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쟌 Nov 24. 2021

남편은 남의 편일 수밖에

내 남편은 내편 일 거란 대단한 착각

지난 식사 자리에서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한참이 지난 후 남편은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데.."


그리고 그 자리에서 표정을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그 잠시를 참을 수 없었냐고 나를 몰아세웠다. 표정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일단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과연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어야 했을지 되묻고 싶었다. 줄곧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감사히 받아온 결과가 그날이었다. 상냥하게 웃지 않는 무표정이 그렇게나 거슬렸나 보다. 내 표정이야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어머님이 하신 말씀들은 나만 들은 게 아니었다. 남편은 어머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스치듯 미안하다며 별일 아닌 듯 흘려버리고 다시 나의 표정에 관해 쏘아붙였다. 남편이 하는 얘길 듣자 하니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저 내가 불편한 감정들을 잠시 미루고 조금만 참으면 되는걸 그렇게 하지 못해 모든 사단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불편한 감정이 왜 드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하는 기적의 일반화 논리를 펼치실 때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심지어 그 자리에 없는 사람 같았다.


"있잖아.. 그냥 힘든 얘기 하면 네 입장에서 그럴 수 있겠다, 속상하겠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어??"

그 자리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와서까지 어떻게 자신의 입장과 부모님만 생각을 하는지 너무 실망스러웠다. 나의 물음에 남편의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내 얘기에 동조를 하면 자신의 부모님을 부정하는 게 되고, 부모님 일에서 만큼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부모님과 단판을 지어서 연을 끊고 오라는 의미도 아니었는데 남편은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을 무척이나 죄스러워했다. 허탈하기도 했고 그동안 쌓아온 울타리가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만약에 시어머니와 연을 끊으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계가 지속되는 게 자신은 힘들 것 같단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안 우는데 다음날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우는 모습을 정말 보여주기 싫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나는 진작에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날은 아이가 3개월 무렵쯤이었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었고 예방접종은 했는지, 아이는 요즘 어떤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20분 동안 했다. 내가 어머님이 묻는 얘기에 적극적으로 대답을 한 이유는 모유이야기를 꺼내실까 봐서였다. 유축이 안되고 모유가 점점 줄고 있던 차라 이 상황을 말씀드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어머님은


"모유는 먹이고 있는 거니?"

나는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단유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얼른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래, 유축하면 양이 어느 정도 나오니?"

"네?........."

"어느 정도 나오냐고 "


난처해서 던진 나의 물음에 다시 한번 물으셨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오늘의 나의 감정들이 그 전화에 다 소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단유를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날 저녁 유축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유축하기 힘들면 분유 먹이자. 나중에 이유식도 잘 안 먹으면 시판 좋은 거 찾아보면 돼"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눈치가 조금 보여"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됐을 무려부터 이유식 책을 얻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시어머니의 열정에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그날 있던 일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가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야..."

(20분 넘게 통화했는데 할 말이 없던 건가..)

"너는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데 넌 왜 눈치를 봐?"


맞네.. 어머님은 아들에게 눈치를 주신적이 없다. 그리고 아들의 시각에서는 우리 엄마는 그저 궁금한 걸 할 말도 없어서 물어본 것뿐. 아마 이런 논리로 접근해야 이해가 되겠다. 나는 구구절절 그게 아니라 아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같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뭐랄까.. 어떻게 얘길 해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출산을 하고 집으로 와서 아이와 방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도 엄마와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수유와 유축에 쩔쩔매고 있을 때도 아내 옆이 아닌 자신의 엄마와 거실에서 딥슬립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닌데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출산 후 나대는 호르몬을 완전히 간과할 수는 없었기에 어떻게든 내 안에서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후 어머님은 남편이 신체 어딘가에 두드러기가 났단 얘길 하시며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셨다. 아이 낳은 지 일주일도 안됐기에 정말 심각한 게 아니라면 혼자 가도 될 일이었다. 남편이 얘길 안 해줘서 몰랐고 몸 좀 추스르고 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본인도 남편이 이야길 해준 게 아니라 본 것이라고 하셔서, 저희는 서로 앞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는 다고 했다.


"너희는 그러니?? 걔는 아직도 엄마 앞에선 창피한 것도 모르고 옷이며, 속옷이며 안 입고 잘도 돌아다닌단다.."


창피한 일인지 아신다면 나에게 그런 얘긴 안 하셨을 것 같다. 내가 입원했을 때 집에 다녀 갔을 때 알았다는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남편이 트러블이 생긴 부위는 속옷을 입으면 안 보이는 애매한 부분이었지만 그걸 알고 계신 사실보단 신나게 내용을 전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대화의 핵심은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라는 것인데 어머님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남편들이 더러 있다는데 나와 사는 남자인 줄은 몰랐다.


