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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Oct 16. 2023

'니들만 잘살면 된다'의 정의

며느리에겐 해당사항 없음

어느 시점부터 명절에 시어머니를 봬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상황 안에 있는 남편과 그의 친척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진심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기 오래전부터 시어머니와 대화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아이 이야기조차 간섭처럼 느껴졌고 사람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단 듯 챙기며 따스히 대하시는 모습조차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수많은 질문에 그저 단답으로 대답을 했고 함께하는 시간 내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다니시는 모습에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와 대화를 안 하시는 것 말곤 그 전과 별 다를 게 없지만 그나마 숨통이 틔이는 느낌이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친척들은 없었지만 고부갈등이 치달을 때까지 간 걸 어느 정도는 짐작하실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전히 시가에 가기 전에 청심환을 먹어야 하고 잠도 오지 않지만 365일 중 단 4일이다. 361일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마음은 굳게 먹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시어머니는 한 번씩 안부가 생략된 안부전화를 하셨다. 내용이야 작년에 더운 날 연락이 없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 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타이밍은 거짓말 같이 지난 일들이 잊히고 다시 마음의 재정비를 할 때쯤에 전화 한 통이 나를 다시 과거로 데려다 놓았다.


그날도 특별할 게 없는 하루였다. 이제 예전처럼 전화는 매일같이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전화소리에도 심장이 내려앉지 않는다. (이것만으로 나는 멘털이 조금 단단해진 것 같다.) 그러나 , 시어머니라는 이름을 확인하면 손에 갑자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안 받으면 그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내 성격은 왜 이 모양인지 안 받아도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건지 신경 쓰이고 답답해서 마음이 불안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나는 그전에도 이러한 이유로 전화를 받고 후회했었다. 차라리 받지 말았어야 했다.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듣고 모르는 게 나을 뻔했던 시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에 더는 할 것도 없을 것 같던 실망을 넘어 절망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받았고 어머님은 처음에는 좋게?(평범한 대화로) 시작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고 내 생각이 나셨고... 계속 이렇게 살 거냐를 시작으로 정말 뜬금없이 산후조리 때 이야기를 꺼내셨다.


산후조리얘기라면 나는 대서사 시리즈로 할 말이 가득했고, 그때의 일기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남편한테 니킥을 날리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왜 지난번부터 그때의 이야기를 계속 꺼내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꺼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듣기가 너무 불편했던 건 그때의 있던 일들을 주기적으로 왜곡을 하시거나 전혀 없던 일들을 마치 실제로 있던 일처럼 끊임없이 열변을 토하신다. 이제는 억울함을 넘어 의문이 생긴다. 마침 다시 얘기를 꺼내셨기에 지난번에 하셨던 얘기 중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여쭤봤다. 내가 밥을 다 먹고 식기를 싱크대에 집어던졌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까지 저를 버릇이 없다 못해 되바라진 사람으로 만드시는지 궁금했다. 시어머니의 대답은 심플했다.


"내가? 내가 그렇게 말했니?..."


돌에 맞은 사람은 있는데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다. 너무 아이러니한 건 지난 몇 개월 전에 하신 말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년이 흐른 산후조리일은 디테일한 상황까지 설명하시며 흥분하신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왜 갑자기 이러시는지, 여기서 얻는 게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고 그때의 일들은 나 역시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았기 때문에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이 지속적으로 왜곡하시는 내용은 대충 이렇다.

원치 않던 산후조리가 시작됐고, 시어머니가 계시는 기간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님은 몇 번의 설득에도 댁으로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문제는 안 가시는 이유가 아들을 챙기기 위함이었고 결국 아들이 나서서 설득했는데 다음날 시어머니께서는 당장 집에 가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와중에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한 며느리원망하셨다. 나는 용서를 구했고 다신 안 볼 것처럼 가셨다가 이틀 후, 다시 짐을 싸서 오셨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록하고 기억하는 그때의 상황이다.

산후조리 기간 중에 있었던 사건들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서 어머님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나시는 건지 나도 궁금해서 들어봤다.


"나는 산후조리 때 집에 가겠다고 했어!!"


원하실 때 가신다고 하신걸 얘기하시나?? 무슨 얘기인 걸까... 차라리 "내가 내 아들이랑 탯줄이 연결된 것 같아서 더 같이 있고 싶었다.."조금이나마 이해가 됐을 것이다. 남편이 설득하기 전에 주말만이라도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여쭸을 때, 시장도 가야 하고 할게 많아서 집에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만약 가신다고 하셨다면 남편이 어머님과 따로 얘기할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시지 않겠다는 어머님을 두고 남편은 나에게 다시 얘길 해보겠다고 했지만 불편한 사람은 나니까 내가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던 남편은 시어머니께 집에 가시는 걸 설득했고, 결국 터질게 터져버렸다.


