어가게 됐구. 부부 추모실.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자주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했으니까 어쩌면 같은 칸에 들어가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이 좋게 보이고 싶었는데, 예리한 손녀는 다 보고 있었거든요? 할아버지는 어때? 추모실 맘에 들어? 흙을 그토록 좋아하셨는데, 이제 봉안당 추모실에 들어가 있으니 좀 답답하려나?      


그런데 있잖아. 추모공원에 검색대 있잖아. 방문객들이 추모하는 분들 어디에, 몇 번 방에 계신지 편리하게 찾아주는 그 검색대. 내가 시험 삼아 해 보니까, 이게 웬일이래. 할머니 이름으로는 추모실 방 번호가 검색이 안 되더라고. 물어보니, 할아버지 같은 남성 이름만 넣어야 검색이 가능하다는 거야. 할머니 같은 여성들 이름은 디폴트로 안 들어가 있었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인데 그건 좀 아니잖아?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민원24’라고 민원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평등하게 부부가 다 각자의 이름으로 추모실 방 번호 검색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청원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잘 고쳐졌어. 덕분에 할머니뿐만 아니라 부부 추모실에 들어가 있는 모든 여성이 자신의 이름만 넣으면, 부부 추모실의 남성들처럼 추모실 방 번호를 검색할 수 있게 됐어. 나 잘했지? 역시 울 할아버지 손녀다, 그지? 


요즘엔 인터넷이란 게 있구, 내가 바꾸길 원하는 게 있고 그게 합당한 소리면 통하는 그런 시대야. 물론 그러려면 소리를 내야 하지만. 나름대로 크고 작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사실 좀 피곤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힘을 내. 왜냐궁? 할아버지 손녀니깐! 쓸모 있어 보이는 건 뭐든 줍줍을 잘 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바닷가에 가서 남들 못지 않게 멋진 플로깅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으나, 찾아간 바닷가는 단 한 점 쓰레기가 없이 청정했다. 왠떡이냐. 아니 이런 행운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한텐 맨날 부자인 척^^, 까스활명수니 우표니 그런 거 심부름시키면 매번 100원씩이나 당시에는 꽤 거금을 쥐어 주고 맛난 거 사 먹고, 어쩔 땐 더 큰돈도 집어줘서 친구들도 다 데려가서 사주라고 했지. 할머니는 배고파 하는 아이 있으면 집으로 데려오라고 해서 밥을 차려 줬었어. 넉넉치 않은데 배포는 어울리지 않게 커서 뭐야, 둘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네. ㅎㅎ 내가 철봉 타는 거 좋아한다고 대문 앞에 철봉을 턱 하니 세워주고. 철봉에 올라가서 짠! 하구 서 있으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 어디서 구해온 거야. 그 철봉. 울 할무이 할아부지 놀래키는 게 진짜 제일 스릴 만점이었는데.    


나중에서야 알았어. 할아버지가 강제징용에, 강제징병에, 일제시대 때 갖은 고생한 것도 모자라, 한국전쟁 때 또 끌려갔다가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쳐 나오고 그런 거. 나고야로 남양군도로, 그리고 조선 땅 팔도로 어딘가로, 군수업체로 태평양 망망대해로 지옥이 된 이 땅의 전쟁터로, 아, 이리저리로 너무너무 고생 많고, 정말로 한 많은 그런 생애였다, 그지? 할무이도 진짜 진짜 고생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한테 쓰는 편지이고 생전에 할아부지 내가 할무이 편만 든다고 서운해 했으니까, 이번엔 할아버지 이야기만 할께. ㅋㅋ


한평생 소원이 내 땅 한 평 갖고 농사 맘 편히 짓는 거였는데, 자식들 키우고 가르치느라 뼈 빠지게 소작 지으며 노력해도 한 평 한 뼘 내 땅도 없이 살다가, 그렇게 허망하게 한날에 팍 쓰러져서 돌아가셨다, 그지……. 밥 한 끼 굶어본 적 없고, 대체로 뭐든 평화롭고 풍요로운 나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애 많이 쓰고 힘든 그런 인생이었다, 그지…….

     

어릴 적 따사로운 봄날에 딱 요맘때. 마당에서 할아버지가 내 책상이랑 책장이랑 뚝딱뚝딱 만들어주고, 그러고 나서 식목일에 집 옆 공터에 묘목 심고 그랬지. 그 묘목은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거였어? 공짜로 얻어왔었나? 식목일이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나무 심는 날이라 중요한 날이라고 할아버지가 가르쳐 줬었지. 근데 요즘엔 식목일에 쉬지를 않아. 할아버지랑 같이 나무 심어본 이래, 여태껏 나도 나무를 심어본 적이 없어.     

