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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성 May 27. 2022

실타래

스물다섯에 바라본 복잡 다난한 우리네 인간관계에 대하여

무수한 난제들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언어는 인간 사이의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지만, 한편으론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드는 기제가 된다. 무언가에 상처받은 이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벽을 쌓아 자신을 가두곤 한다.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조금의 틈새도 용납하지 않는다. 화해와, 용서와, 배려의 단어들로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그들에겐 공간의 침입에 불과하다. 굳게 잠근 문 뒤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통해 벽을 더욱 공고히 한다. 한 번 생긴 벽은 쉬이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렵다. 한 번 엉키면 잘라내야만 하는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관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없다. 시작과 끝을 이렇게 꼭 쥐고 있는데도 말이다. 관계가 꼬이는 그 찰나를 알지 못해 결국 손을 떠나보낸다.


대학에 입학해서 바라본 스물다섯의 선배들은 언제나 완벽하게만 느껴졌다. 그들은 모든 인간관계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채, 마주하는 모든 자극들을 슬기롭게 대처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어른이었다. 선배였고, 우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라는 숙제를 비출 수 있는 온화한 빛을 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들처럼 어떤 문제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들처럼 반짝이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마주한 괴리는 스스로를 괴롭혔다. 스무 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 벽을 쌓았다. 믿었던 이들에게 실망하고, 나의 한계를 처절히 마주했다. 실망스러운 나날을 보낸 나날들 이후 다섯 번의 새로운 봄을 맞이했다. 어느덧 나는 반짝이는 스물다섯의 선배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들처럼 눈부시기엔 미숙하기 짝이 없는 나날을 보낸다. 아직도 인간관계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골똘히 고민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나 싶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성큼 다가온다. 이러한 문제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해결된 듯했다가 슬그머니 돌아오기도 한다.


눈부시던 선배들이 고민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하는 추측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좀 더 나아지려고 했던 여러 노력들에게 정감 어린 토닥임을 보낸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뿌듯한 것은, 아직 스스로의 벽을 쌓아 나를 가두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낯가리고,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 덕에 많은 실망을 맛보았음에도, 아직은 마주한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반가운 웃음을 보낸다. 그러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많은 친구들에게 항상 배우며 웃는다. 누군가 내게 벽을 쌓아도 그것에 상처받지 않는 법을 찾고, 남에게 편하게 대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는 법을 하나씩 알아간다.


수더분하면서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강인하면서도 날카롭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내면서도 따스한 정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포기하기보다 붙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전한 타지에서도 마주한 실타래에 휩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껏 마주했던 난제들이 유난히도 버거워지는 요즘, 이것도 하나의 감정이라며 능청스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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