시어머니께 남편이 어떠한 의미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게 돼서 그런 얘긴 남편이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직까지 결혼해서 자녀까지 생긴 자녀가 탯줄이 연결됐다는 말씀은 정말 여전히 충격적이다. 남편이 주말만이라도 본가에 다녀오시라고 했을 때 가신다고 하셨더라면 남편이 다시 어머님과 이야기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나를 그렇게 차갑게 대하시지 않았을 것이고, 탯줄얘기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간 상황을 조금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뒤집는 수준이다. 그렇게 가셨다면 나는 왜 이토록 어머님과 멀어진 걸까...


어머님만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에겐 해선 안될 행동이다. 시어머닌 산후조리기간 내내 아들과 시장을 다녀오시고, 아들과 영화를 보고, 아들과 함께 주무셨다. 남편이 출근하면 나를 앉혀두고 아들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님은 진심으로 행복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도 시어머니를 살뜰히 챙기고 출산한 아내는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차라리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해서 조금 더 계시고 싶으셨다고 해주시지.. 그렇다면 나는 내 몸조리를 위해 안 가신다는 어머님을 더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내 마음이 편해지는 방향으로 합리화기술을 펼치고 싶지만 수습이 불가할 정도로 시어머니는 독한 말씀을 이어가셨다. 통화 내내 내 탓을 하셨고 남편에게 내 욕 좀 하셨다는 욕밍아웃(?)까지 하시는 동안 나의 얘긴 듣지 않으셨고 또다시 아버님을 소환하셨다. 어머님은 늘 모든 상황의 주체라는 걸 잊으셨다. 모든 갈등의 당사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나인데, 꼭 나 때문에 아버님이 큰 피해를 보고 있고, 아버님과 남편이 무슨 죄냐고 따져 물으셨다.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시어머니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물론 있고 남편에게도 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탓처럼 조금이라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분처럼 지난 일들을 교묘하게 내 탓으로 돌리기 바쁘셨다. 남의 탓만 하는 사람들 특징이 귀를 닫는 것인데 어머님은 그렇게 모든 걸 쏟아내고


"나는 이제 괜찮아졌다. 너도 그만 풀어라"


실컷 두들겨 때리다가 나는 이제 후련하니까 맞은 사람에게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입을 닫으니 왜 말이 없냐고 다그치시는 걸 듣고 있자니 억울함과 서러움이 밀려온다. 시어머니의 예상보다 상황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비난의 화살이 자신의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걸까. 이렇게 방향을 내 쪽으로 바꾸면 후련하신 게 맞는 건가.


더 이상 어머님과 대화가 불가능했기에 나는 솔직한 감정을 말씀드렸다.


" 어머님 말씀 대로면 저희는 왜 이렇게 지내고 있는 걸까요. 어머님 기억이 맞든, 제 기억이 맞든...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요... 저는 지난 일 가지고 어머님과 이렇게 감정소모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냥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예전처럼 잘 지내는 것이제 어렵지만 각자 잘 지내 길 바란다는..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머님과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돌아온 시어머님의 대답뿐이었다.


"니들끼리만 잘살면 되는 거냐?"


저 마지막 한마디가 내 입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시작으로 남편과도 다투면서 진지하게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앞뒤상황 없이 엄마편만 드는 남편을 더 이상 신뢰하기가 힘들었고 나아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정이 깨진 근본적 원인을 본인에게 찾으실 시어머니가 걸린 적이 있다.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아들이 이혼을 한다는 건 어느 부모라도 마음이 아픈 일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에 대한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나름 남편한테 최선을 다했다.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라도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면 그걸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실 줄 알았다.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이었고 예전의 그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전화가 오고 난 후  남편에게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네 식구들 잘 챙겨라, 니들끼리 잘 지내면 바랄 게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특히나 나를 챙기라는 얘기를 하실 때는 섬뜩함을 느끼적도 있다.  그때만큼은 그렇게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니들끼리 잘 살면 된다에서 니들은 내가 포함되지 않은 게 맞다. 그리고 나에게 니들만 잘살면 되냐는 건 아마 남편은 포함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라도 어머님을 이해해보고 싶지만... 여전히 나는 어머님과의 대화는 피하고 싶은 게 진심이다.


자주 안 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전화 한 통에도 나의 마음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느낌이다. 괜찮아질 때쯤엔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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