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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Jan 30. 2022

며느리가 쏘아 올린 작은 상처

진심은 진심으로

남편과의 정서적 분리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날의 식사 자리 후 한 달 넘게 시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았고 뵐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후회가 밀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시부모님은 조금 갑작스럽게 느끼 셨겠지만, 나는 그날 내가 했던 말에 도달하기까지 긴 시간을 참아온 것이다. 오랜 시간과 많은 순간을 꾹 누르고 삼키며 참았다가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둘 공간이 없어 터져 버렸다.


결국에는 시어머니가 그렇게나 덮어두고 모른 척하고 싶으셨던 갈등을 표면 위로 드러내게 되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원치 않는 배려들에 늘 엄마가 잘 몰라서 그렇다고 일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말만 따라 정말 모르실 수도 있단 생각을 했지만 몰라서가 아닌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정말 모르실 리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 일로부터 한 달이 막 지났을 무렵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결혼하고 단 한 번도 친정 식구들을 어버이날에 뵌 적도 없었고 항상 연락만 드렸다. 올해는 시가에도 그렇게 할 참이었다. 내가 어버이날에 가까이 사는 시댁을 찾았던 이유는 거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내 마음이 시가로 향했고 바라기 전에 먼저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도리를 하기도 전에 먼저 바라셨고 노력을 하고 있어도 늘 부족하셨다. 남편 역시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아침부터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드리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내가 얘길 꺼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통화 연결음이 흐르는데 긴장이 됐다. 어머님께서 전화를 받자마자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왜 긴장이 되는지 알 수 없던 이유를 찾았다.


"오늘 안 오는 거니?? 오늘은 오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어제부터 너네 오는지 계속 물어보라고 하셨어!!"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귀에 때려 박는 재촉들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뭘 바라고 기대를 했길래 또 실망이라는 감정이 밀려오는 것인가. 내심 어색하지만 그래도 안부 정도 여쭙고 싶었을 뿐이다. 안 가서 혼나고 싶어서 전화드렸던 게 아니었다. 어머님은 하고 싶은 말씀을 쏟아 내시고는 아버님이 지금 없으니 이따 다시 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끊으셨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시어머니로 부터 장문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확인을 하기도 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네 이름을 부르지 못하겠어서 당황스러웠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내용과 함께 중요한 미션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버님께 놀러 오란 문자를 하라는 임무. 남편을 키우면서 부족했던 걸 손주한테 보내려고 하시는 분이라고 마음 쓰시지 않게 문자를 보내라고 하셨다.)

물론 진짜 내용은 친절한 부탁에 가까웠다.


사실 나도 이제 어머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앞 내용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머님은 언젠가부터 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 남편에게  "쟤한테 이것 좀 줘라", "쟤 좀 먹어보라고 해라" 챙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챙김을 받고 싶지 않은 대충 그런 분위기였다. 나에겐 그다지 서운한 일은 아니었다. 어머님도 내 이름을 부르기 싫을 만큼 감정이 쌓였을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그 와중에 아버님 감정을 챙기느라 이 상황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지가 않은데 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길 바라시는지 답답했다.


어머님으로부터 그동안 친절한 문자 종용은 언제나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머님과의 갈등이  시작됐을 무렵에도 갑작스런 방문통보에 남편이 나중에 오시라는 연락을 드렸지만 어머님은 내게 아버님께 죄송하단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결혼을 하기 전에도 어머님은 아버님께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연락을 드리라고 하셨다. 부모님과 연락을 자주 하던 사람도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나처럼 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여간 불편했던  아니다. 게다가 그런 안부 연락은  년에 한두  볼까 하는 나의 부모님께 남편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친정부모님 역시 바라지도, 기다리지도 않으셨다. 자주 안보는 것도 아니고 자주 뵙고 있는데 수시로 어머님의 부탁 같은 지시에 문자를 드려야 했다. 점점 문자에는 감정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게 되었다. 아버님께 연락을 전혀 하지 않던 것도 아니었지만, 단지 어머님 성에 차지 않았을 뿐이다.