이러한 남편과 어머니의 관계에서 내가 남편에게 정서적인 독립을 바랐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디스크로 육아와 집안일을 버거워할 때도 남편은 엄마를 부르자고 해맑게 이야기했었다. 어머님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줄곧 아빠가 해야 할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싶어 하셨고 그 모든 것이 남편에겐 당연한 듯했다.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엄마 뒤에 있던 남편은 한집안에 가장이 되어도 정서적 기저귀를 찬 마마보이처럼 보였다.



나의 감정은 나의 것, 남편의 감정은 남편의 것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남편은 시가 일에서 만큼은 나의 감정을 공감해 준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나의 속상함이나 불만에 조금의 위로도 받아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나에겐 공감이라는 것이 꼭 경험해 보지 않아도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위로였지만 남편에겐 부모에 대한 부정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공감해 주지 않던 남편에게 대놓고 내 마음을 들여다봐달라며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다. 따뜻한 한마디를 들어보겠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악을 썼다. 아마 처음 겪어보는 시어머니와 갈등으로부터 오는 불안에 대해서 남편을 통해 안정을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님이 자신의 감정 외에  타인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강요를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나 역시 그랬던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남편의 감정은 항상 엄마가 짠하고 안타까웠지만 나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봐주길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바랬던 것 같다. 내가 시어머니로부터 실망했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시어머니와 연을 끊는다면 일상적으로 가정이 유지되기 힘들 것 같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결국은 부모를 택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 감정을 먼저 보듬어 주지 않는 다고 이혼을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이긴 하다. 만약에 남편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나에게 협조를 구하고 강요를 했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는 못했을 테지만 남편은 적절히 부모님과 나를 분리시켜주었고 나에게 대리 효도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건 그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의 공감까지 바라고 있었다.


내가 배우자를 선택했을 때는 가정이 우선이며, 부모로 부터(물리적 , 정서적,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남편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 안에 있는 내 얘기 먼저 들어주고 내 마음부터 들여다 봐줄 거라 믿었다. 부부 사이가 단단해야 시부모님과 어떤 마찰이 생겨도 함께 좋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나의 생각과 남편의 생각이 같은 줄 알았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갈등 속에서 남편의 보호를 바랐나 보다. 나 자신의 감정을 남편이 알아봐 주고 해소해주길 바라는 순간부터 우리는 처음으로 다투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에 대한 기대도 환상도 없던 나에게 동화 같은 시간을 만들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그 사람의 부모님께도 감사했고 잘하고 싶었다. 나에게 그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내 사정이다. 남편의 감정과는 무관했으며 사정없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이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분리가 되길 바랬지만 무엇보다 내가 남편과 정서적으로 분리가 필요했다. 벼랑 끝에서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은 남편도, 자식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더 이상 남편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나의 감정은 내가 스스로 지키기로 마음을 다독였다. 나는 그렇게 벼랑 끝에서도 엄마 편을 드는 남편으로부터 정신 승리를 향해갔다.



바라지 않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남편은 앞으로 시부모님께 갖고 있는 불만이나 서운함을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나는 알고 있다. 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의견 차이일 것이고, 같은 공간에서 내가 상처를 받고 있어도 왜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남편에게도 시부모님께도 나의 감정은 솔직함이 아닌 강요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시부모님께서 나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남편에게도 남편만의 감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 남편을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바꾸려 감정 소모를 해왔다. 바뀌지 않는 건 세대와 위치가 다른 시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남편이 나와 반드시 같은 마음이길 바라지 않고  나와 같은 마음이어야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 나를 위해 애쓰고 존중해주었던 부분들을 먼저 떠올려 보려 한다.(진짜 깊이 생각해야 떠오르지만..) 이제 어머님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시고 되도록 남편에게 한다. 그리고 약속 없이 집에도  오시고, 우리는 명절이나 생신..  봬야 하는 날만 찾아뵙는다. 나와 효도 관해 가치관이 다른 남편에게는 이마저도 굉장히 힘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나의 감정까지 챙기길 바랬다는  욕심이었다. 나는 결혼 한지 5년이 넘어서야 길고  시간을 돌아 남편과 진정한 감정 분리를 하게 되었다.


완전하지 않은 내가 남편에게 완벽함을 바라고 무리한 기대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 기대는 역시나 실망과 절망으로 돌아왔고 지쳐갔다. 조금씩 내려놓으니 더 이상 남편에게도 바라는 게 없게 되고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것들보단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지내면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지만 역시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재미있고, 긴장도 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반적이지 않은 일반화 전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