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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성 May 03. 2024

멋쩍은 웃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를 읽고

 산과 들이 펼쳐진 작은 동네에서 자라며 분명히 배운 것은 세상엔 형용할 수 없이 수많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논밭 주변의 풀들은 다양한 형태로 군집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을 둘러싼 작고 큰 곤충들의 종류 역시 다양했다. 뜨거운 해를 피해 들어간 동네의 개울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물고기들이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그것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그것들을 부를 수 있는 호칭은 풀, 벌레, 물고기 따위의 것들이 전부였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그리고 엄청나게 복잡한-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우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된 자연관찰대회에서는 여러 식물의 분포와 생장 양태를 주변 환경 상태와 연결하여 기록해야 했다. 보고서에 ‘잡초’라고 적을 수는 없으니 각 식물의 이름을 열심히 공부했다. 이렇게 생긴 건 무엇이고, 저렇게 생긴 건 무엇인지 찾아보고, 물어보고, 기록하고, 암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중에서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돼지풀’이다. 돼지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왜 돼지인지, 과학 시간에 배운 ‘강목과속’ 분류에 따르면 국화 계열이라는데 대체 무슨 연유인지, 길고 복잡한 학명에는 왜 ‘pig’가 들어가지 않는지, 분류학이라는 분야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분류학은 의문투성이일 뿐이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명에게 이름을 부여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타당한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에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당돌한 고민을 룰루 밀러 작가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분류학자의 삶과 그의 이념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저자의 시선으로 쓰인 논픽션 에세이이다. 주변의 것을 분류하고 연구하기 즐기던 한 소년은 세계적인 어류 분류학자로 성장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저자는 그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며 그가 평생을 걸쳐 수행했던 어류 분류학의 성과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러 업적과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1851-1931)


 어류 분류학 계열에서 이루었던 조던의 업적, 자연재해로 연구해온 표본들이 대부분 유실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신념은 저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파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세상에 존재하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분류하며,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학술적으로 기록하는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갔다. 생명의 나무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그러한 나무를 채워가고자 노력했다. 분명히 그는 뛰어난 연구자였고 탐구자였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변주되는 이야기는 앞에서 쌓아 올린 조던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흔든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고화한 그의 입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살해 스캔들은 그의 도덕성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나무에 천착한 그의 신념은 종의 위계화에 다다른다. 그가 어류에 집착한 이유는 생명의 나무에서 하층에 위치한 어류처럼 ‘퇴보’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찾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종의 진보와 퇴보에 대한 막연한 확신을 가졌다. 결국, 그는 프란시스 골턴의 열렬한 추종자를 자처하며 우생학의 첨병이 된다. 미국 사회에서 합법의 틀을 쓴 강제 불임화 수술은 자의적인 ‘부적격’ 기준을 근거로 시민들에게 자행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수용되고 수술대에 보내졌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한국의 형제복지원이 스쳐 지나간다. 조던은 뛰어난 연구자였지만 결코 훌륭한 연구자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의 잘못된 신념은 그의 커다란 권위와 결합하여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250p)

 작가는 과학을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생명에 잉태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충분히 머금어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잡초이고 때로는 약초로 사용되는 민들레처럼, 생명체는 편리하게 정의된 어느 한 가지 특성의 무언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생명의 나무 하층에 위치한 어류에서 파괴할 수 없는 신념을 찾았고, 그러한 신념은 우생학으로 연결되었다. 평생을 거쳐 이룩한 그의 분류학적 업적은 어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허무하게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분류학은 ‘물고기’, 다시 말해 ‘어류’라는 개념은 분류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개념이라고 한다. 포유류, 양서류 등으로 분류된 생명이 물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 과학적으로 ‘어류’를 하나의 분류로 설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평생을 걸어 연구한 조던의 확신, 끝내 우생학적 확신으로 끔찍한 범죄행위를 촉발한 그의 믿음의 원천은 ‘알고 보니’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연대기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우생학에 대한 논의를 거쳐 결국 ‘확실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으로 마무리된다. 다소 허탈한 결말일 수도, 그리고 지나치게 회의주의적인 결말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명제는 그것이 이해될 때 부정되는 자기모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은 김이 빠질 수도 있는 끝맺음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회의감 가득한 문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우리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의견이 둘 다 옳거나 그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초래된 혐오의 모습을 기억한다. 신념이라 부르는 고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집어삼키던 스스로를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상대가 틀렸다는 것이 누군가의 귀책 때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저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기 위해 그러한 틀림을 과도하게 비난하던 우리를 알고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릴 수 있다’는 노래 가사를 불러왔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오류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애써 부정한다. 분명히 틀릴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은 틀릴 수 있다는 가장 분명한 명제를 부정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멋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맥락에서도 애써 날 선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던가.


 눈을 흘기며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사는 것은 분명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맞다는 확신에 온전히 잠긴 삶 역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은 조던이 아닌 우리 사회를, 주변 사람을, 그리고 나를 향한 지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가 확신에 차서 작성했던 돼지풀 군집에 대한 숱한 보고서들도 어떤 학술적 조사 하나에 의해 엉터리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정말 그러했냐’며 멋쩍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내게는 있을까. 실패에 핑계를 찾는 삶과 오류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삶을 구분할 때, 물고기와 함께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들에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초연해야 하지 않을까.


** 책의 원문 제목은 『Why Fish Don’t Exist』이다. 한국어 번역본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서문의 형식을 통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음을 단정적으로(그리고 도전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영어 원문은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며 물고기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정말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독자와 함께 그 답을 찾아가겠다고 제안하는 듯하다. 영문 제목은 도전적인 질문을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여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비교적 논픽션 에세이라는 장르적 특색을 잘 드러낸다고 느껴졌다. 그에 반해 한국어 제목은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물고기가 ‘존재’한다는 직관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내용을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오히려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문학작품 같다는 느낌을 더욱 부추기지 않았을까) 각자의 서술방식이 그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흥미로웠다. 그리고, 왜 이 책을 당연히 소설로 생각했는가에 대한 핑계를 애써 제목에서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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