껄끄러웠던 그날 이후로 나는 아버님께 따로 문자를 드린 적이 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누가 시키지 않았고, 자발적인 안부 연락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연락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머님의 그런 요구가 담긴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았다. 부탁도 상황이나 타이밍이 고려되지 않을 때는 지시나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님께 문자를 드리면 아버님은 그 내용을 어머님께 알려주시고, 어머님은 나에게 그 상황을 전하신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사랑받길 바라신 것인지, 어머님의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사랑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어머님의 욕심도 언제나 채워드릴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도리에 억지스러움을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답을 최대한 간결하게 보냈다

 (늘 부족해서 죄송하지만, 아버님께 연락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기다림보다는 그냥 저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시어머니의 기다린다는 문장에 내가 선을 그은 이유는 어머님의 기다림은 진짜 기다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수차례 겪어본 바로는 어머님의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못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얼마 후 다시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 더 이상 조심스러워 말고, 다 같이 이 지옥에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아버님께 문자를 부탁 한건 그날 이후 나처럼 잠을 못 주무셔서란다. 네 마음에 있던걸 쏟아 내고 잃었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길 바란다....)


내가 어머님과 갈등이 시작되고 긴 시간 동안 괴롭고 불안증상이 있던 이유는 바로 저런 대화 형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어떤 대화를 할 때나

상대로 하여금 미묘하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셨다. 대놓고 너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책임을 나에 묻고 계셨다. 원래 이런 문자를 보면 '나 때문에 그동안 잠을 못 주무시다니,, 나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니.. 내가 정말 너무 잘못한 건가..'

여러 죄책감과 자책에 휩싸여 결국 문자를 보내고 연신 죄송하단 말씀을 드렸을 텐데 이번은 달랐다.

죄송하지만, 죄송하지가 않다.


(그동안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어머님께 전했지만 닿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마음 편히 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이 지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후 도착한 시어머니의 답을 받고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우린 네가 우릴 부담스러워하는 줄 알았다'


결국 어머님과 나눈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애써 돌려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어, 그동안 관심으로 포장된 간섭들이 부담스럽고 힘들었다고 직접 얘기드렸었고, 그래서 서로가 적절한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왔음에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어머님께서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은 당신의 선한 의도와 관심들을 부담스러울 리가 없다는 이미 정해진 대답이었다. 아마 내가 어떤 대답을 했어도 마지막 문자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없이 반복을 하며 겪어봐도 굉장히 지치는 소통방식이다. 그토록 바라시는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나는 정말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님과 쌓아온 좋은 기억과 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살면서 한 번쯤 겪을 법한 사소한 갈등 일 줄만 알았다. 그래서 조금 낯설었던 어머님의 표현으로 받은 작은 상처가 아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무는 시간이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다 나았으니 다시 돌아가자는 듯한 압박과 채근에 어머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싶게 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소화시키는 시간이 다르다. 감정도 사람마다 느끼고 처리하는 속도가 다르지만 기다린다는 말과는 무색하게 어머님은 그간 있던 여러 껄끄러운 상황들을 너무나 가볍게 지나치셨다. 어머님은 별일 아닐 수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감정까지 나와 비슷하길 바라던 게 아니라, 어머님의 감정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랬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픈데 나의 감정의 형성과 해결까지 그 기준에 맞춰야 했다. 화해와 용서는 감정이 차츰 무르익어야 가능한 것이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나의 마음을 인지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 있어야 그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지만 모든 갈등의 원인을 며느리 안에서만 찾고 계신다.


나에게 원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모든 문제는 너로 인해서 시작됐기 때문에 네가 변하고 예전으로 돌아온다면 누구도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 원리가 바탕이 되었다. 이미 우리의 관계와 상황이 예전 같지 않은데 어떻게 손바닥 뒤집듯 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 사건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한 사건이 해결이 되기도 전에 다양한 갈등들이 합쳐져 혼재돼  모든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갈등의 주인공인 어머님은 가끔 이런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져 중재자 역할을 하신다. 내가 예전처럼 자주 방문하지 않고, 연락을 드리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사이의 문제임을 인정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으셨다. 아버님께서 이러한 나의 행태에 불만을 가지실 때마다 내가 어머님께 느꼈던 무례함을 책임지지 않으려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떠넘기셨다. 애 낳고 예민하니,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아버님께 말씀하셨지만 나에게 아버님에 대한 문자와 연락이 이어졌다. 말씀으로는 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가도 행동으론 그렇지 않아 늘 혼란스러웠다.


어머님께서 조금의 기다림도 허용하지 못하셨던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확신도 주지 못한 채 돌아가기만 바란다면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지옥은 며느리가 경계선을 긋는 모습이 꽤나 꼴 보기 싫어하신 말씀일 것이다. 어머님의 천국은 과연 나에게도 천국일까?  시어머니의 천국과 나의 천국은 공존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의 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고, 그토록 원하시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나로 살고 싶다. 과거의 내가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을 다해 노력했기에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의 나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담아 노력해보길. 그래 야 그 진심에 대한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상처 입었다는 결과는 그만큼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 과정이 있어서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결과를 나는 담담히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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