 

식목일에 그러고서 열흘이나 지났을까. 할아버지는 사월의 봄날에 품앗이로 모 심던 논에서 그만 돌아가셨지. 벌써 40여 년이나 지났는데, 난 할아버지가 하늘나라 떠난 그 날 오후 햇살이 아득하면서도 선선한 바람 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    

  

그렇게 논이 좋았어? 그렇게 흙이 좋았어? 어째서 논에서 그렇게 쉽게 간단히 돌아가시고 말았어? 강제노역, 강제징병 왜정 때도 견디고, 동포끼리 총부리 겨누는 시대도 다 견뎠는데, 왜 햇빛은 버티질 못했어? 기껏해야 사월 햇빛인데?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살짝 비뚤어진 책상도 책장도 이젠 곁에 없네. 완벽하지 않은 책상과 책장이었지만, 니스칠 하던 날 정말 재밌었어. 그래서인가? 덕분에 니스 냄새가 지금도 좋아. 길거리 걸을 때 니스 냄새 나면 그냥 몇 초간은 좀 가만히 서 있기도? 다정하고 착한 나의 할아버지. 장남은 강제노역도 강제징용도 안 가도 된다는데, 할아버지는 그러면 본인 대신에 어차피 동생들이 끌려가니까 본인이 먼저 나서서 갔다고 들었어. 


그런데 어쩌면 용케 그렇게 목숨을 건지고 살아 돌아왔었어? 어쩌면 그렇게 잘 도망쳤어? 정말 대단해. 아, 할아버지가 돌아온 해방공간은 어떤 곳이었어?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입에 풀칠하고 살기 위해서, 아마 힘들었겠지.       


작년 봄에 깨진 병조각을 줍고 나서 바로 옆벽을 보니까 저런 낙서가 써 있었다. "나의 통증??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결국 아무런 배상도 사과도 못 받고 떠난 그런 인생이었네. 이상한 날이었고 슬픈 날이었어. 할아버지 돌아가신 그 날은. 1984년의 그 봄날은.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나랑 같이 쓰던 방에 숨이 다한 할아버지를 눕혀놓고서 병풍을 쳤고, 식구들 모두가 장례 준비하고 치르느라 분주했지.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병풍 너머 저 세계로 갓 들어간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있었어. 염하시는 분 오기까지. 집에서 아름다운 꽃상여가 나가던 날도 기억하구 있어. (할머니가 할아버지 장례를 엄청 부러워 한 거 알지? 할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셔서 그렇게 못하구, 좀 많이 쓸쓸했어. 만났을 터이니 잘 알지?)   


아마추어 목수이자 땅과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농부 할아버지. 짧은 시간이나마 나와 만날 수 있던 시간 동안, 품격 있게 손녀를 대해줘서, 소중히 대해줘서 고마워. 난 그런 사랑을 자양분 삼아서 잘 자라났고, 지금도 철봉을 잘 타. 그래서 이제 생각할 수 있게 됐어. 할아버지는, 살아온 시간들 가운데 많은 시간을 푸대접 받고 살았다는 걸, 그리고 아마 어느 누구한테도, 조국한테도 존중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걸, 어림짐작할 수도 있게 되었어. 


난 잘 지내고 이제 오십이 다 되어 가. 틈틈이 쓰레기도 줍고 그렇게 자유롭고 당당하게 잘 살아. 사람 강제로 데려다가 쥐어짜서 돈 벌고 사람 착취해서 침략전쟁 벌인 권력 앞에 무릎 꿇고 굴종하는 그 따위 권력은 참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계획이야. 법치주의 국가라는데 2012년, 2018년 대법원 판결은 깡그리 무시하며, 공식 문서 단 한 장 없는 굴욕으로 자기 자신도 망가지고 있는 그런 권력이 있고, 그런 위선이 대단하다고 찬사를 바치며 떠받드는 사람들이 그걸 지탱시켜주고 있어. 그런 비겁한 사람들도 역사에서 버림받게 된다면, 서러워서 그래도 가끔은 할아버지의 가장 비참했던 그런 시간들을 조금쯤은 떠올려줄 때가 올까?      


언젠가 만날 날에 부끄럽지 않은 그런 손녀가 될게. 아무쪼록 할머니랑 잘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추모공원은 빛이 잘 비치는 곳이라 참 좋아. 산이 있어서 참 좋아. 할머니 이름으로도 이제 잘 검색이 되어서 좋아. 주변 길냥이들도 우리 동네 냥이들하고는 다르게, 넉넉히 깨끗한 밥과 물 먹고 느릿느릿 여유롭게 오가는 그런 곳이라서 좋아. 안녕.      

  

2023년 3.8. 여성의 날에    


  

우리 동네.. 버려진 인형과 담벼락 냥이. 산책길에 왠지 찍고 싶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청과 행동


https://www.youtube.com/watch?v=Y-Od4feMs7Y


https://bit.ly/해법무효서명


https://endthekoreanwar.ne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