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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Aug 08. 2022

내 안의 분노와 마주하다

여기 돌아이 하나 추가요!

나는 살아오면서 분노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화가 날 것 같은 감정을 어떻게든 합리화를 시켜서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사그라든다. 물론 뿜어져 오는 화의 기운을 애써 억누르다 보면 역효과도 있지만 왜 때문에 화가 났는지가 잊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끔 낯선 나와 마주할 때가 있긴 하지만 화를 내기엔 아이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큰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 그에 대한 죄책감은 몇 날 며칠을 날 괴롭힌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를 악물고 차근차근 타이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런 내가 태어나서 이것이 분노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분노인지 화인지 짜증인지 헷갈리는 게 아니라 이건 명백한 분노임을 확실히 알게 된 사건이다.


그날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난 지난해 어버이날에 시가에 드린 영상통화를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었고 그 후 시어머니의 전화통화로 다신 그런 위선적인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아침을 먹고 양가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하자고 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는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시부모님께 아이랑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왔다.


나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아주 좋지 않다. 목소리만 들어도 신체 통제 기능이 상실되어 식은땀과 심장이 쉴세 없이 뛰고 온몸이 경직된다. 불편해도 적당히 말도 섞고 나름 내 감정이 컨트롤이 되었는데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내 몸뚱이지만 조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길 했다. 내가 있어서 불편할지 몰라 자리를 피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통화를 하지 않아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전 우리 부모님께 안부전화라곤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께 전화하기 위해 우리 부모님까지 챙기려는 호의가 달갑지 않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왔을 때 남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나는 네가 우리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도 이럴까 봐 걱정돼"


이럴까 봐?? 내가 뭘 어쨌다는 거지? 영통 안 한 게??

내가 영통을 왜 하기 싫어하는지부터 이야기하면 남편은 듣기 싫어한다. 내가 왜 시어머니가 그토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대상이 되었는지 이유조차 알고 싶지 않아 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그동안 수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남편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 이야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에 경청과 공감은 사치였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두들겨 맞은 사람한테 때린 사람 사정을 지속적으로 합리화시키는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는 관심도 없고 무조건 결과적으로 내가 시어머니를 피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가해자로 생각하는 듯했다. 피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 같은 소릴 한다고 지겨워하니 미칠 노릇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바닥을 쳤을 때 단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만 했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동안 앵무새처럼 해왔던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었다.


"전화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걸 아는데도 하고 싶겠니? 그리고 우린 안부전화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을 사이가 아닌 거 알잖아. 왜 다들 모른척하려고 해? 모른 척 넘어가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내게 자신 부모님의 미래 걱정을 하는 남편에게 당장 옆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하루하루 피가 말라 가는 아내는 중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얘기만 하면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렇게 눈물 흘릴 일도 없었고 이렇게 서러운 경험도 없었는데 더 이상 내 눈물은 남편에게 무기가 아닌 안구에서 흐르는 습기가 된 지 오래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참아 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분노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다. 부부 싸움의 98%는 시어머니 이야기였고 늘 같은 패턴이었기에 그중의 하나가 될만한 작은 갈등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마지막 한마디가 기어코 나를 분노케 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 무시하지 말라고..."


"무시? 지금 무시라고 했어? 영상통화 안 한 게 무시면 우리 부모님은 지금까지 계속 무시당하고 살아오신 거네?.. 정말 와... 너무 정 떨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 부모님께 겪은 게 무시라는 거야.. 알고는 있니?  며느리가 불편해 하든 부담스러워 하든 상관없이 내 아들 내 손주만 맹목적으로 챙기면 그만인 게 무시 아니야?"


정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노였고 정신줄을 조금만 놓았어도 욕이 나왔을 것이다. 나는 진짜 무시가 뭔지 앞으로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했고 명절, 생신은 혼자가라고 했다. 안 그래도 시가에 가기 전 달부터 계속 배가 아프고 잠을 설치는데 내 몸을 망가뜨려가며 거길 가야 하는 이유가 이제 없어졌다. 일 년의 몇 번 보는 것 초차도 힘겹고 버거웠는데 남편은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고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들을 쏟아내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남편의 모습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연애기간까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돌면 정말 뵈는 게 없구나..'를 몸소 느껴보았다. 더 이상 정 떨어져서 말도 섞기 싫다고 하니 남편은 하루 동안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밥을 차리면 와서 먹고 각자 방에서 각자 시간을 보냈는데 차라리 편했다. 내 감정은 풀리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웃고, 남편 기분에 맞춰주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내 감정은 너무 고된 노동에 시달린듯 했다. 나는 남편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계속 이렇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내 솔직한 감정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다음날 저녁, 남편은 몇 번이고 사과를 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나도 큰소리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남편에게 미안했던 건 그뿐이었다..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이 좋지않아서도, 앞으로 더 노력하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큰소리를 냈던 거, 정 떨어진다고 했던 거.. 그게 전부다. 나는 그 전날 분노 가득한 내 모습에 어떻게 그런 소릴 할 수 있냐며 이혼을 요구했다면 받아 들였을 만큼의 광기(?)가 가득했었다.


남편은 다행히 어제의  모습에 살짝 돌아이의 기운을 느낀  같았다. 그래서 건들기보단 일단 후퇴를 택한  하다. 나는 그때의 약간 미쳐있던  모습이 후회 보단 후련함으로 남는다. 참고 쌓아두다가 언제가  번은 이럴 줄 알았다.



나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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